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카겔의 세 번째 Syn.THE.Size
DVD로 보던 핑크 플로이드 콘서트와 2019년 테임 임팔라의 맨해튼 공연이 떠올랐다. 전류처럼 장충체육관을 타고 흐르는 빛줄기가 환각을 테마로 했던 영미권 사이키델릭, 애시드 록 밴드를 불러왔다. 두 밴드와 실리카겔은 모두 공상과학과 정신분석학이 떠오를 만큼 날카롭고도 꿈결 같은 음악을 펼쳤다. 신서사이즈(Syn.THE.Size)로 명명한 이번 공연은 팬들이 남긴 문장과 미디어아트를 연상하게 하는 스크린 위 비주얼로 ‘관객과의 합성’을 내포한 상호적 체험이기도 했다.
이들의 음악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고도화된 연주와 기발한 음향에 기초했다. 코지 파웰을 연상하게 하는 김건재의 파워 드러밍과 넥스트의 프로그레시브 록 작품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가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베이스 기타리스트 최웅희에게서 트렌디 밴드 신의 최전선에 위치한 실리카겔 이미지와 상반되는 고전주의적 면모도 감지했다.
침착한 표정의 김춘추에겐 사운드메이킹형 기타 플레이어와 스테이지 휘젓는 기타 히어로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복잡한 페달보드로 이색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구현하지만 코드 뽑고 야생마처럼 질주하는 모습도 종종 목격한다.
무엇보다 김한주다. 이미 여러 페스티벌에서 목격했던 사운드 메이킹이 단콘에서 더욱 커다랗게 와닿았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Lucky Man’ 간주에 흐르는 무그 음색(실제로 무그를 쓰는진 모르겠다)이 들려왔고, 록시 뮤직 시절 거대 음향 장치 속 노브 조절하는 브라이언 이노의 섬세한 손길도 떠올랐다.
솔로 타임도 있었다. 그랜드 피아노 해머에 금속 장치를 꽂아 연출한 기묘한 소리가 전위적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를 상기했고 클래시컬 뮤직과 1940-50년대 풍 재즈를 두루 소화했다. 그의 롤 모델 혹은 가장 존경하는 연주자가 누구일지 궁금해졌다. 핑크 플로이드의 릭 라이트, 오스카 피터슨 혹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일지도 모르겠다.
5분이 넘어가도 관중 표정에서 지루함은 없었다. 외려 흘러가는 러닝타임에 비례해 심장박동과 흥분감의 크기도 커지는 듯했다. 탄탄한 합주와 극적인 곡 구성, 휘몰아치는 생악기와 전자음의 총공세로 청중을 홀렸다.
인스트루멘탈과 잼은 1970년대 록의 특질이다. 알코올과 약물에 취한 밴드 그리고 청중은 3분짜리 매끈한 매무새에 만족하지 못한 채, “More! More!” 을 외쳤고 즉흥과 자유로 점철된 연주는 10분이 넘도록 멈출 줄 몰랐다. 장충체육관의 10~20대 팬들은 반세기 전 캘리포니언들처럼 소리 환각의 황홀경에 빠져들었지만, 술병 대신 사전 배부된 손수건을 흔들었다.
품새 나는 음악은 통한다는 간명한 원리. 수십 년간 록 뮤직은 쉴 새 없이 변화했고 그사이 무수한 도태와 부활을 거쳤지만, 환각성과 확장성은 여전한 매력 포인트인가 보다. 갖가지 부가 요인을 전제한다고 해도 70년대 플로이드를 즐겼던 감성과 작금의 실리카겔이 주는 쾌감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