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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23. 2021

구하여도 볼 수 없던 풍경 - 안견, <몽유도원도>

미술사 - 한국[조선]

복사꽃 흐르는 물은 이 세상에 있는데 (桃花流水在人世)

무릉도원이 어찌 반드시 신선세계에만 있겠는가 (武陵豈必皆神僊)

- 소식(蘇軾, 1037-1101)



안견(安堅),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1447, 일본 덴리대학교 도서관 소장.


1447년 음력 4월 20일, 세종의 셋째 아들이자 당시 문화예술의 중심에 있던 인물인 안평대군 이용(李瑢, 1418-1453)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안평대군은 박팽년(朴彭年, 1417-1456)과 더불어 한 곳 산 아래에 이르러 있었는데 위를 올려다보니 산새가 층층이 솟아있고 깊은 골짜기는 그윽하며 복숭아나무 수십 그루가 있었다. 소박한 차림의 노인을 만나니 그는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휘어져 골짜기에 들어가면 도원이외다." 하였고 홀린 듯 들어가 보니 마을이 넓고 도화 숲이 어리 비치어 붉은 노을이 떠오르고 있었다. 또 대나무 숲과 초가집,  시냇물에는 조각배가 있으니 정경이 신선의 마을과 같았다. 이렇게 박팽년과 도원을 거닐었던 안평대군은 잠에서 깨어 안견으로 하여금 그리도록 하니 3일 만에 완성하였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이다.



<몽유도원도> 권축 상권 제일 앞의 제첨(題簽)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는 사실 권축, 즉 두루마리 형식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글과 그림이 더불어 만들어졌다. 현재 상권과 하권 2개의 두루마리로 존재하는데, 상권에는 <몽유도원도>와 문인 10명의 글이, 하권에는 문인 11명의 시가 실려있다. 안평대군의 글 외에 총 21명의 글이 적힌 이 두루마리 두 권을 합치면 약 20m에 이른다. 상권의 제일 앞부분에 '몽유도원도'라는 글씨가 세로로 적혀 있어 이 작품을 <몽유도원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박팽년과 더불어 안평대군과 가까운 사이였던 이현로(李賢老, ?-1453) 역시 시문을 적었는데, 그는 "구하여도 볼 수 없던 풍경을, 꿈에서는 현실처럼 보았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현로가 풍수지리에 능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몽유도원도> 속 도원은 가히 찾아다녀도 볼 수 없었던 지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몽유도원도>를 보는 우리 역시 그 산새와 분위기가 아롱하고 몽환적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꿈에서 본 도원의 모습은 안견의 붓놀림을 통해 구름 같은 산봉우리 표현으로 드러났고, 그림의 오른쪽에 위치한 붉은 꽃이 활짝 핀 복숭아나무들을 통해 도원임이 확인된다. 층층이 겹쳐진 산봉우리들 사이로 안개를 표현한 듯 여백을 둔 기법에서 동양 특유의 여백의 미가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로 하 여금 그림에 심취하도록 한다.



구영(仇英, 1493-1552), <한궁춘효도(漢宮春曉圖)> 중 일부.


우리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옛날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두루마리 그림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촥 펴진 채로 여러 명이서 감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의 <한궁춘효도(漢宮春曉圖)>의 한 장면과 같이 원래 두루마리 그림이란 한 명 혹은 소수의 감상자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조금씩 펴가며 감상하였다. 그런다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시간이 흐르게 된다. 사실 <몽유도원도> 권축은 그림은 일부이고 글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므로 일본 에마키(회권, 繪卷, 두루마리 그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인 경우는 아니다. 그러하더라도 다른 두루마리 그림과 감상법은 같다. 안평대군이 꾼 꿈 내용을 글로 남긴 내용을 앞서 언급해 두었는데, 두루마리 그림 감상법에 따라 글을 참고하여 <몽유도원도>를 다시 감상해본다면 더욱 마음이 동할 듯하다.


<몽유도원도>의 제작 배경에 대하여 많은 의견이 있고, 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 작품 자체와 안견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최초로 <몽유도원도>를 미술사 학계에 알린 나이토 코난(內藤湖南)은 안견을 '조선 제일의 화가'로 꼽았고, <몽유도원도>는 '안견이 북송 곽희(郭熙)의 기법을 제대로 익혀 그린 작품'이라고 찬하였다. 이러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작품, <몽유도원도>에 대해 이번 글에서 짧게나마 감상해보았다. 배경이 어찌 되었든, <몽유도원도>를 우리 본국에서 볼 기회가 생긴다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야 할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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