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팬서리스의 더블린 콘서트에 다녀오다
공연이 끝나고 부랴부랴 더블린 스미스필드쪽 칵테일 바에 달려갔다. 공연이 어땟냐는 친구의 물음에 일단 “쿨했다”라고 요약한 후 잡다한 설명을 붙였다. 일단 요즘 꽤 잘 나가는 젊은 뮤지션이라고 문을 열었더니 친구는 “아이스 스파이스랑 같이한 그 노래(Boy’s a Liar Pt.2) 말곤 뭐 없잖아”라며 웃음지었다.
하나의 일화일 뿐이나 공연장에서 느낀 열기완 너무 다른 멘트였다. 십대로 보이는 관객들은 비교적 빠른 핑크팬서리스의 노래들을 일제히 따라불렀다. 틴에이저들의 청량한 떼창은 록 콘서트와는 다른 청량함과 상쾌함을 안겨줬고 실내도 제법 추운 공연장에선 배꼽티로 개성을 한껏 드러낸 소녀들의 댄스파티가 열렸다.
핑크팬서리스는 Z세대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틱톡이 대변하는 숏폼콘텐츠 덕에 그의 음색과 소리가 십대 문화에 확산되고, 스며들었다. 틱톡을 이용하지 않다 보니 어느 곡이 어떤 맥락에 사용되는지 잘 모르지만, 가사와 분위기와 관계없이 유비쿼터스적으로 활용될 거라 짐작해 본다.
틱톡 문화와 노랫말의 의미도 잘 모르는 난 핑크팬서리스를 반만 즐기는 걸까? 1집 음반 Heaven Knows(2023)를 재밌게 들은 이유는 소리였다. 드럼 앤 베이스와 UK개러지, 뉴진스와 결부된 볼티모어 산 저지 클럽 등 전자음악의 하위장르를 자유로이 섞는다. 여기에 칠(Chill)한 톤과 꽤나 흡인력있는 멜로디를 얹는다. 12인치 레코드로 5분대를 훌쩍 넘어가며 중독성을 그러모으는 20세기 테크노/하우스와 달리 1~2분대로 뚝 끊어버린다. 이 부분도 Z세대 음악 청취와 닮았다.
19세기에 지어진 유서 깊은 Olympia Theatre(현재는 3Olympia Theatre란 명칭을 사용중이다)에서 펼친 2월 20일 더블린 콘서트는 소리 본연의 쾌감과 십대 관중의 열기가 버무러진 높은 에너지 레벨의 시간이었다. 2021년 믹스테이프 <To Hell with It>에 실린 드럼 앤 베이스 넘버 ‘Break It Off’로 시작해 작별 인사를 건넨 ‘Nice to Meet You’까지 고밀도 70분을 구성했다. ‘Pain’과 ‘I Must Apologise’처럼 익숙한 소리가 나오자 고목 같던 내 몸뚱아리도 자연스레 이완되고 어느세 살랑살랑 리듬을 탔다. 본격적으로 팔을 뻗기엔 옆 사람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지만.
미리 설계해 둔 트랙 위로 기타와 드럼 등 리얼 세션의 밴드 음악적 즐거움을 부가했고 특히 리듬 트랙과 퍼커션이 달라붙을 때의 타격감이 상당했다. 세션 멤버들이 조명받을 기회는 많지 않았으나 핑크팬서리스가 무대 뒤로 퇴장하고 난 후 2~30초간의 짜릿한 즉흥 연주가 이어졌다.
3Olympia Theatre는 과거 극장의 형태를 유지하다보니 한복판 두터운 원주가 시야를 저해했지만 이게 또 왠지 모를 신비감을 가져다주었다. 원주가 핑크팬서리스를 가릴 때의 야속함은 가녀린 팔부터 서서히 실루엣이 비치며 마치 자스민 공주가 손 내밀며 다가오는 설렘으로 치유되었다.
45분 내외였던 페스티벌 셋리스트와 달리 ‘Capable of Love’와 ‘The Aisle’, 나이지리아 래퍼 Rema가 참여한 ‘Another Life’등 <Heaven Knows> 수록곡들이 라이브 데뷔했고 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되었다. 파워퍼프걸을 좋아하고 바세린이 든 클러치를 늘 들고 다니는 2001년생 젊은 뮤지션의 다음 음반이 어떤 사운드스케이프를 그려낼지 더욱 궁금해지는 더블린 콘서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