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둘만의 여행을 한 적이 없다. 엄마의 나이를 가늠한 적이 없다. 엄마의 속도를 맞춰본 적이 없다.
자주 엄마는 말했다. 지인이, 친구가 자식들과 동유럽을 갔는데 그렇게 좋다더라. 당연히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냥 친구들이랑 가세요, 여비 드릴게. 그런데 진짜 갑자기였다. 올여름휴가를 계획하면서 다리 아파 힘들어하는 엄마 생각이 난 거다. 친구들은 어떻게 그동안 엄마 모시고 해외유행을 안 갈 수 있냐며 나무란다. 그래, 이번 아니면 언제 가겠어. 엄마와 첫 해외여행을 준비하며 결심한다. 절대로 싸우지 말자.
여정을 다 끝낸 지금, 솔직히 몹시 힘들었다. 조금만 많이 걸으면 쥐가 난다며 힘들어한다.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면서 과일과 채소는 입에 안 댄다. 가이드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소리를 한다. 숙소 가자마자 잠들어서 새벽 3시 정도면 부스럭 부스럭댄다. 사진 찍어줄 때도 뭐 하러 찍냐며 손사래를 친다. 가지고 온 옷들은 다 칙칙하다. 팀원들에게 쓸데없는 얘기를 한다. 중간중간 화장실도 꼭 가야 한다. 주어진 자유시간도 엄마와 함께 움직여야 하기에 반토막이 난다. 경치 음미할 틈도 없이 엄마가 어디 있는지 먼저 익혀야 하고, 걸음이 늦다 보니 목적지 가기도 전에 포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 눈치를 본다.
엄마가 신경 쓰이니 몸도 마음도 빨리 지쳐갔다. 엄마가 있으니 포기할게 많아졌다. 엄마가 있으니 모든 행동이 더 빨라졌다.
결국 여행 3일 차, 엄마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주저 말고 말해요. 왜 마음을 숨겨. 얼굴에 다 씌어 있으면서.. 엄마도 말한다. 너 힘들까 봐 그러지. 이게 어떻게 온 여행인데..
길이 미끄럽고 계단이 가파르다. 엄마 내 손 잡아. 내 손도 작은데, 엄마 손이 작은 걸 보니 엄마 닮았네. 엄마 손을 잡은 지 오래됐다. 9일 내내 엄마 손을 잡았고, 팔짱을 끼고 다녔다. 평생 처음, 길게 엄마의 손을 잡았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알게 됐다. 엄마 다리 상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나쁘고, 귀도 많이 먹었고, 이해력도 떨어지고, 화사한 옷도 별로 없다는 것을... 진작 알았어야 할 것들을 이제 알았다.
현실로 돌아가도 난 여전히 살갑지 않은 딸일 것이다. 영화나 소설처럼 엄마와 뜨거운 화해, 앞으로 진짜 효도 많이 해야 지하는 다짐 이런 건 없다. 그래도 엄마의 나이, 속도, 마음을 조금은 알았으니 맞춰 드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