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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재윤 Jan 01. 2023

달집 태우기 특명

하재윤의 회상

글쓴이 주: 다음 블로그가 종료되었습니다. 블로그에 있던 옛글 몇 편을 옮겨왔습니다. 

‘하재윤의 회상’이라는 부제로 몇 편 올려볼까 합니다.     


이번 글은 정월대보름 달집 태우기를 회상하며 쓴 글입니다.



달집 태우기 특명     

하재윤의 회상


겨울방학 동안 우리 동기들은 산으로 들로 뛰어다며 놀기에 바빴다. 긴긴 겨울 방학도 끝나고, 도회에 사는 삼촌들이 두둑이 주시는 세뱃돈에 재미 쏠쏠한 설날도 지나면 곧 3월이 되려 했다. 


3월이 되면 우리들은 한 학년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봄이 오고 나면 산으로 들로 뛰놀며 놀기란 방학 때만 훨씬 못하였다. 농번기철에는 어린 손이지만 농사일도 짬짬이 도와야 할 것이므로 3월이 온다는 것은 놀기 좋아하는 우리 동기들에게는 퍽 괴로운 일이었다.     


우리 동네 아제들에게도 전통적으로 한 해의 시간적 출발은 음력 설날이 있는 정월(正月)을 기준으로 삼았으나, 양력 3월쯤이 되어서야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므로 음력 정월은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가마니를 짜두거나 새끼를 꼬아서 농번기 철에 대비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새끼 꼬기는 골방이나 헛간에 실한 볏짚을 골라 쌓아 놓고 아제들이 겨울철 내도록 하는 아주 심심하고 재미없는 일이었다. 가마니 짜는 기계는 당시 농촌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직녀가 쓰는 베 짜는 기계를 연상하면 되겠는데 아름답고 가녀린 직녀의 것보다는 훨씬 더 큼지막하고 우악스럽게 생겨서 소리가 보통 요란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우리 농촌은 농번기, 농한기 구분이 없어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철 농번기 보다 더 바쁘겠지만 우리 아제들의 겨울은 어디까지나 여름 농사철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특히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이 되기까지는 명절기간 중이라 농사일을 하면 안 되었다.     


지금도 우리 아제들은 친구 분 되시는 늙수그레한 이웃 어르신들이 정월 대보름도 되기 전에 들일을 나가면      

-허, 대보름도 안 지나서 일하는 건 상놈이나 그렇지..     

하고 짐짓 애통해하는 양 농을 하신다.     


전통적으로 한 해의 농사일은 정월 대보름이 시작점이 되었다는 말이겠다.


우리 옆집의 방촌 아제만 해도 설날에 처가(방촌 아지매의 친정)에 가면 장인 장모의 대접 잘 받고 정월 대보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고 하니 셈을 해보면 얼추 한 십 여 일 정도를 처가에서 지내다 오는 셈이다.     


이런 의미로 전통적으로 양력 3월의 시작 전후쯤 되는 시기에 한 해 농사의 출발을 알리고,

새해의 모든 일이 비로소 움트는 시작임을 알리는 큰 세시풍속이 있으니 역시 정월대보름이 그것이다.     

우리 고향마을에서도 정월대보름이 되면 동네 행사로 들 한가운데에 큰 달집을 지었다.


우선 곧게 잘 자란 실한 대나무를 가져와 틀을 만들고, 적당한 소나무도 베어와 튼튼하게 기둥을 잡았다.      

달집은 크고 우람할수록 좋았다.     


이때 달이 떠오를 방향으로 큰 문을 만들어 달빛이 잘 들게 해 두었다. 오전부터 시작해서 오후 내도록 달집을 짓느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동원되었다.달집 짓는 일은 우리 동기보다 몇 살 더 먹은 형들이 거들었는데 우리는 그냥 좋아서 뛰어다니기만 하였다.     


달이 떠오르면 마을에서 제일 연장자로 수염이 허연 덕제네 할배가     


-자 이제 불을 붙이거라.. 하면     


오후 내도록 달집을 지을 동안 한 잔씩들 돌려 벌써 얼큰해진 아제들이 달집에 불을 붙였다.     


그러면 징, 꽹과리, 장구들이 동시에 한바탕 신났다. 


우리도 어른들을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고 무언가 소원을 빌면서 엄숙한 기분이 되기도 하였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쯤부터 졸업을 할 시기까지 들판을 마주 보고 있는 마을과 묘한 경쟁이 붙었다. 개울 하나를 마주 보는 동네인지라 자연 어느 동네가 달집을 더 크게 짓는가가 의식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무척 장난 끼 많은 누군가가 달도 떠오르기 전에 앞 동네 사람들이 애써 지어놓은 달집에 불을 질러버리고 온 것이었다.     

동네끼리는 서로 상대편이 먼저 그랬다고 하는데 우리 동기들은 우리 동네 영덕이 형이 앞 동네에 가서 놀던 중에 동네사람들이 한 눈 파는 사이 불을 질러버린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잇몸을 다 드러내 보이도록 순한 웃음을 짓는 영덕이 형은 지금 중장비 계통 일을 하면서 아들만 셋을 낳고 잘 살고 있다.     


그 이후로 한 몇 년간 대보름 달집을 짓는 날이면 몇 살 위 형들은 특공대를 조직하여 들판을 휘돌아 앞 동네 뒤편 산으로 숨어 들어가 오후 내도록 산속에 숨어 있곤 했다. 그러다 해거름에 앞 동네 달집에서 연기가 나면 우리 동기들은 형들의 작전이 성공했나 보다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마을로 돌아온 형들이 앞 동네 사람들 틈에 끼어 덩실덩실 춤추고 놀다가 잠깐 동안에 번개같이 달려들어 달집에 불을 놓았노라 각자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는데, 어느 것이 진짜인지 우리 동기들이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언젠가 형들만큼 크면 나도 특공대에 들어가야지 다짐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중학에를 갔는데 이후로는 달집 태우기 특공대에 대해서 차츰 잊어갔다. 앞 동네 달집에 불 질러 놓기 장난질에서 어느 동네가 이겼는지, 머리가 굵어져 가는 우리 동기들은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고, 앞 동네에서 혹시 특공대를 조직하여 우리 동네로 오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 염려스럽지도 않았다.     


그 시절로 돌아가면 특공대장이던 영덕이 형부터 꼭 만나야겠다.     


2007년 7월 18일 목요일 설랑 하재윤 배상     


2023년 1월 1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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