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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재윤 Aug 06. 2022

생활의 달인은 세월의 훈장.

지혜로운 부자는 시간이 만든다.

글쓴이 주:  먹고살기 힘든 5, 60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던지는 삶과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입니다.

쌀장사로 20년을 살아온 제 경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있습니다.




생활의 달인은 세월의 훈장.

/지혜로운 부자는 시간이 만든다.


몸이 기억한다는 것은 숙련되어 가는 과정일 것이다. 요즘 TV에 나오는 생활의 달인처럼 말이다.


생활의 달인에 나왔던 출연자들이 처음부터 달인이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사람들이다. 직업인으로서 무한 반복되는 일을 수십 년간 해오면서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평생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손가락이 휜 사람도 있고, 등이 굽은 사람도 있다.


내가 가게를 해운대구 반여동에 두고 있을 때다. 가게 근처에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에 출현했던 보라 찐빵이라는 가게가 있었다.


오래된 낡은 간판만 봐도 달인의 포스가 물씬 풍긴다. 가게 정면 유리창으로 찐빵이랑 도너스가 진열되어있다. 찐빵은 4개씩 넣어서 1,000원에 팔린다. 탁구공보다 좀 크고 당구공보다 좀 작다.


나는 새벽 알람으로 출근 준비를 시작해서 04시 15분쯤에 보라 찐빵 앞을 통과한다. 유리창을 통해 찐빵을 빚고 있는 달인의 손이 보인다.


규칙적인 동작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손. 바로 달인의 손이다. 한겨울에는 전기난로의 빨간 불빛 아래로 보이는 손동작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저 손에 의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을 것인가? 달인의 손에서 지나온 고단한 삶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돈 세는 실력으로 생활의 달인에 출현할 뻔했던 적이 있다.


가끔 식당에서 현금을 주면 돈을 세어서 확인한다.

- 와! 쌀 사장, 돈 많이 만지나 보네? 돈 세는 폼이 확실히 다르네!

(이럴 때는 아무 말 없이 씩 웃어주는 것으로 끝내야 폼이 더 산다.)


식당 카운터 담당들이 의외로 돈 세는 법이 서툰 것을 보고 돈 세는 법을 좀 알려줄까 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올린 것이다. (참고☞돈 세는 법 유튜브 하재윤 영상, 2019년 3월 8일. https://youtu.be/xPNiiIMIb_8 )

내가 올린 영상이 그런대로 괜찮았나 보다. 생활의 달인에서 전화가 왔다. 돈 세는 법에 대한 영상을 보았는데 방송에 출현해줄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놀란 마음에 쑥스러워서 “아이고, 옛날 일입니다.” 하고 사양했다.


현직을 떠난 지 20여 년이 되고 나이 탓도 있지만, 현금 다발을 셀 일도 드물다. 사실 나도 이제는 정갈한 속도로 깔끔하게 100장을 끊기지 않고 다 넘기는 것이 힘들다. 옛날 실력이 안 나와서 사양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꽤나 자랑스러웠다.


우와 세상에. 방송국에서 전화가 오다니!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활의 달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포정이라는 사람일 것이다.

장자(莊子)의 양생주(養生主) 편에 포정해우(庖丁解牛)의 고사가 있다. 포(庖)는 부엌 또는 요리사라는 뜻이고 정(丁)은 백정이라는 뜻이니 대충 의미는 소를 잡아 뼈와 살을 분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이런 일을 일선 식당에서는 일본말로 ‘사바끼’라고 한다. 표준어로는 정형 작업이라고 한다.      


200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박영희의 소설 '사바끼'의 내용 중 일부이다. 소설 속 사바끼의 내용은 상당한 힘이 필요할 듯하다.


드디어 사바끼 칼을 녀석의 몸통에 깊게 박아 넣는다.

사악, 갈라지는 살의 소리가 일순 가슴팍을 서늘하게 지나간다. 탄력을 받은 칼의 속도는 빨라진다.

