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Care +
지금 감기라고 부르기에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감기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순간
감기가 저보다 먼저 태어났고
저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알았지만
그때도 감기라고 불렀습니다.
감기가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지만
은근히 감기도 좋아하는 것 같았고
오히려 친근하게 불러주는
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감기는 나그네처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고
소문에는 바람둥이라고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감기의 취향은 독특해서
과로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청결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고
영양섭취를 잘 안 하는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감기가 좋아하는 취향에
제가 있었는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만났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감기를 만난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서로 어색했지만
감기가 좋아하는 것이
아직까지 저에게 남아 있었나 봅니다.
감기를 만나면
빨리 헤어지고 싶지만
표정관리를 잘하면서
감기가 스스로 떠나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감기에게
우리가 아직도 만날 일이 있었는지
아주 살짝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분명히 전에 얘기했었고
이유도 충분하게 설명했기에
감기가 잘 알아듣고 떠나가기를 바랐습니다.
감기와 계속 만나기 위해서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면
몸이 쑤시고 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고 재채기가 납니다.
이런 아픔들을
모두 다 안고 간다 해도
나하나로 만족하지 못하는 감기에게
너는 혼자 있는 것이 어울린다고 말했었습니다.
이런 말을 해준 것이
벌써 오래전의 일인데
감기도 함께 나이가 들어가니
기억력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이번에 감기를 만나면서
오랜만이라는 인사도 안 하고
감기가 싫어하는 것들만
몰래 서둘러서 준비했습니다.
감기가 몹시 놀라겠지만
감기가 몹시 당황하겠지만
이렇게 빨리 헤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있는 약통에서
맥문동탕, 쌍화탕, 프로메타진 시럽
그리고 에드빌, 비타민 C -1000 mg까지
감기가 싫어하는 약들을 모두 꺼내 놓았습니다.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 싶어서
어제 하루동안 3번에 걸쳐
준비되어 있던 약들을
모두 복용했습니다.
감기가 깜짝 놀란 건지
어쩌면 전에 해준 말이 기억이 난 건지
아직은 내 눈에 보이지만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감기도 깨닫기를 바라는 것은
감기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더 건강해졌다는 사람들은 없고
더 아파졌다는 사람들만 있다는 것입니다.
가까이 오고 싶어 하는
감기에게는 미안하지만
서로가 만나서 아픔만 생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먼 길을 돌아서
오랜만에 찾아온 감기이기에
미안한 표정도 지어주면서
다신 보지 말자며 감기와 잘 헤어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