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가을 아침의 어느날

잃어버린 내 삶의 3분의 1

by Eunyoung Kim

내가 나에게


아침에 언뜻 일어나는 생각 그것을 잡으려 한다. 늘 아침이면 패턴처럼 나의 생각과 몸과 마음이 일정하게 움직인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그걸 한번 잡아보려 한다. Free Writing 의 freedom을 만끽하기 위하여…. 조금은 맛을 느낀다. 그 freedom 속에 보배가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는.


눈을 뜨니 6시 반이다. 아침 독서 시간에 딱 알맞는 시간이다. Indian Summer, 나이 든 여자들이 새로운 여름을 맞이 한다는 상징으로 미란씨를 중심으로 한 시니어 마카데미에서 그림그리는 사람들이 독서클럽을 시작하겠다고 하고 나를 리더로 뽑아 놓았는데 그동안 잘 해 왔는데 내가 EG Academy에서 ESL을 정기적으로 가르치면서 시간이 나지 않아 그들만으로 돌아가는 북클럽이다. EGA 전에는 꼬박꼬박 일어나서 그 시간을 위해 스카이프를 열어야했다. 한국의 현대소설을 읽는 구룹인데 그동안 돌아보지 않던 현대소설이 나의 옛 뿌리에 물을 주는 것 같아 좋다. 재미있다. 그러나 좀 신선하고 새로운 것은 없다. 오래된 정서를 다시 한번 인식해 보는 것이다. 그것도 가치있는 일이다.


아뭏든 일어났다. 몸이 나른하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나른함이다. 이 나른함이 많이 그리웠다. 이건 중노동에 시달려 몸이 지칠대로 지쳐서 잘 때 정신없이 어느정도 자고 일어나 보면 느껴지는 편안함이다. 어제 저녁 많은 유혹을 참고 침대로 일단 왔다. 위층에 마이클 방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마이클과 하루 이야기를 하는 것과 칩 한봉지를 까 먹는 그런 relaxing한 시간을 자르고 일어나 침대로 왔다. 침대에서 마저 읽기 위하여 감성의 과학을 가지고 왔지만 정작 불을 끄고 셀폰의 어떤 건강 유튜브를 켜놓고 조금 보자마자 곧 잠든 모양이다. 얼마후 어떤 소리가 들리길래 보니 그것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셀폰을 충전기와 연결하는 것도 잊고 그대로 방치하고 잔 것 같다.


아뭏든 좋다. 큰 MRI 챔버같은 튜브에 내가 들어가서 그 튜브속의 기계가 나를 마음대로 고치고 조이고 lubricate 하고 해서 나를 새로 다시 삶을 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오랫만의 기분이다. 몸의 모든 조인트가 기름친 것 처럼 부드럽게 돌아간다. 그러나 아직 나른하다. 조금 더 그 기분을 침대에서 누리고 싶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일어났다. 갔다 온 후에도 나른하다. 6시 35분 오늘은 어제 오늘 아침에는 내가 없다고 말했기에 안 들어가고 그 시간에 내 나른한 몸을 침대에서 더 느끼고 싶다. 침대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나 화장실에 가기 전 같지 않다. 몸은 벌써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니고 오래된 몸의 mechanism이다.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autometic으로 움직인다. 아마 내가 11시에 그렇게 잠자리로 들어가려고 수년간 노력을 해도 하지 못 했던 것은 내 몸의 autometic system 때문일 지도 모른다. **** 나와 내가 싸우다가 7시 15분에 일어났다. 나왔다. 나와서 내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밖에 나가 내 정원을 보고 싶고 숲으로 가 걷고 싶다. 이것도 내 automatic system 의 일부인 것 같다. 혈당을 재니 105이다. 조금 낮지만 이정도이면 한 30분 걸어도 저혈당은 되지 않으리라. 그리고 잘 때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움직이면 혈당이 아무것도 안 먹어도 올라가는 것을 libra consecutive blood reading device로 알게 되었다. 셀폰도 안 갖고 옷을 좀 두껍게 입고, 목도리 하나 두루고 집을 나왔다.


