2월 28일 메가데스 오사카 콘서트
소위 스래시 메탈 4대 천왕이라고 불리는 밴드가 있다. 메탈리카와 메가데스, 슬레이어와 앤스렉스. 데이브 롬바르도의 미친 듯한 드러밍과 음산한 분위기의 슬레이어는 늘 특별했고 앤스랙스의 <Among The Living>(1987) 음반을 즐겨 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메탈리카와 메가데스 두 팀으로 좁혀진다. 그렇다면 과연… 근소한 차이로 메가데스의 손을 들어줘야 할 것 같다. ‘Holy wars’와 ‘Hangar 18’의 스래시 메탈 걸작 <Rust In Peace>(1990)가 준 충격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메가데스를 만나야 했다. 2월의 마지막 날, 각종 회의가 열리는 오사카 그랜드 큐브 센터엔 일본의 메탈 마니아로 가득 찼다. 에스컬레이터를 한참 타 공연장에 도착했다. 7시 정각에 공연이 시작할 것 같지 않아 굿즈 대기 줄에 합류했는데 옆에 모르는 분이 종이를 쥐여주더라. 이름과 주소, 구매할 티셔츠를 적는 서류였는데 알고 보니 굿즈를 집으로 배송받는 시스템이었다. 국제 배송을 시킬 수 없는 터라 대기 줄에서 빠져나왔다.
내 좌석은 3층에 있었다. S석, R석만 정하면 정확한 자리는 무작위로 지정해준다. 얼마 차이 난다고 왜 R석을 안 했을까 살짝 후회했다. 그래도 맨 끝자리라 살짝 빠져나와 몸을 흔들어대긴 좋았다. 옆에 아주머니가 ‘쟤 미친놈 아니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공연 전 모터헤드와 반 헤일런의 곡으로 열기를 높이고 이내 강렬한 인트로와 ‘Hangar 18’이 들려왔다. 사실상 두 명의 리드 기타리스트인 키코 루레이로(브라질 메탈 밴드 앙그라에서도 활동 중이다)와 데이브 머스테인의 합공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메탈 밴드에 헤드뱅잉은 기본 덕목이지만 메가데스는 특별하다. 장발을 흔들어대며 기타 속주하는 머스테인은 카리스마 그 자체. 이번 공연에서도 ‘When the children cry’의 화이트 라이온 출신 베이스 연주자 제임스 로멘조와 루레이로, 머스테인은 각자의 위치에서 때론 함께 모여 헤드뱅잉 연주를 선보였다. 흡사 보이밴드의 안무 같아 귀엽기까지 했다.
13곡. 아쉬운 숫자긴 했다. ‘Wake up dead’나 ‘The Conjuring’, ‘In my darkest hour’ 같은 곡들을 라이브로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오륙십 대의 나이와 모든 걸 연주에 쏟아부어야 하는 스래시 메탈의 특성상 적정한 러닝타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중간에 머스테인의 마이크가 잠깐 오작동했고 예전의 날카로움도 무뎌졌지만, 후두암을 극복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감격이었다.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귀여웠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는데도 말이다. 미친 듯 몸을 흔들다기보단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고 ‘Peace sells’나 ‘Sweating bullets’의 후렴구를 따라불렀다. 콘서트에서조차 점잖았다. 도쿄 부도칸에 비하면 매우 작은 공연장이었지만 아직도 1980년대 메탈 밴드의 콘서트가 만석이라는 게 놀랍기도 했다. 3월 2일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펼쳐진 브라이언 아담스 내한을 생각해보면…(텅텅 빈 좌석으로 인해 텅콘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13곡을 죄다 예전 명곡으로 채웠으면 좋았겠지만, 최근 곡들도 흡인력이 있었다. 메가데스스럽지 않지만 귀에 꽂히는 ‘Dystopia’와 작년에 발표한 의 수록곡 ‘We’ll be back’은 머스테인의 작곡 능력이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40년 이상 총기를 간직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대망의 ‘Holy wars… the punishment due’에 도착했다. 군대 체단실에서 이 곡을 들으며 미친 듯 러닝머신의 속도를 높이곤 했다. 12,13,14… 체력의 한계를 시험할 때 함께 했던 아드레날린 덩어리 같은 노래다. 드디어 라이브로 듣다니… 초반 1분여는 비디오 촬영해 기념으로 남겼다. 나머지는 5분은 금속성 음향에 몸을 맡겼다.
2013년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에서 메탈리카를 본 지 약 십 년 만에 메가데스를 영접했다. 사대천왕 중 나머지 두 팀 슬레이어와 앤스렉스를 보긴 어려울 듯싶다. 다만 올해 4월 드림 씨어터의 내한이 있고 그루브 메탈의 지존 판테라를 기대해 본다.
메탈을 처음 접했을 때의 순수함이 떠올라서인지 줄곧 미소가 흘렀다. 한물간 구시대 음악처럼 취급되는 헤비메탈이지만 이 장르만이 줄 수 있는 정열과 쾌감이 있다. 메가데스가 오랜만에 몸 안에 웅크리고 있던 메탈 DNA를 깨웠다. 이어폰으론 안 되는, 공연만이 가능한 자극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