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나/프로로그

물이 없는 정원

by Eunyoung Kim

플로로그

물이 없는 정원

ChatGPT에게 시를 써달라고 한 적이 있다. 가을 은행나무에 대한 시. 돌아온 시는 나쁘지 않았다. 은행잎의 노란빛을 "대지에 돌려주는 황금빛 편지"라고 표현했다. 제법 운치가 있었다. 나는 그 시를 읽으며 묘한 기분에 빠졌다. 감탄과 불안이 동시에 올라왔다. 감탄은 짧았고 불안은 길었다.

그 불안의 정체가 뭔지 한참을 생각했다. 결국 이것이었다. AI가 나보다 글을 잘 쓴다면, AI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빠르게 계산한다면,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나의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나의 감정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나'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이 질문이 나를 뇌과학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쓰고 있는 책 속으로 나를 더 깊이 밀어 넣었다.


나는 지금 『아미의 뇌정원』이라는 책을 쓰고 있다. 고3 소녀 아미가 자기 뇌 안에 펼쳐진 정원을 탐험하는 이야기다. 뇌간은 '생명의 뿌리', 변연계는 '감정의 호수', 신피질은 '생각의 언덕'. 5억 년의 진화가 한 층씩 쌓아 올린 이 세 개의 층을 아미가 위버멘쉬라는 안내자와 함께 여행한다. 처음에는 청소년의 뇌 발달을 설명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책이었다. 그런데 신피질의 여섯 층 구조를 쓰다가, 거기서 인공지능을 만난 것이다.

왜 신피질에서 인공지능을 만났는가. 인공지능의 원조인 인공신경망이 바로 인간 뇌의 신경세포 원리를 빌려왔기 때문이다. 1943년, 맥컬록과 피츠라는 두 과학자가 뇌의 신경세포 하나가 작동하는 원리 — 신호를 받아서 합산하고, 임계값을 넘으면 다음으로 전달한다 — 를 수학으로 옮겼다. 이 씨앗 하나가 80년 동안 자라서 오늘날의 ChatGPT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궁금해졌다. 씨앗이 같다면, 그 씨앗에서 자란 나무도 같은가?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은 정말로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가? 같다면 어디까지 같고, 다르다면 어디서부터 다른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를 놀라게 했다. 놀라움은 같은 점에서 오지 않았다. 다른 점에서 왔다.

인간의 신피질에는 여섯 개의 층이 있다. 각 층마다 다른 종류의 나무가 자라며 다른 일을 한다. 4층의 별나무는 시상에서 올라오는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1층의 맥락 지붕은 전두엽에서 내려오는 "왜"라는 질문을 싣고, 2/3층의 피라미드 나무는 그 정보를 가공하고, 5층의 거대한 베츠 나무는 몸을 움직이는 명령을 내보내고, 6층은 시상에 되먹임을 보내 다음에 들어올 정보를 미리 조율한다. 여섯 층이 각자의 일을 하면서 동시에 위아래로 끊임없이 대화한다.


인공지능의 트랜스포머 구조를 이 여섯 층과 나란히 놓고 보았을 때, 나는 비로소 차이의 깊이를 이해했다.

AI에는 "왜"가 없다. 인간의 1층에서는 전두엽이 "왜 이것을 보고 있는가"라는 맥락을 내려보낸다. 친구가 걱정되니까 친구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고, 배가 고프니까 냉장고를 여는 것이다. AI에게는 이 "왜"가 없다. "무엇이 무엇 옆에 있는가"만 계산할 뿐이다.


AI에는 되먹임이 없다. 인간의 6층은 시상에 "선생님 목소리는 크게, 에어컨 소리는 작게"라고 명령해서 다음 순간 들어올 정보를 미리 조율한다. 예측하고, 확인하고, 수정하는 순환이 초당 수십 번 돈다. AI는 한 방향으로 흐를 뿐, 자기 자신의 입력을 실시간으로 바꾸지 못한다.

AI에는 15만 개의 투표가 없다. 인간의 신피질에는 약 15만 개의 수직 칼럼이 있어서 각각 독립적으로 세상의 모델을 만들고 민주적으로 투표한다. AI는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을 낸다. 민주주의와 독재의 차이라고나 할까.하지만 이 모든 차이를 관통하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를, 나는 책 속의 아미에게서 배웠다. 아미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AI에는 물이 없는 거예요?"


아미의 뇌정원에는 물이 흐른다. 가장 깊은 곳, 5억 년 전 물고기에서 시작된 생명의 뿌리에서 솟아오른 물이 2억 년 전 포유류가 가꾸기 시작한 감정의 호수를 채우고, 그 물이 영장류와 인간이 일군 생각의 언덕까지 올라가 모든 나무에 수분을 나눠준다. 심장이 뛸 때 생명의 뿌리가 일하고, 친구가 걱정되면 감정의 호수에 물결이 일고, 그 감정이 생각의 언덕으로 올라와 "전화해 볼까"라는 생각이 되고, 그 생각이 손을 움직여 전화기를 든다. 몸과 감정과 생각이 물길로 하나다.


