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우리는 거대한 사회 구조가 어떻게 개인의 윤리적 책임을 희석시키고 마비시키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는 또 다른 종류의 강력한 구조가 등장했다. 바로 '정체성'이라는 이름의 구조다. 역사적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구조는,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종류의 분리와 갈등을 낳고 있다. 정체성 정치는 과연 우리를 해방시키는가, 아니면 새로운 우리에 가두는가?
【제1부 - 제2장. 사회라는 거대한 집】
열 번째 글: 정체성 정치의 의의와 모순, 그리고 그 너머
정체성 정치는 20세기 후반부터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종교 등. 역사 속에서 이름 불리지 못했던 이들이 자신의 깃발을 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도 여기 있다"고. 이 외침은 세상을 바꾸었다.
정체성 정치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쥐여준 것이다. 정체성 정치는 특정 집단이 역사적으로 겪어온 차별과 불평등을 공론화하고,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도록 했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의 권리를, 흑인 인권 운동은 인종 차별을, LGBTQ+ 운동은 성적 지향에 대한 낡은 인식을 깨부쉈다. 이들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권리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정체성 정치가 이룬 위대한 성취다.
그러나 모든 강력한 무기에는 역설적인 반동이 따르는 법이다. 정체성 정치의 가장 큰 모순은, '차별을 없애기 위해, 차이를 더 강조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있다. '우리는 그들과 동등하다'고 외치기 위해, 먼저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경계선을 긋는다. 이는 '우리'라는 집단적 인식을 견고하게 만들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적 통합보다는 구획화와 경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여성 전용 공간, 흑인 전용 행사, LGBTQ+ 전용 커뮤니티 등은 소속 집단의 안전과 연대를 위한 필수적인 장치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집단과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별을 없애려는 숭고한 싸움이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이 아이러니. 이것이 정체성 정치가 안고 있는, 비극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자기모순이다.
그리고, 한 번 형성된 정체성은 자연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 모순은 정치적, 법적 권리 신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는 '정체성' 자체를 유지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투쟁의 깃발이, 어느새부터인가 소속감의 담요이자, 구획의 철조망이 되는 것이다. 정치적 자산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지면, 그 집단은 오히려 자신들의 '다름'을 강조하며 지속적인 권리나 보호를 요구하게 된다. 이는 사회적 통합보다는 분리를 강화하며, '차별 없는 사회'라는 궁극적 목표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이러한 분리가 장기화될 경우, '백래시(Backlash)', 혹은 '역차별'이라는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낳기도 한다. 이렇듯 한번 형성된 구조는, 어지간해서는 스스로 사라지지 않고 더욱 더 견고해지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렇다면, 정체성 정치는 실패한 프로젝트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체성 정치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성공적인 정치적 수단 중 하나였다. 그리고, 정체성 정치가 사라질 일은 앞으로도 한동안, 높은 가능성으로 영원히 없을 것이다. 정체성 정치는 소외된 사람들이, 약자의 이름으로 거대한 깃발을 올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마주한 과제는, 이 수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정체성 정치의 진정한 완성을 위해서는, '우리'의 경계를 허물고, 다른 정체성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다름'을 외치기 위해 세웠던 깃발의 힘으로, 이제는 '같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차이를 존중받기 위해 싸웠던 것처럼, 이제는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것. 나의 정체성이 영구적인 약자의 정체성이 아니라, 통합과 연결의 정체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정체성 정치가 자신의 모순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회적 통합이라는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