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를 존중하며
Demystifying the Unclear Reasons
간절하게 원했는데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고
간절하지 않았는데도
이루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잘할 수 있어도
분수를 알고 멈추는 경우가 있고
잘할 수 없는데도
분수를 몰라 과속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치유할 수 있는 아픔이 있고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이 있지만
가끔 정반대의 경우가 생겨도
치유가 된 사람만이 이 세상에 있습니다.
개구쟁이 다섯 살 때
신작로를 달려오던 자동차와 부딪혀서
삼일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죽을 줄로만 알았던 아이가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머리가 좀 깨지고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고
그 아이가 마지막 본모습은
엄마가 자신을 안고 울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아픔을 이겨냈으니
이 아이에게는 더 이상 아픔이 없었을까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후에도 아찔한 죽을 고비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알려진 사람이 아니기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얘기를 한다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서 들어줄까요?
저처럼 살아있는 사람이 많아서 힘들 겁니다.
운이 좋아서 아니면 기적적으로
고칠 수 없었던 아픔이 고쳐진다면
본인에게나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에게는
말로는 표현 못할 큰 기쁨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운이 나빠서 아니면 기적이 없어서
고칠 수 없었던 아픔이 고쳐지지 않아
살아도 사는 것이 아픔보다 더한 아픔이라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서 이 이야기를 들어줄까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나서
글을 쓸 때 감명 깊었던 구절을 얘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책의 구절을 인용할 뿐
글을 쓸 때 자신의 영감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저도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뜻밖에도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책장에 꽂혀있던 그리 많지 않던 책들을
도네이션도 하고 중고서적에 팔아버렸습니다.
그 한 권의 책이 무엇인지는
궁금하셔도 지금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그 한 권의 책이 낡아지면 똑같은 책을 사서
눈으로도 소리 내서도 밑줄 그으면서도 읽었습니다.
그 한 권의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그 한 권의 책을 몇 권이나 구입했는지
그 한 권의 책이 그렇게도 재미있었는지는
그 한 권의 책을 권한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그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저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두려움도 느끼면서
겸손하게 저의 삶의 목적을 알 수 있었고
그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지금은 백세시대라고 하니
저는 아직 젊은 나이에 속하기도 하지만
제가 살면서 경험했고 깨달은 것을
브런치에 계속해서 글로 올리고 싶습니다.
글은 읽는 독자의 취향에 따라서
어렵고 긴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저처럼 전하고자 하는 핵심만 올리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은 자신이 배운 것을 써먹고 싶어 하고
작가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문학세계가 있고
작가들은 어렵고 해석하기 힘든 것을 정석이라 말해도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서 읽을 수 있는 것이 정석이 아닐까요?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제 취향은 시와 에세이를 좋아하기에
작가님의 삶의 경험과 지혜의 글을 올려주시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정성껏 읽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 한 권의 책 이후에 마음이 움직여서 다른 한 권의 책을 구입했습니다.
* 그 책이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류귀복 지음-'입니다.
* 제가 왜? 이 책을 구입했는지는 구입해서 읽어보시면 아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