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씁쓸한 현실이지만, 앞선 글을 통해 기득권이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지, 그 견고한 구조의 이면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 '기득권 유지'의 기술이 하나의 '정치 예술'의 경지로까지 발전한 곳이 있다면 어떨까? 이제 우리는 바다 건너 일본의 역사를 통해, 권력은 바뀌어도 체제는 바뀌지 않는, '덧씌우기 정치'라는 기묘하고도 정교한 시스템의 비밀을 파헤쳐보고자 한다.
【제1부 - 제2장. 사회라는 거대한 집】
여섯 번째 글: 지워내지 않는 권위, 그 위에 덧칠한 권력
우리는 역사를 왜 연구하고 공부할까?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되새기기 위해서?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는 정치와 권력, 그리고 체제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기능하며 성장하고 쇠락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이는 자국의 역사가 아닌, 타국의 역사일수록 더욱 해당되는 말이다. 자국의 역사는 그 기록 자체만으로도 자긍심과 애국심의 원천이지만, 타국의 역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일본 정치의 역사는 "누가 정치를 했는가"를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었는가"를 묻는 것도 매우 매력적이다. 그 이유는 일본 정치가 항상 형식과 실질 사이의 긴장 위에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에서도 물론 이런 현상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일본만큼 그런 경향이 짙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국가는 흔하지 않다. 일본 헤이안 시대의 후지와라 이래, 천황이라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는 현실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고, 대신 섭정, 관백, 쇼군, 인세이, 오고쇼 같은 천황을 대리하는 실권자들이 제도화되었다. 이들은 단순한 보좌자나 대체자가 아닌, 정치 권력의 실질적 주체였다.
이것은 단지 왕권 불가침성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은 지리적, 제도적, 문화적 요인들이 결합되어 권력과 책임, 정통성과 실권, 체제와 변화 사이를 독특하게 연결하는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덧씌우기 정치'이다.
천황이라는 움직이지 않는 신성
일본의 정치 모델의 정교화는 '천황은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금기에서 시작된다. 천황은 신화적 정통성의 근원이지만, 정치란, 직접 개입하는 순간 그 신성함에 금이 가는 구정물이다. 신화적 정통성과 정치적 실권.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움직이는 순간 불안정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실권자는 신성불가침한 천황의 이름을 빌리되, 천황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등장했다. 셋칸, 관백, 쇼군, 오고쇼, 인세이… 모두는 이 ‘움직이지 않는 신성함’을 대신해 정치의 현실을 수행한 대역배우들이자, 진정한 권력자였다.
천황은 신이다. 책임과 권력의 제도적 분리
일본의 정치 구조는 실질 권력을 행사하는 자가 공식 책임자로서 전면에 나서는 걸 극도로 회피하는 시스템이다. 정치란 곧 갈등이자 리스크이므로, 책임은 상징에게, 권력은 실세에게 분리하여 배분함으로써 안정성을 확보한다. 이런 책임 분리는 단순한 정치 기교가 아니라, 정치 철학의 중심이자 국가의 생존 전략이었다. 일본이라는 고립된 지정학적 상황에서, 그 상징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이것은 일본이라는 국체 자체가 천황과 동일시되는 일본 특유의 정치적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식 봉건제의 '느슨한 피라미드' 구조
서구의 봉건제는 쌍무적 계약과 명확한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한다. 서구의 봉건제에서 영주와 군주는 서로 계약을 가진, 그러나 한쪽이 조금 더 위에 있는 그런 관계이다. 그러나 일본의 봉건제는 다르다. 천황은 의무를 지는 존재가 아닌, 말 그대로 '천손(天孫)'이다. 일본의 봉건제는 천황이라는 신성 아래에서 혈연, 혼인, 의례, 지역적 독립성 등으로 얽힌 느슨한 연합체에 가까웠다. 이 구조는 권력이 분산되어 있음에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그 결과 중앙과 지방이 별개로 작동하면서도 '천황이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한 안정된 구심점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유연성은 섭정 정치라는 실질 권력자의 제도화를 이질적인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혼네와 타테마에: 권력 연기의 제도화
한편 일본 사회에 내재된 혼네(本音, 본심)와 타테마에(建前, 겉치레)는 어떨까? 이 문화는 정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했다. 실권자는 겉으로는 복종하지만, 실제로는 지시한다. 모두가 실체를 알지만, 말로는 부정한다. 이런 문화는 섭정 정치를 '위선'이 아닌 '미덕'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자신의 혼네를 숨기고 다테마에를 드러내는 것. 그리고 이것이 정치의 연극화가 시스템 수준으로 제도화될 수 있었던 문화적 토양이다.
'체제 붕괴'가 아닌 '체제 위 덧씌우기'의 정치 전략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지리적 특성과 권력 구조의 '결속성'이다. 일본은 섬나라로서 외침이 적고 내부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강했으며, 권력층끼리도 혈연과 혼인으로 얽힌 '정치적 촘촘함'을 유지했다. 그 결과, 권력투쟁은 군사력 대결보다 영향력 대결로 귀결되었고, 설령 권력투쟁에서 패하더라도 기존 체제를 갈아엎기보단 그 위에 새로운 실권 구조를 덧붙이는 방식이 선호되었다. 즉, 일본 정치의 역사는 '혁명'이 아닌 '덧씌우기'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후지와라는 천황제 위에 셋칸을 얹었고, 무사는 셋칸 위에 쇼군을 얹었으며, 쇼군은 은퇴 후 다시 오고쇼를 얹었고, 천황은 인세이라는 방법으로 '내가 나를 섭정함'을 시도했다. 권력은 바뀌되, 체제는 그대로. 이 모습은 현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민당이라는 거대 일당의 장기 집권을 불러온 55년 체제. 자민당이라는 정당은 유지되는 한편, 그 안에서의 집권자를 선출하는 '권위'는 남기고 '권력'은 끊임없이 이전되는 형식. 그리고 현대에도 남은 후원회, 지역구 세습 등, 봉건제의 간판을 그대로 계승한, 그리고 그 계승자가 다이묘에서 지역구 의원으로만 바뀐 지금의 일본 민주주의. 이것은 일본 정치가 체제를 파괴하지 않고, 끝없이 재포장하는 이유이자 동시에 그 결과이다.
섭정은 단순한 '정권 대리'가 아니다. 그것은 일본 정치의 작동 방식 그 자체다.
일본의 섭정 정치란, 천황이라는 절대적 상징을 직접 오염시키지 않으면서, 실질 정치 운영을 가능하게 만들고, 권력 구조의 격렬한 변화를 부드럽게 덧씌워 처리하며, 정치적 책임은 남에게, 권력은 자신에게 남기는 놀라운 정치적 발명품이다. 물론 정치 권력이 이렇게 작동하는 것이 정의로운지, 정의롭지 못한 것인지는 말을 아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것은 분명 탐구할 가치가 있는 일본만의 특별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외적인 제도'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치적인 특징에 가깝다, '왜 일본은 정권을 바꾸지 않고, 정권을 조종했는가', '그리고 왜 일본은 지금도 독특한 방식의 정치구조가 형성되어있는가?'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바로 이 '덧씌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