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버킨(1946 - 2023)
제인 버킨의 서사는 흥미롭다. 영국 태생이나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하며 프랑스 시민권을 따냈다는 점, 프랑스 대중음악의 아이콘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파트너십으로 <Jane Birkin/Serge Gainsbourg>(1969)와 <Es Fan Des Sixties>(1971)같은 수작을 발매했다는 점, 이전에 007 시리즈와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의 영국 출신 영화음악가 존 배리와 혼인했다는 점이 그렇다.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의 대표작 버킨백이 그의 이름을 따왔을 만큼패션 아이콘이지만 극단적인 명품 추구보단 자유로운 스타일을 즐겼다고 한다. 파리를 활보하는 흑백사진도 소탈해보인다.
이처럼 제인 버킨은 대척점에 있는 영국과 프랑스의 끈끈한 교류로 탄생한 종합예술인이다. 상기한 음반 말고도 심포닉한 편곡이 두드러지는 <Di Doo Dah>(1973), 음악적 성숙을 드러낸 매끈한 팝 음반 < Baby Alone In Babylone>(1984)도 들어볼만하다.
영화 속 버킨의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아 필모그래피를 살펴봤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걸작 <욕망>(1969)에 나왔지만 비중은 꽤 낮았던 모양이다. 출연작 중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건 아녜스 바르다의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1988)와 갱스부르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1976년 영화 <Je T’aime Moi Non Plus> 정도다.
다시 <Histoire de Melody Nelson>(1971)로 돌아와야겠다. 화장실에 두고 읽었던 ‘화장실 책’ <죽기전에 들어야할 1001 음반>에서 처음 발견한 음반은 푸른 배경에 가슴을 가린 버킨이 서 있는 자켓부터 예술이었다. 이 프렌치 레어그루브/사이키델릭 팝 마스터피스엔 버킨과 갱스부르의 파트너십은 두 말할 것 없고 싱어송라이터이자 편곡자인 장 클로드 바니에(Jean Claude Bannier)의 편곡이 살아있다.
이 음반을 바이닐로 구하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프랑스 오리지날을 보지 못햇다. 모네의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관광도시 지베흐니(Giverny) 근처 베흐농(Vernon)이란 작은 도시 레코드 숍에서 38유로짜리 재발매반을 발견했지만 선뜻 손이 가진 않았다. 하세가와 요헤이님이 강조하듯 초반 여부가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꼭 초반으로 손에 넣고 싶은 음반 중 하나가 <Histoire de Melody Nelson>이다. 소닉 유스의 킴 고든도 SNS에 이 음반 사진으로 추모한거보면 동료, 후배 음악인들에게도 이 음반이 가지는 의미가 상당했나보다.
오늘 EBS FM <이승열의 세계음악기행>에서 김밥레코즈 김영혁 대표의 제인 버킨 추모 방송을 들었다. 확실친 않지만 버킨의 방한에 김대표가 관여했던 걸로 보인다. 김대표에게 버킨과의 추억이 특별했나 보다. 삶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었다나. 그가 묘사한 버킨은 화려한 스타의 이미지보단 따스한 인품과 타인을 향한 사랑을 가진 현인(賢人)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