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비행기 안에서 깊이 못 잔다. 시차 적응도 그렇고, 이번엔 고민할 게 많아 더욱 잠이 안 온다. 게다가 뒤에 홀로 앉은 엄마가 신경 쓰여 연신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더 그랬다. 영화 4편 보며 12시간 30분 버틴 후 드디어 부다페스트 도착! 공항은 몹시 작았고, 입국심사는 간단하다. 어둑해진 부다페스트의 공기는 선선했다. 밤공기를 마시자마자 바로 버스 탑승. 3시간을 또 달린다. 와아.. 역시 버스 안에서도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도착하자부터 진 빠진다. 예민한 엄마도 잠을 설친 탓에 눈이 퀭하다.
마침내 오스트리아 비엔나 호텔 도착. 버스 안에서부터 유럽 숙소는 기대 말라 어쩌고 저쩌고 하는 가이드의 말에 이미 짐작했었다. 밤이라 모르겠지만 어디 외곽쯤일 거고, 숙소는 낡았겠지. 역시 맞았다. 하룻밤이니 일단 자자.. 하아.. 잠이 안 온다.
아침 6시부터 시작되는 조식 뷔페. 나처럼 잠을 거의 못 잔 엄마를 모시고 내려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사 중이다. 이제 겨우 6시 10분인데! 쓱 둘러보니 별로 먹을 게 없다. 그나마 제일 맛난 건 호밀빵! 8시 정각, 32명을 태운 버스는 출발한다. 첫 도착지는 벨베데레. 이번 여행에서 제일 가 고팠던 곳 중 하나. 가이드가 사람들에게 보여준 그림은 클림트의 키스와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나는 슬쩍 자리를 이탈해 클림트, 에곤 쉴레, 코코슈카를 홀로 만나러 간다. 마음이 녹아내린다. 불면으로 혼탁한 정신이 맑아진다. 이 좋은 곳에 한 시간도 못 머물다니..
시티투어버스처럼 비엔나 시내를 도는 버스. 곳곳이 이야깃거리다. 예스러운 건물들, 역사 속 인물들의 동상, 심지어 맥도널드 1호점까지 남다르다. 아.. 이곳을 못 걷다니 아쉽고 또 아쉽다. 슈테픈 성당에선 자유시간을 40분이나 준다. 성당 안에서 잠시 기도를 한다. 엄마와 의 첫 해외여행을 지켜주소서. 마음의 짐을 거두어주소서. 잠시 비엔나커피나 아인슈패너를 마실까 했지만, 일단 엄마가 커피를 못 마시는 데다 느긋하게 앉아 즐길 시간도 안된다. 대신 광장 안 골목을 걷기로 한다. 엄마 무릎이 불편한지라 속도가 안 난다. 겨우 한 바퀴 돌고, 커피를 마셨다는 분에게 맛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한국 커피가 더 맛나요. 그리고 커피가 20분 만에 나와 그냥 들이켰어요.'
쉔부룬 궁전은 기대 이상이다. 합스부르크 600년 전시를 위해 책 하나 읽었던 터라 더 흥미진진하게 구경한다. 궁전 행사를 그린 그림들은 압도적이다.
팀원들과는 섞여서 점심 한 끼 먹었더니 조금 가까워졌다. 어르신들은 내가 제일 똘똘해 보였는지 와이파이 연결, 데이터 접속 이런 걸 자꾸 물어보고 부탁한다. 심지어 사진도 찍어달라 해서 다리 길게 찍어드린다. 물어볼 게 있으면, 통역이 필요하면 슬쩍 내 옆으로 오시는 어르신들. 웃음이 난다.
이제 다시 5시간을 버스로 달린다. 가이드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데도 엄마와 나는 병든 닭처럼 연신 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