뜰에는 낙옆이 떨어져 그동안 안 깍아서 길게 자란 잔디 사이로 낙옆이 온통 덮혔다. 이웃집 잔디를 보았다. 그들은 잘 깍아서 낙옆이 없다. 잔디깍는 회사 서비스를 중단하고 이젠 마이클이 깍아야 하는데 요새 시간을 벌기 위하여 계속 8시간씩 일한다. 지난 번에 하지 않은 무릎수술을 하는 동안 pay를 받기 위해선 일주일에 32시간(?)씩 몇주간 지속해서 일을 해야한다는 규정 때문에 힘들지만 요새는 계속 8시간씩 한다. 불쌍하다. 그 좋은 머리를 쓰지 못하고 잘 못하는 근육을 쓴다. 그것도 하루에 8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는 것이다. 다행히 지난 번 한 수술 덕분에 다리 붓는 것은 많이 나아졌다. 전 같으면 4시간 이상은 다리가 부어서 못 하고 집에 오기도 자주 했다. 수술 후에는 다리의 붓기가 차츰 없어져서 지금 2주째 8시간씩 하는데도 다리는 약간 붓지만 아주 심하게 붓지 않는다.


내 잠 얘기로 다시 돌아간다. 그 좋은 잠, 하루에 8시간을 눕혀놓고 잠이라는 마취제로 나를 다른데로 보내고 잠은 내 몸의 모든 것을 점검하고 필요한 일을 한다. 척추액으로 낮에 활동하느라 버려진 노폐물질을 씻어서 보내고 필요한 neurotransmitter나 임파액, 홀몬 등의 화학적인 balance를 넣고 빼고 하여 맞추어 놓고 해마에 들어온 기억을 감정선과 혼합하여 대외피질(outer layer of cortex)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정리해 놓는다. 최근에 잠이 모자라 오후에 낮잠을 자려고 했다. 사실상 낮잠을 한 두시간씩 잔 것 같다. 그러나 밤에 자는 것과는 질이 다르다. 며칠 전에는 마이클 방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낮잠을 잤는데 꿈을 꾸었다. 생생한 꿈을, 그때는 생각났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이 좋은 잠을 나는 왜 안잤을까? 그건 잠이 내 인생에서 의미있게 사는 시간을 줄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그런 많은 신호가 있었고 또 그런 생활습관이 몸에 어렸을 때 붙터 배어서 내 몸의 자동화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때쯤 커피를 한잔 마셔야 한다. 잠의 질 때문에 커피를 안 마시고자 하지만 커피가 주는 그 정신적인 안정감과 기쁨은 내 하루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 마저 포기하라면 나는 왜 사는가? 하고 물어보게 되도록 아마 ‘중독’이 된 모양이다. 어제 읽은 ‘감성의 뇌과학’에서그렇게 말한다. 우리 뇌에는 보상해 주는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이 자극되면 기쁨을 느끼고 그 기쁨을 느끼고 싶어서 그 기쁨을 주는 행동을 계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쥐 실험으로 과학자들은 그것을 찾아냈다. 어떤 행동을 하면 세밀하게 연결해 놓은 쥐의 뇌의 그 부분을 그때마다 pulse를 보냈더니 그 쥐는 그것을 느끼려고 그것만 계속했다고 한다. 심지어 음식도 안 먹고 계속 말라가면서도 그 것만을 하기 위해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책에서 “기억의 뇌과학’에서는 적당한 커피는 기억을 강화한다고 한다. 아침에 먹는 것은 괜찮다고도 한다. 그래서 나는 ‘기억의 뇌과학’ 저자의 말을 듣기로 한다.


