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에 발표된 개성 넘치는 음반 12장 - 1부
해의 마지막, “1973년의 앨범”을 생각해본다. 뒷자리 숫자 3을 맞춘 건 이해하나 하필 왜 73년이냐라고 한다면 "반세기가 주는 무게감"이라고 답하겠다. 각설하고, 이 음반들은 1973년에 나온 가장 훌륭한 음반 리스트가 아니다. 마빈 게이의 <What’s Going On>이나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같은 절대 명반은 나 말고도 소개할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뺐다. 록의 전성시대인 70년대인만큼 록 음반이 많지만 다른 장르도 더러 챙겼다.
2053년에 회고할 2003년 음반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며.
https://www.youtube.com/watch?v=bc-E78guBLI
데이비드 보위 - Aladdine Sane
잘 알려진 음반을 뺀다면서 초장부터 데이빗 보위는 뭐냐! 일갈할 독자가 있을 테다. 부드러운 시작으로 골랐으니 한번 봐달라 <Low>(1977)-Heroes(1977)-Lodger(1979)로 이어지는 베를린 3부작이나 “지기 스타더스트” 페르소나 절정기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1972), 갠적으로 애정하는 Hunky Dory(1971)만큼 언급 빈도 높진 않으나 1973년에 나온 <Aladdin Sane>도 그의 음악성을 논하기에 부족함 없다 켄 스콧과 보위가 공동 프로싱한 이 음반엔 스톤즈를 커버한 ‘Let’s Spend the Night Together’와 똑부러진 글램 록 ‘The Jean Genie’ 같은 좋은 곡이 실려있지만 역시 타이틀 곡 ‘Aladdin Sane’을 빼놓을 수 없다. 마이크 가슨의 피아니즘이 서늘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보위의 가창도 어느때보다 서늘하다. 마이크 가슨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서 종종 소식을 접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오르간-드럼-피아노 트리오 구성으로 공연한거 보면 아직 팔팔하신가 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GWJ5XiwbV0
톰 웨이츠(Tom Waits) – Closing Time
덥수룩한 수염과 안개 자욱한 목소리, 독보적인 읊조림. 어느 하나 평범한 것 없는 톰 웨이츠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뮤지션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로 따지면 영화 감독 박찬욱이 웨이츠 광팬이고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Anywhere I Lay My Head>에서 “웨이츠 지지자”다. 민망하지만 화장실에서 로버트 다이머리가 엮은 <죽기전에 들어야하는 1001 음반 >을 즐겨 읽는데 <Swordfishtrombones>(1983)과 <Rain Dogs>(1985) 등 네 장이나 실려 있는 걸 보고 “대단한 아티스트구나” 짐작했다.
웨이츠의 음악에선 술 냄새가 난다. 위스키든, 독한 와인이든, 저렴한 맥주든간에. 모자를 눌러쓴 채 피아노앞에 앉아 몇십분 피아노를 두드리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팝송의 일반적 범위 혹은 체계는 까먹는다. <미스터리 트레인>(1988)과 <커피와 담배>(2003) 등 여러 편에 출연할만큼 자무시와 절친한 그는 최근 폴 토마스 앤더슨 <리코리시 피자>에서 영화 감독 역할로 나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ioixZtoTp00
뉴욕 돌스(New York Dolls) - New York Dolls
대중음악사엔 획기성 또는 분기점 측면에서 평가받는 음반이 더러 있는데 뉴욕 돌스의 1973년 데뷔작 <New York Dolls>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이 음반은 하드 록과 프로토 펑크, 글램 록과 펑크 록의 다양한 영지에 깃발을 꽂고 있어 키스와 라몬즈, 영국 글리터록 밴드들이 함께 들린다. 짧고 굵은 ‘Trash’와 에드거 윈터 그룹의 72년 작 동명 곡과는 또다른 질감의 ‘Frankenstein’, 소닉 유스가 커버한 바 있는 대표곡 ‘Personality Crisis’ 등 매력적인 곡이 한가득이다.
음반의 프로듀서는 토드 룬드그렌. 1973년 3월 프로그레시브 팝 걸작 <A Wizard, a True Star>를 발매한지 약 4개월만에 <New York Dolls>가 나왔으니 토드에게도 73년은 매우 중요한 해인 셈이다. 배드핑거의 파워팝 걸작 <Straight Up>(1971)과 헬로 피플의 덜 알려진 글램 록 수작 <The Handsome Devils>(1974), 미트 로프 <Bat Out of Hell>(1977) 등 토드의 프로듀싱 목록도 화려하다.
