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식 선배님을 추모하며…

부제 : “미쳤다!”

by 정태영

1.


나는 ‘천재genius’란 말을 가끔 쓴다.

무순 기준을 갖고 쓰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느낄 때 “아, 저 사람 천재구나”, 또는 “천재성이 있다” 라고 생각 할 때 혼자 그렇게 중얼거린다.


사실 천재를 아이큐가 얼마 이상일 때 천재라고 기준하거나, 시험 성적이 얼마일 때 기준하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노벨상을 받았다고 해서 천재라고 정의 내리지도 않는 것 같다.



존 내시John Forbes Nash Jr.의 스승이 그에 대한 소개서를 타 교수에게 써 주었을 때 단 한 마디 “He is a genius” 라고 적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버트란트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천재'란 것을 즉각 알아봤다고 한다.

후일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좀 이상했다(queer). 그리고 말하는 것도 좀 이상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천재인지 아니면 그냥 이상한 놈인지.

캠브리지 대학에서의 첫 학기가 끝나고 그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내가 멍청한 놈인지 아닌지 말해줄 수가 있습니까? 내가 멍청하다면 나는 비행기 조종사가 될 것입니다. 내가 멍청하지 않다면 나는 철학자가 될 겁니다.'

나는 방학 동안 철학에 관한 글을 하나 써오라고 했다. '그러면 너가 멍청한지 아닌지 말해주겠다'라고 했다.

다음 학기가 시작하자 그는 글을 하나 가져왔다.

나는 첫 문장만 읽고 그에게 말했다. '비행기 조종사 되지마라.'"

비트겐슈타인이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러셀에게 철학을 배운 것은 겨우 세 학기에 지나지 않았다. 러셀은 친구에게 "비트겐슈타인을 알게된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강열한 정신적 경험이었다" 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그를 '완벽한 천재의 전형'으로 평가했다.



나는 천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천재성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천재의 기준을 나 나름대로 하나 정하고 있다.

‘미침’ 이다. 한문에서 말하는 광기狂氣하곤 좀 다르다. 내가 ‘미침’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몰두이다. 여늬 일상인과 다른 몰두이다.

즉 하나에, 어떤 일에 흠뻑 빠져 있는데, 다른 일 다 잊어 버리고… 제쳐놓고 그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밥만 먹고 나면 그 일에 몰두하는 경우이다.

하루 24시간을 온통 그 일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잠도 거기서 자고 먹기도 거기서 먹고….



2.


“미쳤다!”

고 김대식 선배의 연구실 겸 실험실을 둘러보고 난 후 소감이었다.

마르크스가 인용한 당시 영국의 정신병원 bedlam에 입원한 정신병자가 아니고,

토리노의 말을 껴안고 미쳐버린 니체가 아니라…


미치지 않고 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천재 genius는 미치광이가 많다.

미치지 않고 서는 집중할 수가 없다.

인생의 하루 24시간은 누구나 같은데 천재에게는 하루가 너무 짧을 것이다. 그래서 미쳐야 한다. 몰두해야 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야 한다.


지난 7월 24일 (2025년) 김대식 선배의 추모 모임 전 고인이 연구실 및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김대식 선배의 실험실을 방문하기전 상상은 이랬다.

낡아 빠진 물건들, 너브러진 쓰레기 같은 오래된 공구들, 먼지가 내려 앉아 손으로 쓸어내리면 금새 손 끝에 뭍는 회색 먼지들….

이리저리 뒤둥그는 바케스니 잡동사니들…

거미줄이 길게 늘어뜨려진 폐가의 창고 같은 모습들이 내가 상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험실이자 발명품 제작소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예상은 일순간에 바뀌었다.

각종 기구, 제작 공구, 부품, 재료, 연장 등이 실험실을 꽉 차 비좁기까지 했으나, 많은 것들은 윤이 나고, 새것 같았다.

금방 사용한 것 같았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하시고, 만드시고, 연구하신 체취가 남아 있었다. 91세 나이에.


함께 간 한 동문은 “세상에 이럴 수가!” 하고 경탄했다.