기대한 것만큼 환상적이지 않다. 이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 정말 환상이었다. 남양유업에서 나온 French Cafe 라는 커피믹스이다. 당을 걱정하는 나는 이것이 무설탕으로 단 맛을 Stevia로 내는 것이기에 좋아한다. 부드러워서 맛이 좋다. 그러나 나는 진한 커피를 좋아해서 한잔에 커피믹스 두 봉을 넣고 거기에 스티비아와 스프렌다 하나씩 더 하여야 내 입맛에 딱 맞는 커피가 된다. 이 맛으로 이 카페인으로 나는 나의 하루를 예정한 대로 enthuthiastic 하게 보내게 된다. 이것은 화학적 자극이다. 내 속에서 원래의 내 몸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도덕경, 맹자, 이율곡등의 도덕적 행동지침을 외우고 몸에 넣고 살고자 하지만 내 몸의 의지는 따로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지의 말을 들으라 외치는 망치의 철학자 니체 당시 기독교의 이중성에 몸서리쳤던 그의 실존의 외침이 우리가 사는 오늘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더 고대로 가서는 장자, 자연의 법칙의 삶의 도리로 물 흐르듯이 살라는 말이 들린다. 오늘의 뇌과학이 그것을 가리킨다. 심리학의 아버지 푸로이드가 오디프스 컴프렉스라는 말로 포장하여 인간의 무의식을 인식하게 한 것은 맞지만 모든 무의식이 성적 에너지라는 말은 너무 무리이다. 그가 체험적 정신분석과 꿈의 해석은 좀 지나친 현실과 동 떨어진 해석이지만 그의 정신분석학은 뇌과학의 발견과 발전으로 엄청난 이해의 영역을 넓혀왔다. 뇌과학은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로 알 수 없는 희미하고 신비한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물리적인 뇌현상으로 보여주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어쩌면 다윈의 종의 기원처럼 혁신적이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의 발전이 전 인류 역사를 통하여 서서히 발전하고 틈틈히 그 사실이 알려지었고 최근 지난 20년동안 폭발적인 발전으로 현재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회기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잠 얘기로 다시 돌아간다. 내 몸속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자동화 습관이 자리 잡게 된 것은 아주 아주 오랜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 하다. 오늘 아침 그 생각이 퍼뜩 났다. 아버지는 늘 늦게 병원문을 닫고 내실로 들어오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립다. 아득하다. 오늘 내가 사는 모습과 비교하면 그 당시의 모습을 나의 손주들이나 손주들의 손주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치 내가 인류의 조상이 동굴속에 살면서 무서운 짐승들을 피해가면서 채집과 수렵으로 살았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렵듯이. 그렇게 빠른 변화가 나의 생애동안에 일어났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병원, 그 병원의 의사인 아버지는 병원 진료시간이 일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문 열고 닫는 시간만이 정해져 있다. 문이 닫혀 있어도 어느 환자가 그 닫힌 덧문을 두둘기면 아버지는 언제나 그 덧문을 열고 환자를 받아야 하는 동네 의사이셨다. 문 닫는 시간이 아마 10쯤이 아니었나 싶다. 간호원들과 조수들이 우리 집에 그냥 숙박을 하는 터이라 모두들 내실로 들어온다. 그러면 간호원 언니들은 무언가 궁금하다. 열심히 일 했기에 배가 고픈 것이다. 그래서 자기 전에 우리는 언제나 밤참이 있었다. 겨울의 밤참은 특히나 즐겁고 정겨운 시간이었다. 엄마는 광에서 살얼음이 뜬 동침이를 꺼내서 썰어 오시고 김장 김치를 썰지 않고 포기채 찢어서 큰 접시에 담아 들고 들어오신다. 이때 우리가 먹는 음식은 찐빵이었다. 막내 동생이 얼른 동네 시장 골목에서 하는 ‘서울 빵집’에서 따끈따끈한 빵을 사오면 김이 무럭무럭 나는 그 빵을 하나씩 들고 야들야들한 빵을 한점 뜯으면 그 안에 또 김이 모락모락나는 단 팟 앙꼬(일본말인것 같은데 그때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 부드러운 빵의 겉 표면은 얇은 막이 둘러져 있다. 한 입 떼어 물면 겉의 얇은 막과 그 안의 야들야들한 부드러운 하얀 빵의 부피, 그리고 그 밑의 따끈한 단팟 앙꼬가 입으로 들어간다. 그것을 입 안에 넣고 김장김치 한 줄기를 줄 찢어 고개를 들고 김장김치 긴 줄기를 입에 넣으며 찐빵과 같이 씹는다. 그 찐빵의 중독적인 부드러움과 단팟의 진한 단맛 거기에 김장김치가 주는 짭짤함이 한데 섞이어 환상적인 원시의 맛을 조합해 낸다. 그것은 우리의 먼 조상들이 수렵채집생활을 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소금과 열량을 주는 탄수화물의 단맛의 조합인 맛의 본향으로 데리고 간다. 지금도 그 맛과 병원 식구들과 우리 6남매와 엄마 아버지 이모 일하는 언니들의 큰 가족의 공동의 체험은 우리 형제들이 이 미국에서도 모이면 얘기하는, 우리의 기억저장 화일 저 밑에 들어있지만 때가 되면 다시 인출해 내는 기억의 한 조각이다.


