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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25. 2021

최고(最古)의 모노가타리 -『다케토리 모노가타리』

미술사 - 일본[헤이안]

"달을 보는 것은 불길한 일입니다. 저는 달나라의 사람이고, 부모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리 기쁘지 않고 슬플 따름입니다."

- 『다케토리 모노가타리』 중 가구야 히메 말의 일부


『다케토리 모노가타리 에마키』,  17세기 후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에 대해 보기 앞서, 우리는 모노가타리라는 문학 장르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모노가타라라는 문학은 일본 헤이안 시대인 9세기부터 유행했던 소설 문학이다. 헤이안 시대는 간무(桓武) 천황이 헤이안쿄(平安京: 교토)로 도읍을 옮긴 794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초기까지는 중국 당나라 문화를 적극 수용하였으나 894년 견당사가 폐지된 이후로 고유 문자와 독자적 문화를 성립하며 국풍 문화가 융성하게 되었다. 모노가타리도 이와 발맞춰 시작되었는데 주로 여성이 가나 문자를 이용하여 썼다. 물론 남성 지식인도 모노가타리를 쓰곤 하였는데,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의 작가도 승려 헨조(遍昭, 816-890)가 지었다고 추측되고 있다. 헤이안 시대에는 수많은 모노가타리가 등장하였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겐지 모노가타리』도 이 시대에 쓰인 소설이다. 그리고 이 수많은 모노가타리들 중에서도 『다케토리 모노가타리』가 제일 먼저 창작되었다. 그러나 『겐지 모노가타리』와 『이세 모노가타리』 등의 모노가타리보단 덜 알려져 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2013년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영화 '가구야 공주 이야기'로 재탄생시키면서 큰 이목을 받았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와 그것이 에마키(두루마리 그림)로 회화화된 것에 대하여 이번 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10세기에 대유행을 했던 모노가타리는 헤이안 중기 미나모토 다메노리(源爲憲)가 『산보에』 서문에 '모노가타리는 큰 나무숲의 풀보다 번창하고, 해변가의 모래알보다 많다'라고 언급한 것에서 그 유행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유행의 시작 작품이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였던 것이다. 다음은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산속에 사는 대나무를 취하는 노인은 어느 날도 어김없이 대나무를 취하던 중, 대나무 안에서 새는 빛에서 작은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아이가 없던 노부부는 데려다가 ‘가구야 히메’라고 부르며 소중히 키우기 시작하였는데, 3개월 만에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난다. 그녀의 용모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많은 구혼자가 몰려오게 되고 가구야 히메는 그중에 5명의 귀공자에게 각각 난제를 준다. 당대 최고의 신랑감이었던 그들은 부처님이 성도(成道)할 때 사용했다는 사발, 봉래산에 있다는 금은보화로 된 나뭇가지, 불에 타지 않는 쥐의 가죽옷, 용의 목에 달린 오색 빛 구슬, 제비들의 순산을 돕는 보랏빛 조개를 구해오라는 과제를 받게 된다. 이것은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것들로 결국 모두 실패하고 가구야 히메는 모든 구혼을 거절하게 된다. 마침내 소문은 천황에게까지 닿게 되어 천황 또한 그녀를 궁으로 데려가고자 하였으나 그녀는 자신이 천상에서 내려온 여신임을 암시하며 거절한다. 가구야 히메는 승천하는 날을 앞두고 히메를 키운 노인에게 속죄 기간이 끝나 다시 하늘로 승천할 것이라고 밝힌다. 드디어 어느 가을 보름달이 밝았고, 그녀를 달나라로 보내지 않으려는 천황의 명령으로 그녀를 포위했으나 마중 나온 천인들에 의해 하늘로 올라간다. 슬픔에 잠긴 노인과 천황은 가구야 히메가 주고 간 불사약은 소용없다며 높은 산 정상에서 태웠는데 그 산에선 아직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 산을 ‘후지산’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에는 헤이안 시대 때 유행하던 각종 설화가 녹아있는데, 이러한 면모는 이후 모노가타리 전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일례로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다케토리 모노가타리』를 인용한 부분이 존재하는데, 승천한 가구야 히메처럼 죽음을 맞이하여 세상을 떠나는 무라사키 노우에(紫上)와 남겨진 히카루 겐지(光源氏)의 당혹감, 가오루(薫)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느끼면서도 결혼 거부의 뜻을 일관되게 밝히며 죽어간 오이기미(大君) 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모노가타리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가구야 히메가 당시 여성들과 다른 진취적이고 자의적인 성향을 가졌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것을 보면, 가구야 히메의 행동은 파격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 남성 작가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과 여성 캐릭터의 성격을 에마키 화가가 얼마나 이해하였는지에 따라 『다케토리 모노가타리』가 에마키로 회화화 될 때 차이점이 생겼다는 것이 확인된다. 에마키란 글과 그림이 번갈아가며 제작된 두루마리 그림으로, 모노가타리는 여러 명의 화가에 의해 시대가 흘러도 꾸준히 에마키로 재창작되었다. 대개 비슷한 필치와 구도로 그려졌지만 그림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 이번에 볼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에마키 2점에서 가구야 히메의 성격을 이해함에 차이가 있어 살펴보려 한다.



