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클래식 30주년 콘서트 ‘1994’
작년 이맘때쯤 대학로 더굿씨어터에서 <응답하라 8090 릴레이 콘서트 시즌 1 김광진>을 관람했다. 그때의 좋은 기억이 2024년 3월의 마지막 날 이화여자대학교 삼성아트홀에서 열린 <더클래식 30주년 콘서트 ‘1994’>로 되살아났다. 김광진과 박용준의 듀오 더클래식은 “가요계 르네상스”로 불렸던 1990년대를 아름다운 곡들로 수놓았다.
‘30주년 콘서트’인 만큼 히트곡을 망라했다. 1994년 더클래식 1집 <마법의 성>의 연주곡 ‘그녀의 모든 아침’으로 힘차게 문을 연 이번 공연은 1집 ‘이별 덤덤’과 ‘살리에르의 슬픔’, ‘우연? 운명!’ 같은 그간 라이브에서 보기 드물었던 곡들로 “찐팬”들에게 선물을 안겨줬다.
박용준에 비해 솔로 활동이 활발했고, 더클래식의 명곡들을 작사작곡했다보니 더클래식과 김광진을 동의어로 생각할는지도 모르지만, 박용준의 유려한 편곡 덕에 김광진의 멜로디 메이킹이 빛날 수 있었다. 조동익과 정원영 등 가요의 세련미를 추구했던 하나음악의 건반연주자로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은 박용준은 선배들과의 교류로 얻은 노하우를 더클래식에 투영했다.
박용준은 ‘여우야’와 ‘오비이락’ 같은 잘 세공된 퓨전 재즈 계열의 곡들에서 솜씨를 발휘했고 김광진 솔로 4집 <Solveige>에 수록된 ‘동경소녀’도 박용준 편곡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신중현의 아들이기도 한 신석철(드럼)과 이성렬(기타), 민재현(베이스) 등 베테랑 세션들이 ‘여우야’와 ‘동경소녀’의 편곡적 매력 한껏 살렸다.
더클래식과 김광진하면 ‘마법의 성’과 ‘송가’ 같은 명 발라드가 떠오르지만, 록적인 곡도 많다. “더 킬러”란 별명의 로큰롤 전설 제리 리 루이스에게 헌정한 ‘Jerry Jerry Go’와 소외된 이들을 위한 노래 ‘Hello, I’m Mr. Smile’처럼 록적인 넘버도 많고 <Solveig>에 수록된 ‘비타민’도 청중들의 흥을 높이기에 제격이다.
김광진의 보컬은 종종 불안하다. 음정도 자주 이탈하고 호흡도 들쑥날쑥할 만큼 일반적 기준으로서의 명창(名唱)은 아니지만 수줍은 소년의 순수함은 김광진 보컬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함이다. 솔로 시절 대표곡 ‘편지’와 ‘서툰 이별’ 같은 담담한 곡조에서 더욱 빛났다. 그리고 직접 불러보면 느끼겠지만 더클래식 노래는 고음 행렬이다.
1부와 2부 사이 팬들이 보내준 사연을 소개했다. 결혼기념일에 왔다는 중년 남성에겐 “더클래식 특제 엘피 시계”가 주어졌고, 김광진 솔로 1집과 더클래식 1집에 수록된 ‘엘피나’에서 “엘비나는 무슨 뜻인가요?”라는 질문에 “특정한 인물이라기보단 꿈에 그린 여인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되겠다”라고 답했다.
김광진은 초반부 “더클래식이 활동이 많진 않았지만 히트곡이 꽤 많아 멘트가 너무 많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농담 분위기에서 한 말이지만 정말로 생각보다 더 많은 곡들이 우리의 추억에 녹아 있고 팝과 록, 퓨전 재즈 등 어느 스타일의 곡이든 김광진의 빼어난 선율감에 탄력 받고 소구력을 확보했다.
그는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과의 “이시대 뮤지션 33인이 뽑은 나의 명곡 15” 중 하나로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를 꼽았다. “빌리 조엘의 화성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라고 말한 김광진은 작곡에 관한 빼어난 재능과 빌리 조엘과 필 콜린스, 배리 매닐로우 같은 팝계의 탁월한 송라이터의 연구로 멋들어진 곡을 쏟아냈다. 이승환의 ‘내게’와 ‘덩크슛’, 이소라의 ‘기억해줘’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앵콜로 대망의 ‘마법의 성’이 울려펴졌다.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의 후렴구에서 수백개의 종이비행기가 무대로 날아들었다. 더클래식 팬클럽 “광지니즈”가 준비한 특별 이벤트였다. 종이비행기로 현현한 팬들의 마음과 ‘마법의 성’의 동화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피날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