그 황홀한 맛의 밤참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이불장에서 요와 이불을 꺼내어 안방에 죽 펴고 모두 자리를 정하여 잔다. 그것이 아마 적어도 12시는 넘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온 가족과 같이 늦게 잠을 잤다. 아버지가 아직 병원에서 돌아오시기 전이라 우리는 그 전에 이부자리를 펴지 못 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사춘기 시절 나는 밤을 즐겼다. 나의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하루에 해야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잘 때 마음이 끼끔하여 잠을 잘 수 있는 편한 마음이 안 되었기에 하루를 잘 마무리하기 위하여 나는 늘 늦게 잤다. 특히 밤에 무언가를 쓰고 읽고 하는 것은 내게 나만의 큰 즐거움이다. 조용한 시간에 나는 더 창의적이 되었고 그 시간을 나는 즐겼다. 그래서 시험 공부도 벼락치기로 밤에 자고 새벽 3시쯤 일어나 몇시간 공부하고 조금 눈 붙히고 학교에 가 시험을 보는 것이 나의 보통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 우리의 사회가 문화가 내 생각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우리 할아버지는 자수 성가하신 동네의 어른 교장선생님이시다. 과묵하기로는 이세상의 누구보다도 일등이실 할아버지는 나를 특히 귀여워해 주셨다. 그건 그분에게선 아주 특별한 일이다. 이유는 있다. 내가 어렸을 때 한 5살 내지 6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엄마 아버지는 동생이 연이어 나서 당시 우유가 없었음으로 동생과 얼마 안 나오는 엄마 젖을 가지고 경쟁을 해야 했기에 내가 조금 먼저 났기에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시기로 작정을 하신 것 같다. 그 때 할아버지는 한 작은 바닷가 마을 맹방이라는 곳에서 교장선생님을 하시고 나는 혼자 집에 있게 됨으로 유치원삼아 일학년에 입학을 시켜 놓으셨다. 그래서 거기서 일학년을 보내면서 나는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샀던게다. 과묵한 할아버지로서는 다른 식구가 없이 할머니와 나만 있는 곳에서 자신의 사랑과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셨을 것이다. 나는 어느 구체적인 사건은 생각나지 않지만 누구보다도 할어버지를 좋아했고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 할아버지가 어느날 내게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일은 벼락이 나거나 천둥이 치거나 홍수가 나는 아주 천재지변같이 드문 기회였기에 그 분의 말씀을 그냥 지나쳐 들을 수는 없다. 특히 나는 할아버지가 전처럼 나와 친해지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언제난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어느날 불쑥 말씀하셨다. “ 남 들처럼 다 자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겨 성공할 수가 있겠는가?” 하시는 질문이었다. 질문이었지만 그 말은 ‘무언가 이루려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하는데 그건 잠을 덜 자고 하는 일일 수 밖에 없어” 하시는 명령으로 해석 되었다.


지금도 그 말씀은 귀에 쟁쟁하다. 당신 자신이 엄청난 노력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내신 분이기에 그렇다. 삼일운동을 위하여 괴나리 봇짐에 짚신을 한다발 매서 걸고 대관령을 도보로 넘어 서울에 가서 비밀 운동원에게 태극기를 잔뜩 그 괴나리 봇짐에 넣어 돌아오셔서 강원도 삼척 지방의 삼일운동 태극기 만세 사건을 주도하셨다. 그리고 평교사에서 교장이 되셔서 내가 아는 한 교장으로 내가 다닌 송정국민학교(당시의 이름)와 맹방국민학교에서 근무하시고 그분의 과묵하시지만 늘 실천하시고 모범을 보이심으로 교사들과 동네주민들에게 존경을 받으셨기에 그분의 노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삶으로 보여주신 당신의 삶의 지혜를 가장 아끼는 손녀에게 전해 주셨는데 어떻게 내가 그분의 말씀을 흘려 들을 수 있겠는가. 그 말은 알게 모르게 내 잠재의식 속에서 내 삶을 이끌어 가는 operating system 속의 일부가 되었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그리고 나의 기억으로 두가지 사건, 두가지 내게 주는 경각심의 사건이 있다. 하나는 어느날 어떤 소설을 읽다가 든 생각이다. 그 소설 이름도 잊고 내용도 잊었지만 그 경험, 그 소설을 읽다가 소설의 화자가 자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 죽으면 썩어질 몸, 싫컷 쓰면서 살지!” 하는 푸념의 소리였다. 그 말 ‘죽으면 썩어질 몸..” 에 대한 생각. 그 어머니 말에 나도 100% 동의함을 나는 느꼈고 그 말은 그 후 나의 잠재의식 속에서 피곤할 때나 내가 힘들 때 내게 하는 소리였다. ‘죽으면 썩어질 몸인데’ 하면서 피곤한 나를 달랬다.


