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필름뮤직 OST 콘서트
2023년 8월 10일부터 8월 15일까지 열린 제1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어느때보다 풍성한 음악프로그램으로 화제가 되었다. 권진아와 wave to earth, 소란과 스텔라장처럼 트렌디한 뮤지션들이 참여한 <원썸머나이트>와 제천체육관에서 열린 <사카모토 류이치 트리뷰트 콘서트>에 김도균, 김태원, 김종서등 록 스타들이 이름을 올린 <레전드 오브 록>까지. 맘 같아서는 일주일 내내 제천에 머물면서 음악 콘텐츠를 즐기고 싶었다.
제천 체육관에서 8월 14일, 폐막 전날 밤 열린 <필름 뮤직 OST 콘서트>는 3만원이란 티켓가격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양질이었다. 1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위대한 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품으로 꾸몄다.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1966)의 박진감 넘치는 주제곡과 워렌비티와 아네트베닝 주연의 <러브 어페어> 속 고상한 메인 테마 등 명곡이 흘렀다.
크로스오버 하나린은 <칼리파 부인>(1970)의 메인 테마에 청아한 음색을 입혔다. 알베르토 베빌락쿠아가 연출하고 로미 슈나이더가 출연한 <칼리파 부인>은 1971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 받았다. 국내에선 덜 알려진 영화지만 메인 테마의 빼어난 선율은 모리코네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기에 충분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J-c63mPIjPE
영화 <사코와 반제티> 삽입곡 ‘Here’s to You’ 합창이 추억으로 남다. 이탈리아 출신 지울리아노 몬탈도 감독의 다큐드라마 <사코와 반제티 >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무정부주의자 니콜라 사코와 바르톨로메오 반제티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곡을 쓰고 미국 포크 뮤지션 조안 바에즈가 가사를 붙인 메인 테마는 짧고 강렬한 반복으로 합창하기 딱 어울린다. 하나린과 청중의 후렴구 반복이 제천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조동익과 함께한 포크 듀오 어떤날과 걸출한 기타 연주 음반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1989)와 <혼자 갖는 차시간을 위하여>(1990), <스캔들 - 조선남여상열지사>(2023)로 시작된 영화음악까지 아우른 멀티 음악가 이병우가 2부의 주인공이었다. 독특한 모양의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한 봉준호 연출작 <마더>(2009)의 ‘춤’과 김지운 연출작 <장화, 홍련>(2003) 속 ‘자장가’에 새삼 그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많이 만들어왔는지 실감했다.
바디가 없어 휴대에 용이한, 이병우 본인이 직접 개발한 기타 바(Guitar Bar)와 각종 효과를 활용해 전위적인 음향을 구현했다. <국제시장>(2014)의 ‘아버지를 위한 Theme’과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괴물>(2006)의 ‘한강찬가’ 사이 2분간 들려준 실험적 연주는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킹 크림슨의 기타 철학자 로버트 프립을 연상하게 했다.
마지막 3부는 작년 3월 세상을 떠난 영화음악가 방준석을 추모했다. 이승열과 함께 모던록 밴드 유앤미블루로 두 장의 수작 < Nothing’s Good Enough >(1994)과 < Cry… Our Wanna Be Nation >(1996)을 발매한 그는 1999년 영화 < 텔 미 썸딩 >부터 20여년이 넘는 시간 영화음악가로도 활약했다. <박열>과 <변산>(2018) 등 이준익 감독과 호흡을 맞춰왔지만 <주먹이 운다>(2005) <모가디슈>(2021) 등 류승완 감독과의 협업도 많다. ‘방백’을 함께 했던 뮤지션 겸 영화배우 백현진은 이번 영화제에서 추모 공연을 열었다.
3부의 마지막 순서, 영화배우 박중훈이 깜짝 등장해 방준석이 맡은 이준익 감독 영화 <라디오 스타>의 ‘비와 당신’을 불렀다. 전문적인 보컬의 기량은 아니지만 방준석을 향한 진심이 관객에게 전달되었고 영화의 한 장면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얼마 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들은 노브레인의 거친 버전과는 다른 매력이었다. 박중훈은 공연 종료 후 직접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함께 찍으며 특별한 추억을 안겨줬다.
엔니오 모리꼬네와 방준석의 음악이 얼마나 훌륭했고 특별했는지 다시금 깨달았고 이병우의 연구자적 정서와 독보적 음악세계는 경탄을 불러왔다. 2023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필름뮤직콘서트를 통해 영화 음악이 가지는 의미와 힘을 되새기고, 영화 안에서의 스코어와 영화 밖으로 나와 공연되는 라이브 버전의 독립성도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