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신호를 놓치다
돌이켜보면 출산 후 병원에서 보낸 6박 7일 동안은 나름 회복이 잘 되었던 것 같다. (제왕절개 수술을 하면 보통 그 정도 입원한다.) 출산 다음 날부터 혼자 걸을 수 있었고, 남편의 도움 없이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었다. 물론 훗배앓이와 젖몸살, 퉁퉁 부은 몸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혼자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희망이었다.
그때는 시간이 지나면 몸이 자연스럽게 회복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회복은 없었다. 내 몸은 내가 돌봐야 했다. 출산한 지 1년이 다 되었지만, 여전히 양 손목은 수시로 아프고 허리디스크와 협착증으로 인한 통증, 방사통 때문에 지금도 보호대와 방석 없이는 일상을 버티기 어렵다.
평소 나는 또래 여성들보다 건강했다. 그래서 출산 후에도 예전처럼 행동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필 산후조리원에 있던 시기가 새 집 입주 시기와 겹치며, 그 믿음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남편은 일이 바빠 연차를 자주 내지 못했고, 결국 자잘한 집안일은 대부분 내가 맡았다. 안방 콘센트 증설, 주방 하부장 식기세척기 설치, 출생신고, 이삿짐 포장까지. 기사님을 만나러 나가고, 서류를 제출하러 외출하고, 늦은 밤 이삿짐을 챙기러 다니던 나. 산후조리원에 누워 있어도 모자랄 판에 하루가 멀다 하고 밖을 돌아다녔다. 택시를 타려다 훗배앓이 통증으로 길에서 넘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삿짐을 직접 쌌던 건 정말 무모한 일이었다. 허리를 숙였다가, 쪼그려 앉았다가, 짐을 들었다가… 그날 밤, 결국 몸살로 타이레놀을 다섯 알이나 먹고 잠들었다. 조리원 원장님도 “이렇게 외출 자주 하는 산모는 처음 본다”며 제발 좀 쉬라고, 집안일은 잠시 잊으라고 했다.
친정 아버지는 지금도 종종 말씀하신다. “옛날엔 삼칠일 동안은 꼼짝도 안 했다.” 아기를 낳은 여자가 최소 스물한 날 동안은 방 안에서 회복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절 어른들의 지혜를 거꾸로 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원래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쉬는 건 게으름이고, 휴식은 사치라고 여겼다. 부동산 강의가 듣고 싶었고, 이사 온 집을 정리하고 싶었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하고 싶음’이 결국 내 몸을 더 망가뜨렸다. (1년 전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제발 누워 있어. 조금만 쉬어. 그게 진짜 회복이야.”) 산후도우미조차 나를 말리며 “제발 방에 들어가 쉬라”고 했지만, 나는 그 방에서 뱃살을 빼겠다며 허리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운동이 내 허리디스크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갓난아기를 안고 돌보는 일 자체가 이미 큰 노동이었다. 아기를 안으면 배는 앞으로 밀리고, 허리는 꺾인다. 손목은 쑤시고, 설거지를 하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시큰거렸다. 맨발로 서 있으면 발이 차가웠고, 양반다리로 오래 앉아 있으면 무릎과 발목까지 아팠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하루하루 병들어가고 있었다.
몸은 계속 신호를 보냈지만, 나는 그 신호를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