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로그 2 (2회)

알을 까고 나오는 새

by Eunyoung Kim


알을 깨고 나오려는


채령은 아미에게 고등학교 내내 오로지 하나의 단짝 친구였다. 그녀가 입학한 후 며칠 되지 않아서 아미에게 다가와 친구하자고 했다. 중학교를 시골에서 다녔고 서울의 고등학교로 입학했기에 서울에도 학교에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어떻게 채령이 아미를 선택했는지는 아미는 모른다. 채령이는 후에 알게 되었지만 당연히 전교에서 제일 예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어찌 시골에서 온 모든 것이 서툴고 내성적이어서 누구하고도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아미를 친구로 생각했는지는 아미는 채령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아미는 그것이 좋았고, 감사했다.


채령은 눈도 크고 입도 크고 약간 까므스름 하지만 건강한 피부를 가졌다. 큰 눈과 큰 입, 이목구비가 또렸해서 누구나 한 눈에 그녀의 미모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매력은 말을 하기 시작하면 피어난다. 얼굴에 시시각각으로 피어나는 다양한 감정이다. 활짝 웃을 때면 그 큰 입이 벌어져서 화사하게 피는 자목련 같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사랑하는 사람상의 반응이 없을 때 실망할 때에는 그 슬픔이 여실히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다. 그녀가 아미에게만 들려주는 비밀 얘기는 언제나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이다. 그녀가 사랑에 빠지면 그 대상이 그녀의 모든 세계가 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상은 다양하다. 새로 온 남자 선생님, 선배 언니, 엄마 가게에 놀러오는 이국의 단골손님 등이다. 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그녀에게 지극한 행복과 지극한 슬픔을 가져다 준다. 그녀가 그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말할 때면 슬프고, 섭섭하고, 안타깝고 한 미세한 감정들이 분명이 시시각각으로 그녀의 표정에서 구현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누구나 사랑하게 된다. 아미는 채령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 그건 자신이 그녀에게 할 이야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시골학교에서의 이야기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을 테고 그 외 자신이 고민하는 무한이나 우주, 아빠의 기후변화 같은 것은 더더욱 관심사가 아닌 것을 안다. 둘은 언제나 같이 다니면서 숨 쉬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아무도 모르는 교정의 구석이나 강당의 계단 같은 데 스며들어 숨어서 한없이 속삭였다. 감수성 깊은 자신들의 마음에 일렁이는 세상의 환영을 자신들의 앞날을 재잘거려 본다. 채령의 마음의 호수에 비치는 미래는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하는 신나고 밝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러나 아미의 마음의 호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은 텅 비고 무슨 환영이 비치긴 하지만 그것조차 흐릿하다. 형체를 알 수가 없다.


채령과 같이 한 고등학교 3년은 물같이 흘렀고 고3이 되면서 더 빨라졌다. 둘은 가끔 수업을 빼먹는 시간이 많아졌다. 채령이 제안하면 아미는 자동적으로 그녀를 따라서 채령만이 아는 교정의 구석으로 숨는다. 교실에서 공부해야 할 시간에 그곳, 아무도 보지 않는 비밀의 공간에서 그들은 영시를 외우거나 책을 읽었다. 채령은 에드가 알랜 포우의 '아나벨 리'를 외우기를 좋아했다. 그시를 암송할 때는 시의 리듬에 온 감정을 실은 그년의 표정은 아름답다.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 아나벨 리를 외울때는 마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듯이 애절한 표정에 애틋한 목소리를 답는다. 반면 아미가 좋아하는 시는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나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내 무덤에 사이프러스 나무조차도 심지 말아 주세요…." 이다.


아미는 시를 좋아하지만 고3에 들어와 푹 빠진 책이 있었다. 그 책을 아미는 어디나 들고 교정의 빈 벤치를 찾아서 때로는 채령과 같이 혹은 혼자서 읽었다. 다른 친구들은 책을 옆에 끼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조용한 벤치를 찾는 아미의 모습을 보고 '문학소녀'라고 놀린다. 그러나 그녀는 그 책이 자신을 구원할 수도 있다고 생각될 만큼 중요했다. 그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해 준 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새가 날아가는 곳은 아프락사스이다'. 아프락사스는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처음 그 문장을 대했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런 신이 있다고? 악마도 아니고 천사도 아닌 것을 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건 그녀의 정신체계의 지각을 흔드는 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니는 교회에서 일요일마다 들은 설교의 전부는 '악마를 조심해라. 악마가 네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였다. 그리고 신앙이란 악마와 싸우는 전쟁이다.


