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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17. 2022

신사임당 - 산수화를 그린 화가

미술사 - 한국[조선]


시냇물 굽이굽이 산은 첩첩 둘려 있고,

바위 곁에 늙은 나무 감돌아 길이 났네.

숲에는 아지랑이 자욱이 끼었는데,

돛대는 구름 밖에 뵐락 말락 하는구나.

해 질 녘에 도인 한 사람 나무다리 지나가고,

막 속에선 늙은 중이 한가로이 바둑 두네.

꽃다운 그 마음은 신과 함께 열렸나니,

묘한 생각 맑은 자취 따라잡기 어려워라.


- 신사임당의 산수화를 보고 소세양(蘇世讓)이 남긴 제화시







신사임당(堂, 1504-1551)에 대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초충도와 포도도를 잘 그린 여성 화가

율곡 이이( 珥, 1536-1584)의 어머니

모범적인 여성상

....

즉,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꽃과 식물을 잘 그리고 자녀 교육에 훌륭하였던 여성 화가인 것이다.



전 신사임당, <초충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 신사임당, <초충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 신사임당, <초충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러나 신사임당이 살아있던 당시에는

신사임당은 초충도와 포도도 외에도 산수화, 묵죽도 잘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였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신사임당을 그저 '모범적인 어머니' 혹은 '초충도를 잘 그린 여성 화가'로만 인식하고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예술문화의 범주를 넘어 정치사회의 영역까지 시야를 넓혀야 한다.

그녀에 대한 평가와 인식이 확연히 전환된 것은 17세기였다. 이 시기는 선조~숙종대로 정치적인 논란과 사건이 많았던 때였다. 특히 숙종 때는 당파 간의 치열한 다툼이 있어 여러 혼란이 있었다. 숙종은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3번의 환국을 벌였고 그로 인해 당파 간 경쟁이 심화되었고 다수의 인물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16세기에 성리학을 집대성한 율곡 이이를 학문적 비조(鼻祖)로 여겼던 서인의 당수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서인의 세력을 공고히 하고 유교 국가로서의 면모를 정립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율곡 이이의 어머니가 당시 사대부 양반 (남성)들이 그린 산수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축소하고, 집안에서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여성으로 굳힌 것이다. 



전 신사임당,  《이곡산수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 신사임당, 《이곡산수병》 3-4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 신사임당, 《이곡산수병》 5-6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전하는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산수화는 이곡산수병 1점뿐이다. 


그녀의 산수화를 본 조선 중기 학자 어숙권(權, ?-?)은 안견(安堅, ?-?)에 버금간다 하였고, 그녀의 묵죽도를 본 이항복(福, 1556-1618)을 보며 기운생동이 느껴진다 하였다. 이 정도로 신사임당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산수화와 사군자도에 대한 평이 많았음을 알 수 있고, 산수화를 즐겨 그렸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남아있는 산수화가 1점뿐인 것이 아쉬우나

이곡산수병》을 사임당의 화풍과 전문가적 솜씨를 엿볼 수 있다. 

1-2면에서는 밝게 빛나는 보름달 아래로 드넓고 고요한 강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배 한 척이 유유히 물길을 가르며 매화꽃이 활짝 핀 곳을 등지고 나아가고 있다. 이른 봄날 밤의 정취를 느끼러 나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3-4면의 배 위에 있는 어망은 텅 비어있다. 배에 탄 선비의 목적이 낚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달이 산봉우리 옆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고 붉은 꽃이 여기저기 펴있어 이 화면 역시 따뜻한 봄날일 것이다. 


고요한 화면 속에서 신사임당의 성정과 추구했던 산수 풍정이 엿보인다.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던 송시열조차 그녀의 산수화에 감탄했다고 하니 다른 작품들은 어떠하였을지 궁금해진다.


후대에 신사임당에 대해 인식이 변화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제는 그녀의 예술세계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술사학자 박지현과 같은 연구자의 연구 이후로 신사임당의 산수화와 묵죽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것이 꾸준히 이어져 인식이 재고되길 바란다.










참고 논문

박지현,「화가에서 어머니로: 신사임당을 둘러싼 담론의 역사」,『동양한문학연구』25, 동양한문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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