(좌)『다케토리 모노가타리 에마키』, 17세기, 릿쿄대학 도서관 소장.  (우)『다케토리 모노가타리 에마키』, 17세기 후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이 장면은 가구야 히메가 준 난제를 거짓으로 풀어온 아베 우대신이 망신을 당하는 장면으로, 불에 타지 않는 불쥐의 가죽이 불에 타는 장면이다. 재미있게도, 두 소장처에 보관된 에마키가 동시대에 제작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차이점이 드러난다. 먼저 우측의 릿쿄대학 도서관 소장의 것은 가림막이 열려 있고, 실외에는 불쥐를 태우는 하인만이 있다. 또한 남성들은 하인을 제외하면 실내에 위치한 할아버지만이 보이며 여성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 중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등장한다. 한편 좌측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의 에마키로, 가구야 히메와 여성들은 가리개와 가림막이 쳐진 실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야외에는 우대신을 비롯한 구혼자들과 할아버지가 불타는 가죽을 보고 있다. 여성은 실내에 두고 가리개로 외부와 단절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보수성을 띠고 있다. 가리개는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장치로 쓰이고 있으며 일본의 전통적인 여성의 지위가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두 에마키는 동시대에 제작되었지만 그림 구성에서 여성을 배치하고 설정한 면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여기서 두 에마키를 제작한 화가들의 기구야 히메가 진취적 여성임을 이해한 정도에 차이가 있었음이 드러난다.



(좌)『다케토리 모노가타리 에마키』, 17세기, 릿쿄대학 도서관 소장.  (우)『다케토리 모노가타리 에마키』, 17세기 후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다음 장면은 가구야 히메가 달나라로 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병사들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다. 여기서도 『다케토리 모노가타리』를 이해함에 차이가 있었음이 드러난다. 먼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의 에마키는 병사들만 등장하고 그들의 다급한 움직임으로 긴박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편 릿쿄대학 도서관 소장의 에마키는 오히려 병사들의 동작은 정적이나 대문 안쪽 여성들의 움직임과 손짓에서 다급함이 엿보인다. 여기서 앞서 살핀 장면에서의 차이점이 연장된다. 역동성이 강조된 장면에서 메트로폴리탄 소장의 것에서는 남성만이 등장하는 반면, 릿쿄대학 도서관 소장의 것에서는 여성도 등장하고 그들 중 일부는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렇게 두 장면만 살펴보았지만 다른 장면에서도 화가가 가구야 히메의 진취성을 이해한 정도에 차이가 있었음이 드러난다. 모노가타리와 에마키는 모두 일본 예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소비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작가들이 문학을 회화로 재창조하였고 그것은 한 세대에만 일어난 것이 아닌 꾸준히 후대까지 이어졌다. 『다케토리 모노가타리』가 9세기 중엽에 창작된 것임에도 17-18세기까지 다수의 화가에 의해 회화화되었다는 점에서 그 사실이 확인된다. 그러니 모노가타리에 대한 화가들이 이해도와 화가의 가치관과 예술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2점의『다케토리 모노가타리』에마키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문학과 미술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에서, 문학이 회화화된 작품을 볼 때는 작품 외의 여러 요소를 고려하고 다각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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