연구실은 마치 에이스 하드웨어(Ace Hardware) 가게에 들어선 것 같았다. 수 많은 공구와 재료, 나사 등이 벽에 붙은 선반과 보관함에 꽉 차게 들어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방이 있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옆 방에 들어서니 또 하나의 에이스 하드웨어 같은 실험실이 나타났다. 거기에도 마찬가지로 각종 공구 재료 등이 꽉 차 있었다.

진짜 작은 에이스 스토어(Ace Hardware) 규모였다.


“이 많은 공구와 재료 등을 사시기 위해 돈 많이 엄청 쓰셨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하시고 나서 평생을 이토록 이런 일에 바치셨으니 공구와 재료 값만 해도 집 한 채는 사고 도 남을 투자였을 것이다”


사모님께 꾸중 많이 들으셨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늬 부인 같으면 가만 있지 않으셨을 것 같다. “헛 돈 쓰지 말고…” 라며.


옆에 있던 한 동문이 들은 이야기를 해 준다. “김 박사님은 동창회 모임 등 외부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실험실에서 사셨어요. 잠도 실험실에서 자고, 먹는 것도 실험실에서 드시고, 따님이 식사를 실험실로 가져다 주셨어요”



아인슈타인도 밥 만 먹고 나면 자기 방으로 쪼르르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그의 부인 밀레바와 사이가 좋지 않아 결국 이혼까지 했다.

(아이들과 부인 놔두고 밥 만 먹으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방콕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물건으로 가득차고, 각종 쇠붙이로 가득찬 그 차가운 금속들로 가득찬 좁은 통로에서 잠도 자고 식사도 하셨다니…

철공서처럼 금속 파편과 금속 찌꺼기, 그리고 구리스로 찌든 공작 기계 더미 속에서 자고 먹고 하셨다니…


이렇게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처럼 몰두할 수가 있는가?


외부에서 보면 미쳤다고 보일 것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빌게이츠도 고등학교 때 컴퓨터에 빠져, 미쳐, 하루 종일 그것만 했다 하지 않는가?


<에필로그>


인류의 역사에는 수 많은 천재들이 미치광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극히 일 부분만 운 좋게 남아 이름을 날리고 기억을 받고 있다.

그러나 무명의 천재들이 인류 문명에 기여한 금자탑은 그윽하다.


서양의 수 많은 연금술사들은 자신들의 비법을 비밀로 하기 위해 세상에 발표는 커녕 알리지 않고 죽었다고 한다.

자손 대대로 내려오는 기업의 비법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기여는 하지만 그 비법은 외부에 알리지 않고 대대로 전승 계승되어 꽃을 피우는 것이다.


김대식 선배는 생전에 자신의 실험실과 연구 성과, 특허 내용의 전수 및 이어받을 사람을 무척 찾으셨다. 그러나 끝내 찾지 못하시고 별세하셨다.



* 김대식 (Dae Sik Kim, 1933년 11월 14일 – 2025년 1월 20일) 선배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1954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콜드 크랭킹 시뮬레이터(cold-cranking simulator)를 비롯해 무공해 엔진, 그리고 최근의 ‘플라잉카’까지 12개가 넘는 발명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 노트 :

1. 영국의 정신병원 베드램(bedlam)에 입원한 정신병자 : 마르크스는 1848년 2월 프랑스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국민의 절대적 다수 지지를 받아 집권하자 프랑스 국민을 미친 정신병자로 풍자했다. 이는 2월 혁명 이후 민중정부를 구성하고자 시도한 1848년 6월 프롤레타리아의 봉기가 실패하자 부르주아 정권을 수립한 루이 보나파르트를 지지한 프랑스 국민을 비난한 것이다.


2. 토리노의 말을 껴안고 미쳐버린 니체 : 니체는 사망 1년 전 이태리 토리노를 방문하다가 우연히 마부로부터 채찍을 맞고 있는 말을 보고 그 말의 목을 껴안고 흐느꼈다고 한다. 이후 니체는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


3.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 ~ 1951)은 대학에서 항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항공기 조종사가 되려고 했다.




(글. 202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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