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50주년: 유니버설 뮤직
2023년은 "힙합의 해!"가 아닐까 싶다. 우선 현재 몸담고 있는 웹진 IZM에서 “힙합 탄생 50주년 기념: 힙합을 빛낸 래퍼들” 이란 타이틀로 래퍼 50인을 소개했다. 나는 커티스 블로우와 워렌 지, 맙 딥과 푸샤 티에 대해 썼다. 게스트로 나가는 국방FM <김종서의 러빙유> 12월 15일 방송에서 성탄절을 맞아 “크리스마스 캐럴과 힙합”이란 주제로 런 디엠씨의 ‘Christmas in Hollis’와 카니예 웨스트 ‘Christmas in Harlem’ 등 네 곡을 선곡했다. 그러고보니 한국 힙합사에 한 위치를 점하는 듀스 1집 <Deux>도 1993년에 나왔고 2023 서울레코드페어에서 30주년 기념 이현도의 스페셜 토그가 진행되었다.
힙합 엘피도 많이 샀다. 주로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힙합타운을 이용했고 인플로우 레코드의 폐업세일에서도 좋은 음반을 많이 구했다. 최근 30분 홈트레이닝을 재개했는데 힙합 레코드 한 면 들으면 얼추 시간이 맞다. 블랙 잭(Black Jack)과 투팍(Tupac), 헬타 스켈타(Heltah Skeltah)를 들으며 운동하고 있다,
이런저런 개인적인 에피소드 이외에도 빌보드의 위대한 래퍼 50인 선정(1위) 등 다양한 관련 콘텐츠가 생긴 이유는 대부분의 음악 전문가가 1973년을 힙합의 시작으로 규정함에 따라 올해가 힙합 탄생 50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유니버설 뮤직도 이를 기념하기 위해 12월 16일 토요일 밤 힙합 50주년: 유니버설 뮤직(Hip-Hop At Fifty by Universal Music)을 열었다.
9시 반 넘어 도착 행사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데드엔드 무브먼트에 소속된 DJ Andow가 플레이하고 있었다. 해방촌 근처 웰컴레코즈 직원으로 종종 보던 분이라 반가웠다. 이어 바이스버사가 나왔다. 인스타 스토리에 반응한 친구 표현처럼 귀여운 구석이 있는 래퍼였다. 이 날 게스트 래퍼들은 힙합 50주년을 기념해 위대한 래퍼들의 곡을 하나씩 골랐는데 바이스버사는 무려 켄드릭 라마의 ‘Humble’을 골랐다. <good kid, m.A.A.d city>(2012)와 <To Pimp a Butterfly>(2015)만큼 만장일치 명반 평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2017년 작 <DAMN.>을 무척 좋아한다. 앨범이 나오자마자 CD로 샀던 기억이 난다.
행사장 한켠에 50장의 힙합 명반과 짤막한 소개를 담은 간이 전시가 있었다. 닥터 드레의 <The Chronic>(1992)과 N.W.A의 <Straight Outta Compton>(1988)같은 유명작부터 이즘에서도 50 래퍼 중 하나로 꼽았던 DMX의 <It’s Dark and Hell is Hot>(1998)와 오리지널 LP로 소장중인 우 탱 클랜 멤버 즈자(GZA)의 <Liquid Swords> 등 반 세기 역사 지형도였다.
전시 옆에는 일본 디자이너 니고의 강아지가 그려진 티셔츠를 판매중이었다. 일본 패션 디자이너 겸 뮤직 프로듀서인 니고는 패션 브랜드 A Bathing Ape 의 설립자로 잘 알려져있다. 그가 1999년 발매한 <Ape Sounds>의 LP를 소장중이기도 하다.
프리 드링크 두 잔에 서서히 취기가 올라올때쯤 골드부다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친동생인 릴체리와 함꼐한 <Space Talk>(2022)와 <CHEF TALK>(2020)를 재밌게 들었지만 이 날 무대는 아쉽게도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고 막판에 올라온 릴체리도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
“힙합 역사 되짚기”가 핵심인만큼 디제이들도 힙합 명곡을 많이 틀었다. 카니예 웨스트의 ‘Dark Fantasy’와 닥터 드레 ‘Still D.R.E.’가 플로어를 달궜다. 2017년 암스테르담 교환 학기 때 들었던 빅 션의 ‘Bounce Back’도 반가웠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남자친구 정도로만 알았던 빅 션의 <I Decided>는 아마도 2017년에 가장 많이 들은 힙합 앨범으로 ‘Moves’와 ‘Light’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곡들로 채워져있다.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작년 이맘때쯤 정규 2집 <S:INEMA>를 중심으로 IZM과 인터뷰한 알앤비 뮤지션 쎄이(SAAY)는 지난 11월 싱글 ‘Rollercoaster’와 ‘Ex-Tra’를 발매했다. 연신 자신이 유니버설 뮤직 소속 아티스트임을 강조한 그는 음원을 튼듯 깔끔한 가창을 들려줬다. 쎄이 버전 위켄드의 ‘Die for You’도 인상적이었다.
효창공원으로 가는 마지막 지하철은 11시 59분이었다. 결과적으론 지하철 포기하고 이센스 택한건 한 치 후회가 없다. 택시 잡느라 40분 밖에서 벌벌 떨다 결국 심야버스를 탔지만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 보면 조금은 후회한걸지도…ㅎㅎ)
힙합 탄생 50주년의 거대 주제 이외에도 2023년은 국내 팬들의 많은 기대를 모았다. 빈지노와 다이나믹 듀오 등 “국힙” 대표 래퍼들이 귀환을 알렸기 때문이다. 7월 13일 발매된 이센스의 정규 3집 <저금통>도 국힙 최대 기대작중 하나였다. 개인차는 있겠으나 대부분 <저금통>을 호평했고 나도 재밌게 들은 기억이다.
뻔한 말이지만 실력에 놀랐다. 멘트나 액션은 자유롭고 루즈(loose)했지만 랩에 들어설 시한폭탄처럼 강력했고다. ‘Piggy Bank’같은 신보 트랙들을 라이브로 듣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차트에서의 위력은 최전성기라고 보기 어렵지만 지난 10년간 힙합의 위력을 피부로 느꼈다. 1970년대 기타리스트의 시대는 2010년대 <쇼미더머니>속 래퍼 시대로 변해있었고 힙합은 청춘과 젊음을 대변하는 스타일이 되었다. 힙합이 상대적으로 젊은 장르인 힙합도 이미 반세기 역사를 쌓았고 전성기를 누리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쳤다.
20세기 가로지른 여러 역사적 사건들, 정치적 메시지에 전념한 퍼블릭 에너미, 더 루츠는 힙합을 더욱 사회와 밀접하게 결부했다. 행사장 한 켠에는 제이지와 에미넴, 드레이크처럼 아이콘에 오른 래퍼들의 모형도 있었다.
2004년은 한국 힙합에 중요한 해였다. 다이나믹 듀오와 에픽하이가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즐겨들은 데프콘 2집 <콘이 삼춘 다이어리>과 피타입의 <Heavy Bass>, 데드피 <Undisputed>같은 수작이 나왔다. 소울컴퍼니와 빅딜 레코즈 같은 레이블이 등장한 것도 이 때였다. 내년엔 국힙 활황이었던 2004년의 2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관련 콘텐츠들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