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전문점? 청년 창업의 덫!
20여 년 전에는 정년퇴직을 하게 된 나이 지긋한 분들이 새로 식당을 여는 일이 제법 있었다. 평소 음식 솜씨 좀 있다는 소리를 들은 아주머니들이 남편을 부추겨 식당을 여는 경우다.
큰돈 들이지 않고 4인용 테이블 4~5개를 놓은 작은 규모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일상적으로 자주 먹게 되는 메뉴들로 구성된다. 홀 손님과 배달 손님을 같이 받는다. 업무 분할도 명쾌하다. 아주머니가 요리하고, 아저씨는 배달을 맡는다.
예전에는 자녀들이 다 성장한 뒤라 특별한 경험 없이도 꽤 쏠쏠한 재미를 볼 수가 있었다. 건강관리를 잘 해온 분들은 그런대로 노년에 새로 시작해볼 만한 일거리가 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 옛날 말이 되었다. 요즘에 옛날 분식점 분위기로 된장찌개를 만들어 팔겠다는 발상은 인생 말아먹는 지름길이다.
예전에는 2,30대 청년들이 식당을 창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식당을 창업하는 청년 사장들이 많아졌다. 특히 아주 나이가 어린 스물 후반이나 서른 초반의 청년창업이 많아졌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단순히 현장에서 뛰는 나의 느낌만이 아니다.
YTN 뉴스에서도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서 '20대 사장'이 2021년 보다 160% 넘게 증가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참고☞YTN 2022년 05년 22월 보도.
https://www.ytn.co.kr/_ln/0115_202205220632540001
요즘 TV에서는 요리하는 사람을 요리사라 하지 않고 ‘셰프(chef)’라 한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식당의 조리장(長)을 말하는 것 같다. 방송에서 한참 뜨거운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스타 셰프이면서 대형식당 대표인 최현석이나 이연복을 꿈꾸는 청년들의 꿈은 원대하고 야무지다.
청년들의 도전은 분명히 응원받을만하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다. TV 요리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돈을 많이 버는 인기 셰프들이 자주 출연하는 탓에 너도나도 셰프를 열망하는 청년들이 많아진 것은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요리만 하는 셰프와 식당 경영주는 엄연히 다르다.
배달을 하면서 청년 사장들의 식당에 자주 가 보게 된다. 유독 나이 어린 30대 초반이 많고, 20대 사장도 드물지 않다. 이것은 단순히 한순간 유행의 영향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본인의 적성이나 미래 진로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유행에 따른 결정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또 특기할 만한 것은 “개업 예정인데요.” 하면서 식자재 상담을 해오는 청년 창업의 대부분은 ‘배달 전문점’이라는 것이다. 홀이 없는 배달전문점은 창업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실내 인테리어 비용 등 회수할 수 없는 투자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여기다 인터넷이나 SNS 등 전산기기 관련 지식이 출중하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SNS의 특징은 홍보의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악플에도 쉽게 노출된다는 단점이 있다. 사장들만 인터넷 달인이겠는가. 손님들도 음식점 정보의 달인이다. 댓글로 사장을 조롱하기까지 하는 세상이다.
배달 플랫폼에 의존하기 때문에 당연히 끝없는 가격 경쟁에 시달린다. 한정된 시장에서 특성화된 나만의 아이템 없이 손님을 확보하려다 보니 우선 가격부터 낮추고 봐야하는 무한 가격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식당은 대부분 후미진 골목 2층에 있다. 내방하는 손님을 받을 필요가 없으니 다소 외지더라도 임대료가 싼 2층을 선호하는 것이다. 건물 자체가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된 곳이 아니다 보니 환기 시설 같은 청정, 위생, 방화에 취약하다. 손님들의 출입이 없다 보니 긴장된 위생 관념 자체가 없어 보이는 곳도 수두룩하다.
배달전문점이라는 장점을 살려 24시간 운영된다. 그런데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형태이다 보니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데, 야간에 일을 맡아볼 직원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대부분 사장의 지인, 특히 알고 지내는 학교 후배들이나 동생들을 야간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사회경험과 인맥 구성이 취약한 어린 사장들은 직원 고용에 매우 취약한 형태를 보인다. 젊음의 무기인 체력으로 버티지만 몇 주일 지나다 보면 이들의 눈은 퀭해지기 십상이다.
처음에는 일을 배운다는 자긍심 또는 아는 형님의 부탁으로 일을 맡아보지만 일에 대한 근본적인 사명감이 없으니 쉽게 그만둔다. 최악의 경우에는 새 직원이 구해질 때까지 며칠이고 식당 문을 닫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준비가 완전하지 않은 채 창업한 전형적인 사례이다.
새벽 배달을 자주 하는 나는 일부러 청년 사장들의 식당을 새벽 코스로 잡아 보기도 한다. 새벽에 어떻게 근무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밤샘 근무를 하고 새벽 6시 정도면 이들의 피로도는 절정에 달한다. 책상 위에 엎드린 채로 잠들어 있기도 한다.
나는 사장들에게 24시간제를 고집하지 말 것을 권한다. 야간 근무가 꼭 필요하다면 새벽 2시까지만 영업해도 충분하다. 인생은 그렇게 100미터 뜀박질 선수처럼 죽기 살기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새로 식당을 창업한 청년 사장님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 하는 일이 나의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 늘 살피라.
학교에서 공부만 했을 뿐 몸으로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우리 세대도 학력고사 성적에 따라 대학을 결정한 전형적인 세대가 아니었는가? 직접 몸으로 부딪혀 봐야 자신의 적성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적성을 살피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다면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만둘 일이 아니다. 지루하지만 재미있게 견디다 보면 남들만큼 살게 된다.
아무리 돈 버는 기술이 없어도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돈은 시간이 벌어준다. 그것이 시간이 주는 매력이다.
몸으로 때우는 사람.
생활의 달인은 세월의 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