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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재윤 Aug 01. 2022

몸으로 때우는 사람

나를 잃어버리면 정신은 없어지고 몸뚱이만 남는다.

글쓴이 주:  먹고살기 힘든 5, 60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던지는 삶과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입니다.

 쌀장사로 20년을 살아온 제 경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있습니다.




몸으로 때우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영업자인 우리가 하는 일의 8할은 몸으로 때우는 일이다. 몸으로 때운다는 말은 건설현장에서 '노가다'라는 말로 막노동을 비하해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몸으로 때우겠다는 말은 학교 숙제를 안 해갔거나 영어단어 시험 준비를 안 했을 때, 차라리 손바닥을 맞고 말겠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정신노동보다는 사람의 강인한 근력을 필요로 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몸으로 때우는 사람이라고 한다.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 하면, 검게 그을린 얼굴이나 불끈불끈 솟아오른 힘줄이나 곧 폭발할 것 같은 강인한 표정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상에 있는 일 중에 '몸으로 때우는 일'이 아닌 일이 어디 있을까? 건설현장을 생각해 보더라도 목수, 전기, 기계, 측량, 용접 이런 일들은 사람의 직접 노동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고도의 전문적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악기 연주자를 예로 들어보자. 연주자들이야 말로 몸으로 때우는 사람들이다. 세계적인 피아노 연주자 손열음 씨의 영상을 보면 손목에 스포츠용 붕대를 감고 연습하는 장면이 나온다. 화려한 의상은 어디 간 곳 없고 우리가 집에서 허드레로 입는 트레이닝 바지에 화장끼도 전혀 없다. 손열음 씨의 피아노도 몸으로 때우는 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마흔대여섯 쯤이었을 때 대학시절에 잠시 배우다만 기타를 다시 배워보고자 했다. 요즘에는 인터넷 카페란 것이 있어서 학원에 나가지 않고도 배울 기회가 많다.


6개월이 넘도록 F코드가 완성되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굳은살이 배겨서 딱지가 생겼다. 칭찬이라도 받아볼 요량으로 카페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격려가 쏟아졌다. 특히 나를 자극한 것은 굳은살 위치가 아주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FM(Field Manual)이라는 것이다. 정석대로 제대로 한다는 것이다.


다시 2개월이 흘렀다. 딱지는 몇 겹 더 허물어졌다. 그래도 F코드가 잡히지 않았다. 화가 잔뜩 나서 그만 때려치운다는 심정으로 기타를 다락방에 쳐 넣었다.


며칠 지나자 슬그머니 화가 가라앉았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며시 다시 기타를 꺼냈다.


이번에 안 되면 진짜 때려치운다! 일주일을 맹연습했다.


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F 코드' 위치에 자석처럼 착 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오, 이런 내가 해냈다. 기타나 악기를 배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기본적으로 엄청난 연습량이 수반된다. 손가락 끝이 아리고 아려서 굳은살이 배기고 또 배겨서야 겨우 소리가 좀 난다. 넘기 힘들다는 F코드는 중년이 된 나의 경우에는 8개월 이상 노력해야 잡을 수 있었다.

힘들어서 '에잇!'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다 며칠 뒤에 다시 기타 코드를 잡아보면 신기하게도 내 몸이 그것을 기억하고 저절로 손가락이 기타 줄에 척 달라붙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실력의 향상을 몸으로 경험하는 순간이다.


 피겨선수 김연아, 기타리스트 함춘호 씨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그리고, 서예를 하는 분들도 계속 연습하지 않으면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가 없다.     


이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 신용협동조합 이사장님이 업무 조회시간에 직원들에게 질타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사장님은 당시 나이 50세에 아들 뻘인 20살 청년들과 경쟁해서 대학 수학 능력시험을 거쳐 부산 경성대학에 입학하신 열정을 가진 분이다.     


“여러분들은 과연 화이트칼라인가? 블루칼라인가? ”     


“늘 해오는 습관 그대로 모니터 앞에 앉아서 출금전표 인쇄하고, 통장 재발급하고, 돈 찾아주는 일, 기계로 할 수 있는 일, 그런 단순한 일들을 사람인 여러분들이 하고 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결과를 내지 못하면 어떻게 여러분들이 정신노동을 한다는 화이트 칼라인가? 그냥 몸으로 때우는 블루 칼라” 일 뿐이라고 질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화이트 칼라(White-Colla)’, ‘블루 칼라(Blue-collar)’이런 단어는 연세 드신 분의 단어 선택이긴 하다.


그러나 몸으로 직접 생산에 종사하든, 하얀 셔츠를 입고 펜을 굴리든, 습관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무의미한 노동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정신은 없어지고 몸뚱이만 남는다는 뜻이다.


자영업자가 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월말이 되면 이사장님의 그 표정, 그 말투가 또렷이 생각난다.     


스티븐 코비 등 세계적인 자기 계발의 구루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어 ‘자기 계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개인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다.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아들러 심리학’이라고도 한다.      


아들러에 의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이다. 각 개인은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서 열등감을 극복하고, 이를 통해 자기완성을 이뤄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생에 놓인 문제를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즉 자유도 행복도 ‘용기’의 문제이지 환경이나 능력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시미 이치로, 미움받을 용기 서문에서)


장사꾼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무력감이다. 장사꾼은 하루하루 매출이 곧 그날의 밥줄이다. 장사꾼에게 정체는 곧 퇴보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매출을 늘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 특별난 것이 없을까. 깜짝 놀랄만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우리 가게로 끌어들일 방법이 없겠는가 늘 고민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의 끝은 늘 의기소침해진다. 어디 그런 방법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럴 때 나는 우리 쌀가게를 홍보하는 전단지를 한 아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배달일만 하다 보면 배달지역 주변만 돌아다니기 쉬운데 일이 잘 안 되는 날 평소에 다니지 못하는 식당 지역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식당이 늘어선 골목을 열심히 돌다 보면 몸에 땀이 배기 시작한다. 곧 땀이 흥건해진다. 그러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것처럼 기분이 전환된다. 활기찬 육체는 용기백배한 정신을 불러온다. 나는 다시 용기로 충만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시미 이치로-





-by 하재윤-

글쓰기 프로젝트     


가제: 쌀장사 20년, 인생은 아름다워!

부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에게..     


들어가는 말     


목차          

제1장. 인생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            

제2장. 장사는 힘들어.                    

제3장. 세상이 만든 질서에서 벗어나기.          


제4장. 내 인생의 주인 되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뭘까?

직장인으로 사회운동가로..

■현재 글☞☞ 몸으로 때우는 사람.

생활의 달인은 무심한 듯 흐르는 세월의 훈장.

늘어나는 청년 창업.

현재의 자녀교육 맹목적 대학교육 필요한가.

싫어하지 않을 정도일 때 가능성이 있다.

나는 부자.

스톡데일의 역설.

나무는 한 겨울에도 자란다.

수주대토守株待兎.          


제5장. 인생은 한 방향으로 버티는 힘이다.

제6장. 인생,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에필로그,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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