뉴욕 돌스의 전성기는 짧았다. 걸그룹 샹그리-라즈를 지원했던 프로듀서 셰도우 모튼이 프로듀스한 2집 <Too Much Too Soon>(1974)도 평가가 좋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개성강한 멤버 데이비드 요한슨, 실뱅 실뱅은 흩어진 다음에도 음악 작업을 지속했고 기타리스트 조니 선더스는 하트브레이커스와 함께 펑크 아이콘의 지위에 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PXX5-p6sUwI
캔(Can) - Future Days
캔하면 자동반사적으로 배기성 이종원 듀오의 ‘내생에 봄날은'를 떠올릴 테지만 오늘 같이 들어볼 캔은 독일 쾰른(Cologne)에서 결성된 록 밴드다. 발음도 칸이 가깝겠다. 캔은 노이!와 파우스트와 함께 크라우트 록의 대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크라우트 록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까지 서독에서 발전한 실험적 록의 한 형태로 직접 들어보면 그 아방가르드함에 홀딱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캔을 첨 접한건 라디오에 흐른 ‘Vitamin C’였다. 원곡이 흐른건지 성기완의 그룹 3호선 버터플라이의 버전을 들은건지 헷갈리지만 참 재밌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Vitamin C’가 실린 1972년 작 <Ege Bamyasi>와 울리히 아이히베르그(Ulich Eichberge)의 앨범 디자인이 환각적인 1971년 앨범 <Tago Mago>, 그리고 이 <Future Days>가 밴드의 에센셜로 불린다. 나흘 전 지하철과 거리를 걸으며 수록곡 ‘Future Days’와 ‘Spray’, ‘Moonshake’ 더없이 독창적이고 모던한 곡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5NylZ5NzRVo
케빈 코인(Kevin Coyne) - Majory Razorblade
이 양반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예전에 재밌게 들은 <Majory Razorblade>가 73년작이길래 소개해보는 것이다. 딱 이 음반이 전부다보니 나도 코인에 관해 배우는 입장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건 다작이고 폴리스의 기타리스트 앤디 서머스나 섹스 피스톨스의 존 라이든 등 뮤지션이 좋아하는 뮤지션이라는 것. Discogs 사이트를 훑어보니 1980년대엔 아트록과 신스팝도 시도했다. 이런 카멜레온같은 뮤지션들에게 늘 관심이 간다.
80분에 달하는 더블앨범엔 멋진 곡 한다발이다. 컨트리 풍의 ‘I Want My Crown’ , 개성적 창법 ‘Lonesome Valley’과 비전형적 기타 연주의 'Dog Latin' 등 코인의 개성이 뚝뚝 묻어나오는 곡들에서 왜 <Majory Razorblade>가 73년의 수많은 고전 틈바구니에서 종종 언급되는 작품으로 남았는지 알 수 있다. 캣 스티븐스와 오래 파트너십을 이뤘던 장 루셀(Jean Rousel)의 건반 연주가 청량한 'Marlene'은 앨범을 대표할만한 수작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wvvnUCIzJA&list=PLpZzCI8A084tWTyWGyRGZnpkOt1V4bPQ3
공(Gong) <Angel’s Egg>(1973)
이번엔 쾰른에서 파리로 간다. 호주 뮤지션 데이비드 알렌(Daevid Allen)과 영국 뮤지션 질리 스미스(Gilli Smyth)가 프랑스에서 결성한 밴드 공(Gong)은 간단한 이름과 대비되는 무지막지하게 실험적인 음악을 구사했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프랑스 출신 드러머 피에르 묄렌(Pierre Moerlen)이 주도권을 잡아 <Gazeuse!>(1976)와 < Expresso II>(1978)을 발매했고 이후에도 공질라(Gongzilla)와 뉴 욕 공(New York Gong)등 다양한 명의로 활약했지만 전성기는 데이비드 알렌이 이끌었던 1970년대 중반까지였다.
이 시기의 집약성은 실로 놀랍다.
1970년 <Magick Brother>를 시작으로 <Camembert Electrique>(1971),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사운드트랙 <Continental Circus>(1972)과 롤링스톤 매거진에서 “가장 위대한 프로그레시브 50선” 중 하나로 선정한 1974년 작 <You> 모두 고밀도 스페이스 록을 들려주고 있다.
1973년은 이들에게 가장 의미있는 해. <Flying Teapot>과 <Angel’s Egg>로 창작력이 폭발했다. <Flying Teapot>과 <Angel’s Egg> 더불어 이듬해 <You>로 이어지는 “Radio Gnome Invisible” 3부작은 밴드 서사의 중심축을 다졌다. 기묘하고 기이하지만 한편으론 사랑스럽기까지한 공의 우주적인 사운드스케이프는 ‘Prostitue poem’과 ‘Flute Salad’, ‘Eat That Phone Book Coda’처럼 독특한 트랙명 곳곳에 녹아 있다. 가사를 몰라도 이들이 얼마나 이상한(?) 일을 벌이고 있는지 체험하게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