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선 글에서 '성경'과 '역사'라는 이름표가 어떻게 실제 내용과 반전될 수 있는지를 보았다. 이름의 권위가 우리의 판단을 어떻게 선취하는지 목격한 것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이름, '유일신'은 어떨까? 이제 우리는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거대한 두 종교, 기독교와 이슬람이 사실은 얼마나 닮은 쌍둥이인지, 그리고 그들의 강력한 믿음이 어떻게 내재된 폭력의 씨앗을 품게 되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제1부 - 제3장. 앎과 믿음의 경계에서】
여섯 번째 글: 유일신의 그림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은 인격적이다. 감정도 풍부하고, 실수도 하고, 인성(아니지, 신성)에 결함도 있다. 힌두교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에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신들 사이의 서사가 그려지기 위해서는, 선과 악, 주동과 반동, 결함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자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을 택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다르다. 성경에서 그려지는 하느님은 우리의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 하느님에 대한 해석은 보통 목사님이 해주시는 해석이고, 목사님의 해석은 정통 교단의 교리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목사님의 해석에 의문을 표하기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해석권이 없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일신교는, 그런 의미에서 다른 종교와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속성이 있다.
한편,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는 단순한 신앙의 영역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알게모르게 문명의 구조와 권력 질서의 뼈대를 형성하는 정신 그 자체이다.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두 거대한 종교는, 각각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을 창조하며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해왔다. 이 둘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앙숙처럼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DNA를 검사해보면 '유일신'이라는 동일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쌍둥이와 같다. 본 편에서는 이 두 종교의 구조적 유사성, 유일신교에 내재된 해석권 쟁탈의 구조, 그리고 그 믿음이 가진 배타성이 어떻게 충돌과 폭력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유일신교의 구조: 기독교와 이슬람의 쌍둥이 틀
기독교와 이슬람은 모두 유일신 사상을 핵심 교리로 삼는다. 기독교는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말하고, 이슬람은 "라 일라하 일라 알라(알라 외에 신은 없다)"고 외친다. 이 진술은 신학적 선언이면서 동시에 존재론적 배제의 언어다. 즉, "우리 신은 진짜고, 너희 신은 가짜"라는 타자 부정의 구조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두 종교는 모두 종결된 경전, 즉 성경과 쿠란을 보유한다. 이로 인해 신의 뜻은 더 이상 새롭게 열리지 않고, 이미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경쟁이 핵심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신의 뜻을 차지하기 위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왕좌의 게임, '해석의 권력'을 둘러싼 정치가 시작된다.
해석권의 전쟁: 누가 신의 뜻을 말할 수 있는가?
초기 기독교는 교회와 교황 중심의 해석 독점 체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면죄부 판매와 교권의 타락은 종교개혁으로 이어졌고, 루터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주장하며 해석권을 개인에게로 탈환했다. 그 결과는 교리 분열과 무수한 종파 탄생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개신교 내부의 해석 전쟁이 새로운 권위 투쟁을 불러왔다.
이슬람 역시 초기에는 칼리프(정치·종교 지도자) 체계를 통해 통합되었지만, 칼리프제가 붕괴된 이후 율법학자(울라마) 집단 간 해석 경쟁이 격화되었다. 수니파는 율법학자의 합의(Ijma)를, 시아파는 이맘으로 이어지는 계승 기반의 권위를 중심으로 뭉쳤다. 여기에서도 결국 해석권을 둘러싼 분파와 충돌이 종파 갈등, 심지어 테러와 전쟁으로 확장된다.
절대 보편성과 배타성: 다신교와의 구조적 차이
다신교의 신은 "우리 신이 너희 신보다 강하다"는 식의 우열 경쟁 구조를 가진다. 이는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정복 후 통합이나 문화적 병존이 가능하다. 로마 제국이 피정복지의 신들을 자신들의 판테온으로 흡수한 것이 좋은 예다.
하지만 유일신교는 "너희도 믿어야 하는, 단 하나의 신"을 주장한다. 이 신은 모두의 신이다. 따라서, 모두에게 강제되어야 하고, 믿지 않는 자는 배척된다. 이것이 바로 유일신교의 보편성의 명령이며, 동시에 배타성의 토대다.
폭력의 씨앗: 절대 해석과 정당한 전쟁
바로 이 지점에서, 유일신은 "신의 이름으로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게 된다. 다신교의 전쟁은 신들의 대리전이지만, 유일신교의 전쟁은 진리와 허위의 싸움이다. 기독교의 십자군, 이슬람의 지하드, 종교재판, 이단 심판 등은 모두 '절대적 해석'의 이름으로 타자를 제거하는 행위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메타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사실은, 사실 이 두개의 종교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해석이라는 점이다. 무슨 의미냐하면, 애초에 기독교의 야훼와 이슬람의 알라가 모두 아브라함 계통 종교(YHWH)에 뿌리를 두고있는 종교라는 것이다.
서두에 '두 종교는 마치 쌍둥이같다'라는 표현은, 단지 외형이나 신앙의 구조가 유사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두 종교는, 정말 단어 그대로 쌍둥이였고, 하나의 신을 섬기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야훼, 알라, 하쉠, 천주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며 그 신격조차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신에 대해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인간에 의해 완벽히 알아진다면, 그건 신이 아니니까)
결국, 유일신이라는 해석권의 독점에 의해서, 각자에 의해 해석된 신만이 남아버렸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강력한 대립과 타자부정 자체가 해석권을 사이에 두고 서로 쟁취하기 위한 거대한 대결인 것이다.
신의 구조를 넘어, 해석의 겸허로
유일신은 인류에게 보편적 윤리, 문명, 질서, 정의라는 거대한 선물을 주었지만, 동시에 폭력, 독선, 배제라는 그늘을 안겼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서로를 적대하면서도 놀라울 만큼 닮아있고, 그 구조 속에서 해석권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반복된다. 이제 인류가 진정으로 마주해야 할 것은 신의 부정이 아니라, 해석의 절대화를 경계하는 자각이다. 우리가 신 앞에서 겸허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유일신'은 보편적 평화의 언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