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7시쯤 눈을 떴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마쓰야마 성 해자 옆 산책로로 나갔다. 여행지에서의 러닝, 백패커 시절에는 부려보지 못한 사치를 요즘 부리고 있다. 그냥 나가서 뛰는 것이 무슨 사치냐고까지 할 수도 있지만, 러닝복과 러닝화를 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건 분명 백패커는 꿈도 못 꿀 캐리어족의 사치다.
날씨는 흐렸지만 비는 그쳤고, 공기는 차분해졌다. 언덕 위 성을 배경 삼아 달리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이라 공원으로 조깅을 나온 사람이 많았다. 해자가 끝나는 지점부터 마쓰야마 성 둘레를 크게 한 바퀴 돌 생각이었지만, 해자 안 쪽 공원의 싱그러움이 좋아 그 안쪽으로 발길을 잡았다. 그 뒤로는 그냥 다리가 가는 대로 달려 나갔다. 홍콩 중산공원에서의 달리기가 격앙되었다면, 그날의 달리기는 차분했다.
호텔 앞 편의점에서 오니기리와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마쓰야마 성으로 향했다. 해자 안 공원에서는 지역 축제가 있는지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런 축제를 놓칠 수는 없기에 이따 다시 와보기로 했으나, 저녁에 갔을 때는 이미 축제가 끝나있었다. 여러모로 아쉬웠다.
성이 위치한 언덕은 그리 높지는 않았으나 정상까지 리프트를 운영하여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이 성은 도쿠가와 이예야스의 가신이었던 가토 요시아키라는 인물이 이 지역을 영지로 받으면서 축성하였다고 한다. 가토 요시야키는 임진왜란에도 수군으로 참전해 싸우는 족족 이순신에게 박살이 난 인물이기도 한데, 그래도 줄을 잘 선 덕에 영지를 받고 이렇게 멋들어진 성도 지어놓고 산 것이다. 이순신이 전쟁 중 조선 조정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씁쓸해지는 대목.
일본도 한 주간 이어지는 연휴의 초입이었기에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특히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많았다. 충만한 봄기운 아래 아이들이 삼삼오오 뛰어다니고 재잘거리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아이들의 공공도덕 교육에 철저한 일본이지만, 봄의 공기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어른들의 다테마에도 무너뜨렸나 보다.
성을 구경하고 시의 번화가인 오카이도 거리로 내려왔다. 점심으로 라멘을 먹고, 트램을 타고 도고온천으로 향했다. 도고온천 본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고,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에서 그 문제의 도련님이 자주 가던 유서 깊은 곳이다. 우리가 제주항공에서 받은 무료 쿠폰은 아쉽게도 본관 건물이 아닌 신관이어서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온천이 있는 동네를 둘러보았다. 트램 도고온천 역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식당들과 아기자기한 소품샵들이 이어졌다. 나는 본디 뭘 사서 꾸미고 하는 데는 1도 취미가 없기 때문에 그냥 둘러보고 있었는데, 지브리 소품샵은 차마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사고 싶은 소품은 많았으나, 정작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것들은 없었고 (느끼는 감상은 다 비슷한가 보다), 고민하다 엽서를 몇 장 샀다. 무척 같이 오고 싶어 했으나 함께 오지 못한, 역시나 지브리의 광팬인 친구에게 보내주기 위해.
동네를 산책했다. 전형적인 일본 교외의 모습이었다. 기와를 얹은 목조주택들이 간간이 섞여 있고,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거리. 구름이 걷힌 하늘은 파랗고, 오후 햇살 아래의 풍경은 반짝이는데,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냥 그 속에 녹아들어 나도 풍경의 일부가 되면 어떨까.
온천을 마치고 해가 질 무렵 도고공원에 올랐다. 옛날에는 이곳에도 성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공원이 들어섰다고 한다. 언덕 위 전망대에서 어둠에 잠겨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도시의 전망을 보기에는 마쓰야마 성을 능가하는 명소였지만,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덕분에 그 풍경은 오롯이 내 안에 담겼다.
온천을 하기 전에 탭하우스에서 굴튀김에 맥주를 한 잔 해서 그런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술을 때리러 가기로 했고, 기차역 근처에 이자카야가 몇 집 모여있는 골목으로 가 그중 분위기가 가장 독특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정말 독특한 곳이었다. 내가 흔히 생각해 왔던 이자카야의 분위기, 예컨대 나무 인테리어에 어두운 조명이 아니었다. 흰색 인테리어에 조명은 끝 간 데 없이 밝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품들과 술병들이 널브러져 있고, 종업원과 사장님의 접객 태도가 다른 곳과 다르게 과하게 친절하지 않았다. 일본이라기보다는 홍콩의 느낌이랄까.
가게에 젊은 사람은 없었고, 동네 노인들이 홀로, 또는 둘셋이 마주 보며 가볍게 한 잔씩하고 있었다.
영어 메뉴가 있을 리 만무했고, 우리는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술과 안주를 시켰다. 치킨 가라아게, 오뎅, 가쓰오부시를 올린 두부, 새우튀김, 오니기리까지, 안주는 정말 하나같이 끝내줬고, 술이 끝도 없이 들어갔다.
밤이 깊어지자 손님은 우리밖에 안 남았고, 감자 샐러드빵을 서비스로 내온 여사장이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안주 삼아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슬쩍 내민 핸드폰 구글 번역기에는 한글로 "여행?"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단어가 괜스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이런 게 여행이었다.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이번 여행에 대한 총평은 돌아와서 한 친구와 나눈 통화에서 그가 한 말로 대신하려고 한다. "그래? 가기 전엔 그렇게 가기 귀찮다고 하더니 정말 좋았나 보네? 잠잠하던 방랑벽이 또 도지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