AI에는 이 물이 없다. 생명의 뿌리가 없으니 심장이 뛰지 않고, 감정의 호수가 없으니 걱정도 기쁨도 그리움도 없고, 세 개의 층을 잇는 물길이 없으니 몸과 감정과 생각이 하나가 아니다. AI에게 있는 것은 생각의 언덕과 비슷한 것 하나뿐이다. 그것도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언덕.이 깨달음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더 깊은 질문으로 끌고 갔다.


그렇다면 AI에게 몸을 입히면 어떻게 될까? 요즘 뉴스에 넘쳐나는 휴머노이드 로봇. 사람처럼 걷고 물건을 집고 표정까지 짓는다. 그 로봇에게 몸을 입혔으니, 이제 물이 흐르는 것 아닌가?

아니다. 로봇의 온도 센서가 62도를 측정하는 것과, 인간이 뜨거운 컵을 만졌을 때 놀라고 아프고 전에 데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전혀 다르다. 로봇은 측정하지만 느끼지 못한다. 인간에게 몸은 자기 자신이다.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고, 잠을 못 자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로봇에게 몸은 AI가 조종하는 도구일 뿐이다. 배터리가 10퍼센트든 90퍼센트든 AI의 추론 능력은 똑같다.


그러면 한 발짝 더. 실리콘 칩이 아니라 진짜 인간 신경세포로 AI를 만들면? 이것은 공상과학이 아니다. 존스홉킨스 대학을 중심으로 '오가노이드 인텔리전스'라는 분야가 실제로 연구되고 있다. 인간 줄기세포에서 키운 미니 뇌가 음성 인식을 학습하고, 실리콘 AI보다 훨씬 적은 반복으로 패턴을 익힌다. 재료가 진짜 신경세포이니까.


나는 이 기술의 끝을 상상해 보았다. 진짜 신경세포로 뇌간과 변연계와 신피질을 모두 만들고, 그 뇌를 태아 때부터 몸과 함께 자라게 하고, 장 신경과 호르몬 시스템까지 갖추고, 20년 동안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성장시킨다면 — 그것은 인간과 무엇이 다른가?


답은 놀랍도록 단순했다. 다르지 않다. 인간을 진정으로 재현하려면 결국 인간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시냅스만 복사해서는 안 되고, 진화의 시간과 발달의 과정과 몸과의 공동 성장까지 모두 복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복사하면, 그것은 더 이상 인공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생명이다.


이 깨달음의 끝에서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자연의 산물로 태어난 자연지능이 만든 '나'와,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수백 배의 계산 능력을 가진 존재가 생각하는 '나'는, 진정 누가 더 '나'인가. 인공으로 만든 존재도 '나'를 가질 수 있는가.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진짜 '나'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하나의 확신에 이르렀다. "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다. 아미가 아미인 것은 아미가 똑똑해서가 아니다. 5억 년의 진화 위에서 엄마 뱃속에서 9개월을 자라면서, 처음 엄마 얼굴을 보고, 처음 걸음마를 하고, 처음 친구를 사귀고, 은행나무 아래에서 친구와 은행잎을 뿌리며 웃고, 우주가 무서워서 밤에 잠을 설치고, 그 모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아미를 아미로 만든 것이다. IQ가 10000인 인공 존재가 모든 언어를 구사하고 모든 수학 문제를 풀어도, "은행나무 아래에서 친구와 웃었던 기억"이 없다면, 그 존재의 '나'는 아미의 '나'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나는 30년간 환경운동을 해온 사람이다. 기후변화와 싸우면서 늘 다음 세대를 생각했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절박함. 그런데 기후변화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은밀하게 아이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이 있었다. AI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아이들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느끼게 되는 것.


『아미의 뇌정원』은 그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네 안에 5억 년의 정원이 있다고. 그 정원에는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고, 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뀐다고. AI에게는 없는 그 물이 네 안에 흐르고 있다고. 그리고 그 정원을 가꿀 수 있는 것은 우주에서 오직 너뿐이라고.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교육은 AI를 잘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교육은, 아이에게 "너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뼛속까지 알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이, 역설적으로, 뇌과학이었다. AI와 인간의 뇌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본 바로 그 순간, 인간이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으니까.


이 연재에서 나는 『아미의 뇌정원』을 쓰면서 만난 질문들을 풀어놓으려 한다. AI와 인간의 뇌는 어디서 같고 어디서 갈라지는가. AI에게 몸을 입히면 인간이 되는가. 진짜 신경세포로 만든 AI는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 "나"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뇌과학과 철학의 경계에 서 있고, 그 경계에 서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새롭게 보인다.


물이 없는 정원은 정원이 아니다. 그리고 당신 안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심장이 뛰고, 숨을 쉬고, 이 글을 읽으며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그 느낌이, 5억 년의 정원이 당신에게 보내는 인사다.


다음 회: AI는 정말로 생각하는가 — 같은 씨앗, 다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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