수업시간에 앉아 있으면 항상 머릿속은 데미안의 세계로 가 있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다른 아이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아미는 알 속에서 막 생긴 작은 새가 날개를 오므락거리며 뒤뚱뒤뚱하면서 아직 굳어지지 않은 부드러운 부리로 딱딱한 껍질을 안에서 콕콕 찧는 모습이 그려진다. 겉에서는 안 보이나 작은 새로 변해가는 알껍질 속의 세상, 그 여린 새가 딱딱한 껍질을 부드러운 부리로 깨뜨리려고 애쓰는 몸부림. 알도 새도 아닌, 중간 형태의 생명체의 이미지를 그려본다. 그리고 아직 날개도 돋지 않은 작은 새가 얼른 새가 되어 알을 깨고 날아가길 바라본다. 그 새가 아프락사스에게 날아가길. 천사에게 날아가는 것도 싫고 악마에게 날아가는 것도 싫다. 천사도 악마도 아닌, 그 두 개를 다른 형태로 지니고 있는 아프락사스에게로 날아가길 바라본다. 아미도 새가 되고 싶다. 엄마와 아빠, 학교와 선생님들로 둘러쳐진 자신의 알의 세계를 깨고 훨훨 날아가고 싶다. 아프락사스에게로.


늘어진 한쪽 어깨를 추스리면서 도서관의 높은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오른다. 숨이 차서 계단 난간에 잠시 손을 얹었다. 다 왔나 싶어서 올려다보니 아직 계단이 몇 개 더 남았다. 그 끝에 도서관의 두꺼운 나무 문이 웅장하게 서 있다. 겨우 닿은 도서관 입구에서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이 깊어가는 하늘은 맑고 높았다. '아! 하늘은 저렇게 맑고 높은데!!…' '하긴 누가 나의 마음 같은 것에 신경을 쓰겠어?' 하는 생각이 얼른 뒤따랐다. 드디어 도서관의 묵중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서관 안은 햇빛이 가득하고, 3층 꼭대기의 유리 천장에서 빛이 물결치듯 찰랑거렸다. 밖의 차가운 공기와는 달리 따뜻하다. 2층에 있는 자신이 늘 앉는 자리로 가려면 중정 가운데 있는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오늘따라 이 나선형 계단은 왜 이리도 높고 계단 수는 이리도 많을까! 몇 번을 돌았는데도 아직 더 돌아야 한다.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며 힘겹게 올라갔다.


마침내 마지막 계단에 올라서니 눈앞에 높은 책장들이 아미의 방향에서 비스듬하게 창 쪽으로 줄줄이 서 있다. 책장 사이로 저쪽 창가를 보았다. 자신의 자리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 자리가 비어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은 그 자리라도 나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해' 아미는 속으로 간절히 빌며 그곳을 보았다. '오늘 같이 힘든 날 그 자리마저 내가 앉을 수 없다면 내가 너무 불쌍해.' 라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핑 돌았다. 집은 견디기 힘들어 도서관으로 향했는데 사실 이곳으로 온 것은 저 자리에 앉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이 넓은 세상에 자신의 무거운 마음을 잠깐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머리에 스치자 아미는 흑, 하고 설움이 북받쳤다. 숨이 막힌 듯 흐느낌이 새어 나와서 황급히 입을 막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책장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좁은 책장 사이를 지나서 커다랗고 높은 유리벽이 있는 창가로 나왔다. '아, 있다. 내 자리가 있다.' 유리벽으로 쏟아지는 환한 햇살도 아미의 기분을 부추겨 주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낸 것처럼, 누군가가 금방 그 자리에 앉을 새라 지친 걸음을 재촉해서 갔다. 의자로 가자마자 어깨에 걸린 가방부터 의자에 내려놓았다. 제 무게로 스르륵 내려온 가방은 구겨져서 내려앉았다. 그리고 옆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엉덩이가 의자에 닿자마자 온 몸의 무게를 의자 등받이에 한껏 싣고 몸이 약간 뒤로 기울어진 채 다리를 책상 밑으로 죽 뻗었다. 도서관 유리 벽 너머의 가을 풍경이 펼쳐져 보인다. 불타는 단풍나무들이 그리고 이어서 황금색 잎을 단 은행나무들이 서로 대조되어, 가는 계절의 마지막 축제인 양 화려하다. 바람이 불자 나뭇가지에서는 붉은 색 단풍잎과 황금색 은행잎이 바람에 섞이어 날리며 중정 안을 휘돌다가 한쪽 구석에 내려 앉는다. 점점 앙상해지는 가지에 아직도 매달린 마지막 잎들은 초라해 보인다. 잎사귀가 거의 다 떨어진 헐거운 떡갈나무 가지 너머로 푸른 하늘이 높고, 한 줄기 바람이 또 불어와 남은 낙엽들마저 우수수 떨어서 중정의 휘몰이 바람속으로 던져놓는다.


