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無敵) LG, 그리고 주적(主敵) 미라클 두산

적이 있어야만 무적이 되는 아이러니

by 피디아

이렇게, 바다 건너의 사례를 통해서 '덧씌우기'라는, 일본 정치의 복잡하고도 엄숙한 예술에 가까운 기술을 보았다. 이제 분위기를 조금 바꿔서, 땀과 환호성이 가득한 야구장으로 가보자. 놀랍게도, 그라운드 위에서도 권력을 만드는 가장 원초적인 기술이 매일같이 펼쳐지고 있다.


【제1부 - 제2장. 사회라는 거대한 집】

열세 번째 글: 무적(無敵) LG, 그리고 주적(主敵) 미라클 두산―적이 있어야만 무적이 되는 아이러니


LG 트윈스의 팬이라면 알 것이다. 라이벌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우리는 특별한 종교 의식을 치른다. 우리의 심장은 평소보다 두 배는 빨리 뛰고, 상대 팀의 유니폼은 눈에 거슬리며, 우리의 목소리는 한 명의 거대한 확성기처럼 잠실구장을 뒤흔든다―참고로 나는 임찬규를 좋아한다. 포스트시즌의 감독이 보여주는 투지는 단순한 경기 전략 이상이다. 이것은 '우리 편'을 하나로 묶는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기술, 바로 '적 만들기'이다.


야구장 안의 이 뜨거운 전략은 사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 정치 상품이다. 국가 단위에서는 국수주의가, 정당 단위에서는 지역감정 조장이, 회사에서는 '옆 부서는 회의에서 이런 칭찬을 받았는데 우리 부서는 무시당한다'는 식의 팀 간 경쟁 부추기기가 모두 이 논리를 따른다. 핵심은 간단하다. "적을 설정하라, 내부는 뭉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스포츠는 원래 상대 팀을 적으로 설정하지 않나요?' 어쩌면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순진한 말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잠실시리즈의 티켓은 훨씬 빨리 매진된다. 축구에서의 더비 매치(엘 클라시코 같은)는 최고의 시청률을 담보하는 상품이다. 언론은 조회수를 유도하기 위해 온갖 억지 라이벌리(엘-롯라시코 같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팀이 부진할때, 분위기 쇄신 용으로 자주 등장하는 수단 중의 하나는 위협구와 벤치클리어링이다. 위협구가 등장한 뒤, 놀라운 역전승을 일구어내거나 장기간 침체에 빠진 팀이 반등의 기회를 맞기도 한다. 그 경우, 이러한 사고는 사소한 해프닝 혹은 강력한 리더십의 도구로 재조명받는다.


실제로 이 방식은 단기적으로 놀라운 결속력을 만들어낸다. 외부의 적은 내부의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리더에게는 '우리를 지켜주는 투사'라는 멋진 역할을 부여한다. 그 전까지 우리 팀 투수의 볼질을 욕하던 팬들도,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면 상대팀 타자의 과민반응을 비난하게 된다. 그렇게 팀은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 투쟁심은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매우 효과적이다. 어떻게해서든, 이 경기를 반드시 목숨걸고 이겨야할 투지를 심어준다.


하지만 이 전략은, 지속적으로 '위협'이라는 땔감을 공급해야만 유지되는, 매우 피곤한 방식이다. 선수들은 감정 소모에 지치고, 팬들은 적대적, 냉소적으로 변하며, 다른 팀과의 동업자 정신은 사라진다. 야구에서는 이것이 한 시즌의 실패로 끝나지만―물론 인터넷 게시판은 해체하라고 난리가 날 것이다―사회에서는 고립된 양극화, 조직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불신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소방관'과, 불을 지른 뒤 가장 먼저 달려오는 '방화범'을 구분해야 한다. 진짜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리더십'과,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상대를 굳이 '적으로 설정하는 리더십'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비슷해서, 우리는 종종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리더가 보호자인지, 선동자인지—이 질문은 결국, 그 리더가 적을 어떻게 정의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적을 설정하는 리더는, 실제로는 필요하지 않은 적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위기 상황을 연출하고, 구성원을 그 공포에 노출시킨 뒤, 스스로를 '해결사'로 등장시킨다. 이 방식은 리더의 권력 유지에는 탁월하지만, 구성원의 안전과 자율성에는 치명적이다. 반면, 보호하는 리더십은 적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리더십은 연기하지 않는다. 진짜 위협이 닥쳤을 때, 비로소 존재한다. 구성원에게는 불안 대신 신뢰를, 적대 대신 연대를 제공한다.


결국, '적 만들기' 전략은 불안 위에 세운 리더십이다. 불안은 통제할 수 있을 때만 유용하다. 그 경계가 무너지면, 감정으로 묶인 조직은 감정으로 무너진다.


야구장에서 외치는 "무적 LG! 두산은 밟아!"라는 구호 속에는 사실, 인간 심리의 오래된 매커니즘이 숨어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누군가를 적대함으로써 소속감을 느껴왔다. 그러나 진짜 성숙한 조직은, 불필요하게 타인을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굴러가지 않는다. 적이 필요없는 리더십.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다음 시즌 우리 팀에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잠실의 진정한 주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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