그 다음 사건은 더 지독한 것으로 결혼 후의 일이다. 결혼 후 아직 남편의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 있지 않던 나였다. 그는 매일 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전기전자공학과의 교수로 학생들편의 필요에 부응하여 가능한한 빨리 석사나 박사과정의 대학원생을 졸업시켜 주는 것으로 소문이 났는지 누구보다도 엄청난 숫자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있었다. 남편은 그들을 위하여 실험실에 소파와 냉장고를 준비해 놓고 언제나 마실것을 준비해 두었다. 그것은 학생들을 실험실에 잡아 놓는 것도 되어서 그들이 지칠때 소파에서 간단한 낮잠과 그리고 음료를 마시며 쉴 수 있었다. 그건 그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논문의 마감시간이 가깝거다 다른 마감일이 있으면 학생들과 같이 밤을 새며 연구를 했다. 그걸 아는 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집에 안 들어오고 연구실에서 지새는 날이 3일이상 계속되면 걱정이 된다. 그래서 집으로 불러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전화를 한다. “당신에게 집이라는 것이 있는지 알기는 압니까” 하며 반 불평조로 딴지를 걸면 그는 마지못해 집에 들어와 깊은 잠을 한없이 자곤 했다. 그런 일이 처음엔 이러다 말겠지 했지만. 아니다. 지속이 된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여전히 건강하고 여전히 그런 것 아무것도 아닌듯이 바쁜 일정과 책임지어야 할 여러일을 문제없이 처리한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의문을 가졌다. ‘어쩌면 신은 우리의 몸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디자인할 수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주셨는지도 몰라’. 그래서 나도 나의 그 가설을 테스트 해 보기로 했다. 당시 나는 석사학위를 위해 “ 두번째 언어를 배우는 성인의 뇌과학적인 학습” 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준비하며 당시 그렇게 많은 정보가 나오지 않은 의학계에서 나온 뇌과학 잡지와 논문을 뒤지며 언어의 뇌과학 학습에 대한 자료를 찾고 그것에 대하여 쓰고 있었다. 그건 내게 엄청난 테스크였지만 뇌과학이라는 매력에 빠져 힘든 줄 모르고 하고 있었다. 내가 뇌과학에 빠져든 매력은 내가 아는 한 모든 문학, 철학, 종교 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갈라져 영혼, 마음, 정신이라는 세계를 보이지 않는 검증할 수 없는 측정할 수 없는 세계로 알고 있었는데 뇌과학은 그것을 우리의 눈 앞에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 정신의 지각변동이었다. 나는 그 지각변동을 신나게 환상적인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 분야의 정보와 지식에 갈급했지만 그렇게 많은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특히 언어학습에 관한 것은. 그리고 나는 또한 현실적인 나로서 돈을 벌 필요가 있었다. 마침 내가 해 온 통역일은 늘 가능한 일이어서 당시 새로운 직업의 하나인 전화로 통역을 해 주는 일이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언어적인 어려움에 처하면 그 사람은 나의 에이전트를 통하여 내게 연락하여 통역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세계 여러곳에 연결되어 있는 회사라 서비스가 24시간 제공된다. 다만 나는 내 시간대를 정하여 알려주면 된다.


