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하나의 종교적 텍스트를 깊이 읽어내는 것은, 단순히 옛이야기를 아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상징과 윤리적 요구를 오늘 우리의 삶으로 가져오는 행위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종교적'이라고 분류한 그 텍스트 자체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이름표가 잘못 붙여진 것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흔히 성경은 '신앙'의 책, 역사는 '사실'의 책이라고 믿는다. 과연 그 믿음은 타당할까?
【제1부 - 제3장. 앎과 믿음의 경계에서】
다섯 번째 글: '신비'와 '사실'의 이름표
"성경은 신앙의 상징이다.""헤로도토스는 역사의 아버지다."
이 문장은 대부분의 현대인이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역사적 구도다. 성경은 믿음의 책이고, 헤로도토스는 이성의 책이라고. 그러나 두 텍스트의 내용을 하나씩 꺼내 검토해보면, 이 구도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의 말씀이 담겼다는 성경은 때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역사서의 면모를 품고 있었고,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글은 신화와 전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성경: 신의 이름을 걷어낸 곳에 남는 역사
구약성경은 창세기의 신화적 세계관 이후, 빠르게 정치와 전쟁, 멸망과 회복의 역사를 그려낸다. 열왕기와 역대기,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유다 왕국의 왕들, 전쟁, 외세의 침공, 성전 파괴, 포로 귀환 등을 시기별로 기록한다. 그 연대는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제국의 왕조 기록과 상당히 일치하며, 고고학과 제국 비문으로도 교차 검증되고 있다. 신의 이름을 잠시 걷어내고 읽으면, 구약의 상당 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정밀한 근동의 정치사다. 성경은 신의 계시를 담았다는 이유로 ‘비역사적’이라 치부되어왔지만, 오히려 그 신의 이름 아래 덮여 있던 역사적 서술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헤로도토스: 역사라는 이름을 붙인 이야기꾼
반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역사의 아버지”라는 칭호와 함께, 고대 세계 최초의 체계적 역사기술로 추앙받아왔다. 그러나 그의 저술 방법에서 많은 부분은 여행 중 들은 이야기, 민속, 전설, 루머를 모으고, 거기에 자신의 해석을 더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듣기로는...”, “다른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라고 말하며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들을 나란히 배치하고, 때로는 “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덧붙인다. 인도에서는 개미가 금을 파고, 스키타이인은 해골로 잔을 만든다는 식이다. 이 중 많은 서술은 과장되거나 역사적 근거가 없으며, 실제 페르시아 비문이나 이집트 기록과 충돌한다. 역사의 아버지이지만, 동시에 문명과 문명 사이를 가로지르던 구전 이야기의 위대한 수집가였다.
이름이 아닌 내용으로: 구체적 사례 비교
이러한 불일치는, 개별 사건들을 들여다볼 때 더 또렷해진다.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했다. 성경은 사르곤 2세의 이름부터, 사마리아의 함락, 이방인의 이주 정책까지 이 사건을 세밀하게 기록하며, 이는 현대 고고학과 아시리아 비문에서 정확히 입증된다. 그러나 이 거대한 국가의 멸망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느부갓네살의 공격, 성전 파괴, 유다 왕국의 몰락을 극적으로 묘사하며, 이는 바빌론 연대기를 통해 역사적 사실로 재확인되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이 지역에 대해 거의 침묵한다. 그의 시선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머물러 있었다.
고레스 대왕의 바빌론 정복과 유다 포로 귀환은 이러한 경향의 정점을 이룬다. 성경은 고레스가 유다인을 귀환시키고 성전 재건을 허락했다고 명시하지만, 헤로도토스는 그를 잔혹한 정복자로 묘사한다. 하지만 '고레스 실린더'라는 역사적 유물은 성경의 서술을 지지한다. 심지어 바빌론의 마지막 왕으로 다니엘서에만 등장하여 오랫동안 허구의 인물로 여겨졌던 '벨사살'조차, 19세기 발견된 비문을 통해 그가 실존했던 통치자였음이 증명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성경이 옳고, 헤로도토스는 틀렸다. 헤로도토스는 이야기꾼이다.”라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다. 본질은 우리가 지금까지 '성경=신비', '헤로도토스=역사'라는 '이름의 권위'를 기반으로 사료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이 권위를 종종 배반하고 있었다. 결국 '성경은 종교서라서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선입견은, 내용을 보기 전에 이름만 보고 판단한 오류일 수 있었던 셈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나 원전이 아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식적 틀이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오늘날 여전히 많은 이들은 구약성경을 종교로, 헤로도토스를 역사로 분류한 채, 진실과 허구의 위치를 정해놓고 그 위에 지식을 쌓아간다. 하지만 이 구분은 생각보다 허술하다. 어쩌면 우리는 진짜 역사였던 것을 신화로 오해하고, 신화와 이야기였던 것을 역사로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내용, 표면이 아니라 그 안의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