먼저 전지와 몸통, 후지로 크게 이분 채 분할을 한다. 목 부위의 선을 잡아 낸 다음에는 살 많은 앞다리를 걷어낸다. 뒷다리의 뼈를 발라낼 적에 우두둑, 고리 뼈를 빠개는 것은 나의 어깨 힘이다.

부분육의 해체는 지육 해체가 끝난 후 살과 뼈를 정확하게 분리하는 것이다. 출렁거리는 아래쪽 삼겹살 부위를 지나갈 때 칼은 잠깐 옆길을 따라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중략)

기술보다 힘을 필요로 하는 부위가 등심이다. 뼈의 힘도 과격하지만 뼈와 살을 가로막고 있는 근육과 막의 힘도 대단하다. 뼈 사이사이 숨겨 놓은 살들을 보물 찾기라도 하듯이 꼼꼼하게 찾아내어야 한다.     

 ☞원문 출처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673080

(일독 권유 박영희의 소설 ‘사바끼’는 사바끼하는 남자를 통해 예리하게 삶을 묘사해 내고 있습니다. 10분 내외. 짧지만 짜릿한 재미가 있습니다. 박영희 작가는 경주 출생으로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대충 이러한 과정으로 포정이 제나라의 문혜군(君)을 위해 소를 잡았다. 포정은 여인의 긴 머리칼을 타고 흐르는 빗물처럼 부드럽게 뼈와 살을 분리해 버린다. 칼을 쓰고 물리는 동작이 모두 박자에 맞아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귀신과 같은 포정의 솜씨에 흙더미가 무너지듯 살과 뼈가 분리되었다.


감탄한 문혜군이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포정이 말하였다.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도 여유가 있다.


이 말을 요새 말로 풀이하면 뼈와 살 사이에는 왕복 8차선 넓이의 틈이 있으니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칼을 다칠 염려가 없다는 뜻이다.


포정은 또 이른다.


지금까지 사천 마리 넘는 소를 잡았다. 칼은 19년이나 되었지만 처음 숫돌에 간 것처럼 예리하다. 처음 소를 잡았을 때는 소만 보여 손을 댈 수 없었으나, 3년이 지나자 어느새 소의 본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요즘 나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 보지는 않는다.      


아아, 이 얼마나 멋있는 달인의 포스인가.


자신이 목적하는 것은 도道이지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포정은 소를 잡는 백정에 불과하지만 이미 도의 경지에 올랐다. 도는 이미 평범한 일상에 흩어져 있다. 도에 이르는 문은 고상한 정신수양이나 학문을 통해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도는 지금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평범한 일상 그 한가운데에 있다.


무엇이 그들을 생활의 달인으로 만들었을까?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데 그 일부이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이 시에서 무엇을 보는가? 그렇다. 바로 시간이다.

태풍이 불고 천둥이 오고 벼락이 치고..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대추 한 알이 영글어 가는 시간이다. 대추 한 알이 영글어지듯 인생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활의 달인은 무심히 흐르는 세월의 훈장이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생활의 달인이다. 우리 개개인이 포정이다. 천직에 순응하면서 견디라. 생활의 달인이 진정한 부자다.


지혜로운 부자는 시간이 만든다.  



-by 하재윤-

글쓰기 프로젝트     


가제: 쌀장사 20년, 인생은 아름다워!

부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에게..     


들어가는 말     


목차          

제1장. 인생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            

제2장. 장사는 힘들어.                    

제3장. 세상이 만든 질서에서 벗어나기.          


제4장. 내 인생의 주인 되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뭘까?

직장인으로 사회운동가로..

몸으로 때우는 사람.

■현재 글☞☞ 생활의 달인은 세월의 훈장.

늘어나는 청년 창업.

현재의 자녀교육 맹목적 대학교육 필요한가.

싫어하지 않을 정도일 때 가능성이 있다.

나는 부자.

스톡데일의 역설.

나무는 한 겨울에도 자란다.

수주대토守株待兎.          


제5장. 인생은 한 방향으로 버티는 힘이다.

제6장. 인생,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에필로그,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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