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작가 Oct 27. 2023

방송작가의 동유럽 패키지, 아니 효도여행기 9

쓸함이 묻어난 크로아티아를 벗어나 부다페스트에 들어오니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흐리긴 하지만 비도 그치고 서늘한 기운이 좋다. 엄마는 여기가 아까보다 좋네 한다. 성을 둘러보고 사진도 엄청 찍고 마지막 저녁을 먹으러 간다. 메뉴는 비빔밥. 맛있다. 모두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는다. 후식으로 나온 큼직한 자두까지 맛있다.

이제 그 유명한 야경 보트투어. 바람이 차가워진다. 엄마는 결국 객실로 들어가고, 나 혼자 강바람을 맞는다. 문득 한국 생각이 난다. 엄마 챙기느라 기념품도 못 샀는데 어쩌지,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는 규리는 어쩌지, 회사 일은 어쩌지... 갑자기 무거워지는 마음.  엄마는 크로아티아의 아쉬움을 잊었다며 매우 좋아한다.

마지막 날 아침, 영웅광장과 안익태 묘지 등을 순식간에 둘러보고 두 시간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엄마가 다리가 많이 아프다고 주저앉는다. 결국 잠시 거리 벤치에 앉혀놓고 혼자 걸어가서 그 유명하다는 장미 젤라토를 두 개 산다. 나 이빨 시려 싫다 하시더니 결국 다 드신다.

이제 공항으로 향한다. 가이드가 팀별로 특징을 언급하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엄마와 나는 1조였다. 나이 순으로 조 번호를 부여했단다. 엄마가 최연장자, 나는 최연소자. 이제 친해진 동행자들과 인사도 나눈다. 사생활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나는 여기서 엄마 모시고 여행 온 효녀딸일 뿐이다. 사진도 잘 찍어주고 양보도 잘하고 물건 살 때 잘 도와주는 싹싹하고 씩씩한 막내일 뿐이다. 엄마 체면 좀 살려 드린다고 살짝 더 오버했다는 걸 고백한다.

유달리 엄마와 나를 챙겨준 부산 4인방 언니들과 서울 4인방 언니들에게 고맙다고 한다. 갑자기 부산 언니 하나가 어디 안아보자 한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우리'란 말을 쓴다. 우리 팀 어디 갔어? 우리 팀이 제일 빠르네. 낯선 이들과 불과 며칠 만에 우리가 되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다.

9일간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한국 돌아가면 보자는 말도 지나 보면 허공에 날아가고 없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지워진다. 그래도 현재에 같이 먹고 자고 타고 걷고 본, 잠시만의 '우리'가 되었던 시간들은 좋은 추억으로 담아둔다.

작가의 이전글 방송작가의 동유럽 패키지, 아니 효도여행기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