나는 나의 신체적 가능성의 한계를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서비스 기간을 아침 4시부터 4시간으로 정하고 그러면 8시부터는 나의 일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 후 나는 그 시간에 적응하지 못했다. 낮에 학교에 가서 강의 듣고 저녁에 논문을 좀 쓰고 늦게 자면 영락없이 새벽 4시쯤엔 전화 벨이 울리고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통역 서비스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의 나의 서비스의 질이 적당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별탈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면서 저녁에 논문을 쓰려고 컴퓨터에 앉으면 나는 졸음이 와서 견딜수가없었고 졸음을 쫒느라 내 책상 설합에는 스닉터스 나 사탕이 가득했다. 피곤한 나의 뇌는 설탕이 필요했다. 엑스트라 엑스트라 일을 하기 위해선 엑스트라 엑스트라 에너지가 필요했었으니까. 그렇게 석사 논문을 마치고 석사과정이 완성되었다. 어느날 남편이 안식년이 돌아오는데 한국 서울대학에서 그곳에서 가르치라는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좋아서 그렇게 하자고 해서 가게 되었다. 한국을 떠난지 20년도 넘은 터라 겁도 났지만 좋기도 했다. 가기전에 내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했다. 검사후 의사는 내게 직접 전화해서 최근에 아주 단 것을 많이 먹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 그는 내가 당뇨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두가지의 최악의 상태를 나는 그동안 내 몸에 제공했다. 수면시간의 단축과 엄청난 당분의 제공. 그러나 그때엔 화가 났다. “ 왜 하필 내가?” “이런 악명 높은 불치병에 걸리다니?”. 그래서 그 사실을 무시했다. 약도 안 먹고 당뇨가 없는 척 살았다. 그런데 그 병은 무시한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 생활을 한 일년반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올 당시엔 나는 내 몸이 그것을 알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더 이상 무시하고 살 수 없어서 살기로 결심했다. 미국에 오자마자 의사에게로 가서 “ 당뇨를 치료할 방법은 없는지요” “미안하지만 없습니다. 평생 지니고 달래며 살아가야하는 병입니다.” “아니요, 그렇게는 할 수 없어요. 내 몸에 병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주 불쾌합니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사는 것도 삶은 엄청난 도전입니다. 병을 지니고 평생 살아야 한다니요. 나는 내 몸을 병없는 몸으로 만들고 싶어요. 제가 당신이 하라는 것 무엇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 방법을 알려주세요.” “ 미안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병을 없애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의사 앞에서 펑펑 눈물을 막 쏟아내고 있었다.



당뇨가 라이프스타일 병이라는 것, 그리고 특히 수면부족이 큰 원인이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매튜의 저서 “왜 우리는 잠을 자야하는가?”를 읽고 난 후였다. 그것을 읽고 난 후 나는 확실하게 내 몸의 잠의 혜택과 거기에 연관된 질병의 관계를 알았지만 그 지식을 나의 생활습관에 도입하여 실천하는 데는 또 수년이 걸렸다. 지금도 그 과정의 일부이다. 이렇든 우리의 습관, 다르게 말하면 자동화된 뇌신경망의 고집이 참으로 세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나른 한 나의 몸을 즐기면서, “아! 오늘은 그래도 해 냈구나!” 하는 성취감을 느끼며 내 몸이 좋아하는 것을 왜 그리 안 했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 기분이 지난 수개월 내가 잠을 중요시 여기는 의식속에서 커피를 줄이는 일, 디카페인 커피로 바꾸는 일, 11시 조금 지나면 침대에 눕기를 매일 내 의식속에서 외치며 살아왔지만 정작 실천한것은 한 서너번 느껴본 나른함이다. 이 좋은 기분, 내 몸이 좋아하는 상태를 느껴보고 그 느낌을 중독을 관장하는 쾌락시스템을 자극하는 것처럼 내 몸의 자동화 시스템 안으로 밀어넣고 그 시스템의 가동을 자주 매일 돌려보도록 하는 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이 프리 라이팅 시간에 자유라는 이름으로 내 생각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옮기며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그러고 보니 내 과거의 경험과 내 삶의 구비구비에서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정보의 입력이 보여진다.


내 생애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는데 그건 전혀 ‘죽으면 썩어질 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동안 할일을 다 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주는 시간들이었다. 그것들을 이용하지 못하고 잠이 주는 혜택을 거의 모두 거부해 온 내 몸에게 먼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잠이 주는 혜택을 고스란히 받으며 건강한 몸이 건강한 정신과 함께 이루었을 많은 삶의 기쁨과 즐거움 그것들을 잃고 잠을 설쳐서 아무 것도 못하고 희미한 정신으로 유령처럼 이리저리 목적없이 허우적 거리던 많은 날들을 생각하면 배가 아프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감사해야 할 것은, 이 생명, 보고, 느끼고, 냄새맡고 , 들을 수 있는 몸으로 외부의 환경을 인식하고 생각으로 내 몸의 환경을 인식하며 내일의 내 삶을 바른 방향으로 수정해 가는 인간인 나의 생각하는 능력이다. 이 지구상의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건 내게서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디폴트이다. 그러나 다른 점은 이 찰라같은 축복의 시간을 축복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고통으로 생각하느냐는 것일 것이다. 내게는 일초 일초가 귀하다. 아침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빨리 일어나자. 해야 할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아. 하나하나가 다 재미있어. 이 재미를 누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어. 빨리 빨리 하자.”

작가의 이전글아바타 전에,호기심 많은 한 소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