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퀘르뱅 증후군
온몸이 아팠지만, 가장 먼저 심하게 아팠던 건 손목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양쪽 손목이 쑤셨다. 망치로 세게 두드려 맞은 듯 욱신거렸고, 두꺼운 천으로 손목을 꽉 조여 놓은 것처럼 아팠다. ‘뼈가 시리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심할 때는 전기가 통하듯 찌릿했다.
부랴부랴 산후 손목 보호대, 손목 마사지기, 심지어 손목 파라핀 기계까지 검색했다. 같은 조리원 동기가 “병원부터 가보라”고 했지만 며칠을 망설였다. ‘다들 출산하고 손목 아프다던데, 잠깐 이러다 말겠지….’ 그러나 통증은 줄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물 한 잔 마시려고 컵을 드는 것도 버거워졌다. 나는 내 몸이 병들어가는 신호를 보내는 줄도 모르고, 치료를 미루고 있었다.
결국 용기 내어 정형외과에 갔다. X-ray를 찍고, 원장님이 손목 이곳저곳을 눌러보더니 “드퀘르뱅 증후군”이라고 했다. 난생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낯선 진단명이 불안을 키웠고, 공포로 번졌다. 그날 이후 나는 병원의 단골이 되었다. 스테로이드 주사, 파라핀 치료, 체외충격파 치료…. 아기를 주로 왼팔로 안아 올렸던 탓인지 왼쪽 손목이 특히 나빴다. 처방받은 손목 보호대를 끼고 지냈다.
돌이켜보면 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손목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이유는 ‘손유축(손으로 모유 유축)’이었다. 나는 모유수유 욕심이 컸다. 원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유선과 유륜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고 모유량은 늘 모자랐다. (아마 출산 직후 병실에서 유축기를 과하게 사용하며 유륜·유선을 자극한 게 화근이었을지도 모른다.) ‘통곡 마사지’까지 받아봤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유축기를 가슴에 대기만 해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결국 손유축을 택했다. 그 선택이 손목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 될 줄은 몰랐다. 손유축은 양손가락과 손목에 힘을 강하게 주기 때문에 관절에 무리가 크다. 손유축 후에는 남편과 손을 잡기만 해도, 손깍지를 끼기만 해도 아파서 엉엉 울었다. 억지로 손유축을 1시간이나 해도 모유는 야속하게도 20ml 남짓, 많이 나와야 30ml였다. 그래도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싶었고, 내 통증쯤은 견딜 만하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큰 착각이었다.
내가 머문 조리원은 모유수유 교육을 적극적으로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분위기상 모유수유를 권장했지만, 원장님은 내 유륜·유선 상태와 손가락·손목을 보시고는 “당장 중단하라”고 하셨다. 산모가 회복해야 하는 시기인데 망가지면서까지 수유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 ‘조리원에 있는 동안까지만 손유축으로 버티고, 퇴소 후엔 분유로 전환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잘못된 결정이었다. 모유수유를 중단하기로 했다면 손유축도 즉시 멈췄어야 했다. 3주 내내 손유축을 이어간 끝에 손가락과 손목 관절은 완전히 지쳐버렸다. 회복하러 가는 조리원에서, 입소 전보다 더 망가진 몸으로 퇴소하게 되었다.
집에 와서도 손가락과 손목은 나아질 틈이 없었다. 이제는 조리원 간호사 선생님들이 없으니 육아는 오롯이 나와 남편의 몫이었다. 아기를 자주 안아야 했고, 집안일도 해야 했다. 손가락과 손목은 24시간 풀가동이었다.
몸이 아프니 서러웠다. 아이를 안지 않을 수도 없고, 하루 종일 누워 있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사람들이 왜 “출산 후 손목·허리가 그렇게 아프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일상이 멈출 만큼 아픈 통증이었다.
임신 전, 나는 매일 달리고 등산을 다니던 사람이었다. 임신 중에도 37주까지 수영하고 걷기 운동을 꾸준히 했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출산 후 건강은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손목, 허리, 무릎, 발목…. 온몸이 종합병원이 된 것 같았다. 육아·집안일·재테크 공부, 셋을 병행하려던 나는 어리석었다. 졸음을 참아가며 공부했지만, 그 시간에 잠을 잤어야 했다. 출산 3개월 무렵부터 '남은 육아휴직 동안만큼은 내 건강을 회복하자’고 다짐했지만, 매일 치이는 육아와 집안일 사이에서 정작 나를 돌보는 일은 계속 뒤로 밀렸다.
손목 통증은, 내 몸이 보낸 첫 번째 신호였다. “좀 쉬어가도 괜찮다”고, “지금은 회복이 먼저”라고, 내 몸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이제야 그 말을 듣는다. 그리고 기록한다. 내 몸의 언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