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Aug 15. 2021

18세기 조선 사회의 모습을 엿보다

미술사 - 한국[조선]

겸재[정선] 선생은 우리의 명승강산을 사생하얏고 단원 김홍도 선생은 우리 실생활의 풍속을 묘출하얏다.

- 급우생, 서화계로 관한 경성(개벽 제 48호, 1924) 중 일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 혹은 혜원 신윤복(申潤福, 1758 ~?)의 회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 곳곳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다. 특히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18세기 후반)의 수록 회화와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은 찜질방 벽화의 단골 소재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많이 노출되는 이와 같은 풍속화에 대해 본 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18세기는 후기로 갈수록 조선시대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시기이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중국과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해지며 농업 중심의 경제에서 상품 경제로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또한 정치사회적으로는 영조(英祖, 1694 ~ 1776)와 정조(正祖, 1752 ~ 1800)가 집권하며 태평성대를 이뤘다. 특히 정조는 자비대령화원 제도를 만들며 시험에서 풍속화를 그려올 것을 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정치적 배경을 두고 풍속화는 나날이 발전하였는데 그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두 명이 김홍도와 신윤복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풍속화의 시작은 김홍도와 신윤복은 아니지만 가장 절정의 시기에 그들이 등장하여 가감 없이 생활사를 그려내었기에 미술사적 가치가 풍부하다고 볼 수 있고, 실제로 방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좌) 김홍도, <시주> (우) 신윤복, <송하망폭도(松下望暴圖)>


위의 작품들은 각각 김홍도, 신윤복의 작품이다. 김홍도의 필치는 선이 굵고 비교적 채색이 덜하지만, 신윤복의 경우에는 얇은 선을 이용하였으며 채색화를 그렸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생긴다. 신윤복의 이러한 필치와 여성 위주의 인물풍속화 때문에 그가 여성은 아니었을까 하는 내용의 드라마도 제작되었다. 김홍도는 정조의 자비대령화원이 될 정도로 정치적으로 인정받았고 다양한 주제의 풍속화를 그렸다. 한편 신윤복은 춘화로 보일 정도의 그림을 그려내고 여성, 그중에서도 기생들이 주인공인 그림을 다수 제작하였다. 이로 인해 도화원에서 파문당하여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적다. 신윤복이 그린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 중 제일 유명한 것으로 <미인도>를 꼽을 수 있다.



(좌) 김홍도, <벼타작> (우) 신윤복필, 『여속도첩』속 여성 인물화.


이 둘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기도 하였고, 신분제의 동요를 적나라하게 화폭에 남아 내기도 하며 당시 조선의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가고 있는지, 또 왕이 아닌 일반 사람들의 생활은 어떠하였는지 자세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조선 말기로 가며 이들과 같은 풍속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점차 줄어들었고, 종국에는 근대에 들어오기 직전부터 조선 후기의 인물풍속화는 그 맥이 끊기기에 이른다.





(좌) 김홍도, <투견도> (우) 김홍도필, <선동취생도>
김홍도필, <파상군선도>


김홍도에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그는 비단 인물풍속화만을 그리지 않았다. 그의 스승 강세황(姜世晃, 1713 ~ 1791)은 김홍도에 대해 모든 분야에 능하다고 하였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회화를 다뤘다. 도석인물화, 영모화, 산수화 등에 능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풍속화가로 유명하나 그의 다양한 작품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투견도>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 후기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뽑았던 그림이다.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미술사학자들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미술은 쇠락했다고 할 정도로 조선 중후기의 미술 가치를 낮게 보았다. 그러나 김홍도의 작품에 대해선 후한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한편 고희동(高羲東, 1886 ~ 1965)과 같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인 화가들 역시 김홍도를 조선 후기의 중요한 화가로 꼽았다. 근대 미술계에서도 주목이 될 만큼 중요했던 김홍도는 여전히 우리 삶 속에 녹아있고 미술시간에 한국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가로 우리가 배워왔다. 그는 우리에게 18세기 조선 풍경을 볼 수 있게 도왔으니 풍속화 역시 중요하지만, 그가 남긴 동물, 산수, 도가와 관련된 선인(仙人) 등의 그림을 또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하여도 볼 수 없던 풍경 - 안견, <몽유도원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