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열린 강산에 단독콘서트 <+1 재회>
아버지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좋게 말하면 황금색 나쁘게 말하면 똥색 그랜저엔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가 내장되어 있었다. 앞 좌석 사이에 있는 테이프 함엔 송창식 윤형주의 트윈폴리오와 이문세 4집, ‘You Give a Love Bad Name’과 ‘Livin’ On a Prayer’가 실린 본 조비의 <Slippery When Wet>(1986)과 존 덴버, 사이먼 앤 가펑클 베스트 앨범 같은 테이프가 들어있었다. 그 중 하나가 킹레코드에서 나온 강산에 1집 <강산에 Vol.0>(1992)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 오프닝 곡 ‘할아버지와 수박’과 ‘…라구요’, ‘예럴랄라’같은 곡들이 익숙하고 심지어 ‘검은비’와 ‘돈’처럼 덜 알려진 곡들도 선명하다.
11월 12일 일요일 저녁, 신한play 스퀘어홀에서 열린 강산에 콘서트 <+1 재회>에 다녀왔다. 2018년 <좋~습니다> 이후로 5년만에 하는 단독 공연이며 정말 오랜만에 밴드 편성으로 꾸렸다고 한다. 초반엔 복서의 링 러스트(긴 공백기로 무뎌진 실전 감각)처럼 살짝 긴장이 덜 풀린 모양새였다. 점차 보헤미안 적인 정서에서 뻗어나오는 자유로운 몸짓으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해 갔고, 이내 역시나 무대를 위해 태어난 사람임을 입증했다. ‘넌 할 수 있어’가 실린 2집 <나는 사춘기>(1994) 수록곡 ‘노란 바나나’와 딩고 뮤직에서 혁오와 공연하기도 한 ‘이구아나’, 훵키-디스코-신스팝 ‘떡 됏슴다’로 이어지는 유쾌함에 조금씩 분위기도 업되었다. 건반연주자 고경천과 기타리스트 최만선을 비롯, 오래 합을 맞춰온 밴드와도 조화로웠다.
조금 일찍 끝나 아쉬웠던 정규 공연은 앙코르로 완벽 상쇄되었다. “히트곡은 얼추 다 한 것 같은데 앵콜 때 뭘 하시려나?’ 했는데 강산에 곡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3집 <Vol.2 삐따기>의 타이틀 트랙 ‘삐딱하게’를 해줬다. 지드래곤의 동명이곡과는 상이한 매력으로 “그가 서 있는 땅 삐딱하게 기울어져있네”란 반항끼가 강산에답다. 제임스 브라운 풍의 “Get Up Stand Up’ 구절에 사물놀이를 결합한 ‘깨어나’와 밥 말리와 산타나를 섞어 놓은 듯한 잼(Jam) 질감의 ‘쾌지나 칭칭나네’까지, 강산에 매력을 극대화한 앙코르 무대였다.
강산에하면 보통 ‘…라구요’와 ‘넌 할수 있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같은 구수하고 한국적인 록을 떠올린다. 실제로도 그런 곡들로 입지를 쌓았지만 상기한대로 펑키 디스코와 레게(8집 수록곡 ‘나의 기쁨’), 이 날 앵콜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 어쿠스틱 질감의 ‘지금’ 등 음악적 실험도 다채로운 뮤지션이었다.
한국적 록 특성과 새로운 감각이 잘 결합된 작품이 바로 정규 7집 <강영걸 Vol.6>(2002)이다. ‘명태’와 ‘와그라노’같은 토속적인 곡들에 힙합과 전자음악을 가미한 ‘명태’와 ‘와그라노’같은 곡들은 강산에가 결코 한 곳에만 머무는 아티스트가 아님을 드러냈다. 토테미즘 애니미즘같은 부족 신앙이 떠오르는, 가사처럼 발가벗은 채 대지에 드러누워 태양의 정기를 받으며 될 듯한 ‘Sun Tribe’도 숨겨진 수작이다.
사실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스퀘어홀’이란 공연 장소를 기억했고, 아무 생각 없이 한강진 블루스퀘어홀에 갔다가 먼가 쎄해서 검색해보니 합정 메세나폴리스에 있는 신한play 스퀘어홀이었다. 겨우겨우 시작 전에 도착했다. 그래도 공연 분위기가 첨부터 끝까지 정말 좋았다. 오른쪽 두 칸 옆 아주머니는 정말 찐팬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곡을 따라불렀고 맨 앞줄 청년도 ‘쾌지나 칭칭나네’에 신나게 리듬을 탔다. ‘…라구요’에 눈물을 훔친 중년 여성도 있었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봤다. 육십세 나이가 무색한 퍼포먼스는 육십세의 물리적 나이가 무색한 퍼포먼스는 그가 늘 젊은 감각의 소유자였음을 드러냈고 모두가 좋아할 명곡들부터 음악적 개성을 공연 중 멘트에서 앞으로 공연을 더 자주 할 것임을 공표한만큼 그와 조만간 ‘재회’할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