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선 2장에서, 인간이 모여 만든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의 모순과 딜레마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예측 가능하게끔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왔을까? 이제 우리는 잠시 현실의 문제를 떠나, 인류가 세상을 파악해 온 가장 오래된 방법인 '철학'과, 뉴턴 이래로 철학의 자리를 꿰찬 '과학'의 관계를―나도 두 분야에 대해서 깊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직관적으로 비유해보기 위해, 사이버 전장의 문법을 빌려보고자 한다.
【제1부 - 제3장. 앎과 믿음의 경계에서】
열네 번째 글: 철학과 과학, 사령관과 관측선의 관계
철학과 과학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은 많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주의: 어떤 권위있는 전문가도 아니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과학: 지도에 깔린 전장의 안개를 한 걸음씩 걷어내는 옵저버(관측선).
철학: 그 옵저버의 시야에 의존하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니맵을 보며 "저기 멀티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예측하며 나의 전략을 수립하는 사령관.
과학은 경험과 관측을 통해 '확인된 사실'만을 지도에 표시한다. 느리지만, 확실하다. 반면, 철학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어두운 영역을 보며, 전체 그림을 상상하고,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한다. 철학은 도구 없이도 전체 맵을 보려는 인간의 본능이자, 위험을 감수하는 감각이다.
이 비유는 철학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고대 철학: "우주는 물에서 시작됐을까? 불에서 시작됐을까? 아니면... 원자?"
이것은 게임 시작 1분 만에, 정찰도 없이 상대의 위치를 예측하는 것과 같다. 대담하지만, 틀릴 확률이 높다. 판단의 근거는 지금까지의 느낌, 내가 이 전장에 대해 알고있는 정보, 그리고 상대의 정찰이 어떤 방향에서 언제쯤 왔는지 같은 막연하지만 그럴듯한 정황이다. 엄격한 실증적 근거에 기반한 탐구보다는 자신의 직관과 느낌, 그리고 일종의 기대에 근거한, 그렇다고 전혀 얼토당토 않은 주장은 아닌. 인간이라는 게이머가 전장에서 수행한 최초의 탐구이다.
근대 철학: "상대의 전략을 어떻게 예측해야 하는가? 일꾼을 보내서 얻은 정찰(경험)을 믿을 것인가, 나의 오랜 게임 지식과 직관적 감각(이성)을 믿을 것인가?" 데카르트와 베이컨의 치열한 논쟁은, 바로 이 예측의 '방법론'을 두고 벌어진 전략의 싸움이었다. 내가 수집한 정보를 믿을 수 있을까? 나의 직관이나 게임지식으로는 저 정보로는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데?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빌드나 정찰하지 못한 전략이 있는 것은 아닐까? 본격적으로 상대 플레이어(세계)와의 상호작용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과학적 방법론의 등장: 뉴턴이 수학과 물리학으로 고전역학적 세계관을 정립한 이래, 기존 철학의 분과로 여겨져왔던 '과학철학'은 독립된 학문분야인 '과학'으로 재편되었다.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날개를 단 인류의 문명은, 마치 스캐너를 설치한 테란처럼, 옵저버를 생산하게 된 프로토스처럼 기존의 방법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세계를 탐구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과학적 도구(정찰 수단)를 능숙하게 활용할수록, 막연한 추측이 아닌 확실한 정보에 기반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사령관의 역할은 상대방의 대전략을 추측하는 단계에서, 어디를 얼마나 자주 정찰할지(과학철학), 정찰한 내용을 기반으로 어떻게 전술을 수립할지(과학윤리)의 단계로 점차 무게중심을 옮기게 된다.
현대 철학: 이제 지도에는 어두운 영역보다 밝은 영역이 많아졌다. 과학이라는 옵저버가 쉴 새 없이 정찰한 덕분이다. 그런데 사령관(철학자)들은 이제 새로운 고민에 빠진다. "상대의 유닛과 건물은 이제 다 보인다. 그런데 대체 상대방의 진짜 의도는 뭐지? 애초에 게임의 승리 조건이 뭐였더라? 혹시, 우리 지금 길 잃은 거 아닌가? 전략을 되돌아봐야하나?" 정보, 의미, 존재에 대한 현대 철학의 메타적인 질문들은, 바로 이 전략을 세우거나 검토하기 위한 질문들이다.
과학은 계속해서 센서를 붙여 전장의 가시성을 확보한다. 철학은 그 밝혀진 지도를 보며 인간의 대전략을 검토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쪽에 무언가 더 찾아볼 여지가 있다"고 말하며 아직 안 밝혀진 지점을 찍는다. 그리고, 상대의 새로운 건물이 나타나면, 다시 상대방의 전략과 나의 대응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여기서 철학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의의가 드러난다. "철학은 다시 철학할 대상을 찾아낸다."
이것이 바로 철학의 존재 이유다. 과학이 유전자를 발견하자, 철학은 유전자 편집의 윤리를 질문했다. 과학이 인공지능을 만들자, 철학은 기계의 의식을 질문했다. 이 질문은 단순히 과학에 윤리적 족쇄를 묶으려는 고리타분한 질문이 아니다. '생명'과 '의식', '자아'와 '앎'의 정의를 묻는, 과학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주문이다. 유전자 편집의 윤리를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생명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현상되는지 연구할 수 있으며, 기계의 의식 구조를 탐구하는 것은 진정한 '지능'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 강인공지능이 어떻게 가능할지 탐구하는 것과 연결되어있다. 과학(옵저버)이 새로운 땅을 밝히는 순간, 사령관(철학)에게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철학은 과학의 성과를 먹고 자라며, 과학이 가야 할 다음 길을 가리킨다.
그래서 철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철학은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지도 위의 영역을 해명하지만, 철학은 그 지도 바깥을 상상하고 지시한다. 철학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지도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이 철학의 '철'이 '밝을 철(哲)'인 이유이다. 과학은 탐구와 증거로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고, 철학은 직관과 오성으로 지도를 밝히고, 전장을 넓힌다. 어느 쪽도 혼자서는 성립할 수 없다. 사이오닉 스톰은 혼자 떨어지지 않는다. 사령관의 전략으로, 옵저버가 밝혀준 자리 위에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