아미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서 책상에 올려놓았다. 데미안이 손에 잡혔지만 참았다. 볼 시간이 없는 줄 알면서도 매번 가지고 다닌다. 참고서와 공책, 필통을 꺼내 놓고, 기말고사를 위해 꼭 봐야 할 부분을 책갈피에 붙은 빨간 북마크를 확인하고 교과서를 폈다. 칼라코드로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형광등으로 빼곡하게 페이지마다 현란하게 줄이 쳐져 있다. 빨간색은 반드시 공부해야 할 것, 노란색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초록색은 이미 아는 것, 파란색은 아미가 알긴 하지만 대강 알아서 확인이 필요한 것. 빨간색부터 시작해야 한다. 눈이 예상시험문제의 빨간색을 따라가다가 다시 창밖으로 간다. 바람이 그새 낙엽들을 모아 한쪽 구석에 많이도 쌓아놓았다. 노란 은행잎들 한곳에 소롯이 쌓였다.


문득 지난 가을 채령의 손에 이끌리어 교정에서 가장 오래된 큰 은행나무 아래에서 우리가 했던 노란색 축제가 생각났다.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 둘이 앉으니 세상이 온통 노랗게 보였다. 은행나무 주변이 모두 노랗다. 그리고 바람은 여전히 더 많은 은행잎을 떨구어 그 위를 덮는다. 문득 채령이 은행잎 한 움큼을 두 손에 잡더니 아미의 머리 위에 뿌리며 깔깔 웃는다. 아미도 그렇게 했다. 지나가던 친구들이 모두 우리 주변으로 몰려와 은행잎을 누구에게나 뿌리기 시작했다. 곧 하늘과 땅과 소녀들의 몸과 벤치가 흩날리는 은행잎으로 덮혔다. 그리고 그 많은 은행잎들 사이로 소녀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나가 온 교정으로 퍼졌다. 이젠, 그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이리라. 아미는 슬퍼졌다. 내년 이쯤에는 자신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그렇게 기대되지도 않는다. 세상은 원초적으로 헛되고 헛되지 않은 것이 없기에 웃음도 기쁨도 헛되다. 화려할수록, 아름다울수록 더 슬펐다. 순간을 붙잡을 수 없는 생의 덧없음이 가을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기억과 함께 지난 금요일 점심시간의 기억이 겹쳐진다. 채령이 수업이 끝나고 교정을 같이 나오면서 물었던 말. "너, 요즘 왜 그렇게 멍해?" 채령의 평소의 목소리와 달리 차갑고 날카로웠다. 싸늘한 바람이 돌았다. 그때 아미는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도 얼떨결에 떠오르는 대답했다. '나 요즘, 좀 힘들어. 딱히 수능만은 아닌데…'라고 했다. "너만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마. 다들 힘들어"라고 냉정하게 뱉어버리듯 말하고는 채령은 아미의 곁은 싸하게 지나서 사라져버렸다. 둘은 하교할 때도 늘 같이 교문을 나갔다. 그런데 혼자 가 버렸다. 당황한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보니 어느새 그녀의 모습이 저 멀리 교문 쪽으로 혼자 가고 있었다. 늘 같이 걸어가던 그 길을 그녀가 혼자 걸어간다. 아미는 채령을 따라갈 생각도 못하고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속이 먹먹했다.


창밖을 바라보며 아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의 차가운 눈길과 바람에 쓸려가는 낙엽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언제부터 모든 것이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아빠의 부재, 엄마의 불안한 표정, 채령의 차가운 눈길. 고3이라는 현실 위에 모두가 무거운 짐으로 가슴을 누른다. 이 짐을 가지고 수능이라는 마지막 테이프를 끊어야 한다. 몇등으로 들어가든 마지막 테이프를 통과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 책상 위에 펼쳐놓은 참고서를 바라보았지만, 글자들은 춤을 추며 그녀를 비웃는 듯했다.


그때였다. 책상 위에 놓인 데미안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볼 시간이 없다고 참았던 그 책. 아미는 무심코 손을 뻗어 책을 집어들었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려는 순간, 책 사이에서 무언가가 미끄러져 나왔다. 낡은 북마크였다. 언제 끼워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북마크가 꽂혀 있던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손때가 묻은 연필 밑줄이 쳐져 있었다."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아미는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또 읽었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 문장이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은행잎 하나가 유리창에 부딪혀 잠시 머물다 날아갔다. 아미는 책을 가슴에 안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 하나의 세계를 깨뜨린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미는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아미의 뇌정원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우려 하고 있었다.


플로로그 (1)에서 계속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