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이란 무엇인가

by 피디아

앞선 글에서 우리는 칸트라는 거대한 거인 앞에서, 하나의 인간이 어떻게 그를 이해하고, 그를 지나쳐 자신의 길을 가는지를 보았다. 이처럼 철학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시작되지만, 때로는 그 거인들이 차려놓은 밥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다. 특히, 철학의 메인 요리라 불리는 '형이상학'은, 어떤 이에게는 가장 맛없는 반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반찬투정을 하고 싶더라도, 한국에 사는 이상 김치는 먹게 되기 마련. 지금부터는 반찬 투정을 하기 전에, 내가 싫어하는 김치가 도대체 열무김치인지, 깍두기인지, 일단 한 입이라도 먹어보는 시간이다. 이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철학자들이 왜 이토록 '있다'는 당연한 말에 집착했는지, 그 위대하고도 때로는 이해안가는 이상한 여정을 둘러보고자 한다.


【제1부 - 제4장. 가벼운 철학 산책: 형이상학】

스물 두 번째 글: 존재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매일 '있다'는 말로 세상을 설명한다. 눈앞의 핸드폰, 머리 위의 하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은 '있다'.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물을 필요조차 없어 보이는 이 '있음'에 대해 미친 듯이 파고드는 학문이 있다. 철학중에서도 가장 난해하다는 형이상학, 그리고 그 형이상학에서도 가장 심연과도 같은 영역. '존재론'이다.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존재(Being)'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있다'는 말, 즉 '실재(Reality)'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 눈에 보이거나, 경험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개별적인 '것'들을 철학자들은 '실재하는 것' 혹은 '존재자(a being, Seiendes)'라고 부른다. 내 손안의 핸드폰은 존재자다. 하늘도, 사람도, 심지어 '사랑'이나 '정의' 같은 개념조차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으니 존재자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걸까? 철학자들은 왜 '존재'라는 단어를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존재가 아닌 전혀 다른 의미로 쓰고있는걸까? 왜 내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존재'는 존재가 아니고 '존재자'일 뿐이지? 왜 이렇게 단어를 헷갈리게 사용해서 나와 당신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설명해보고자 한다. "사과가 있다" 라는 문장을 뜯어보자. 이 문장의 의미를 뜯어볼때,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과'이다. '사과'는 '존재하는 것', 즉 존재하는 자이다. 그러면, '있다'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대답은 바로 '있다' 그 자체, 즉, 실재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단지 "'있다'는 것은 '있다'는 것이다"라는 순환논리에 그친다. '있다'라는 것이 뭔지 알기 위해서는 '있다'의 매커니즘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즉, 사과가 '있기 위해서'는, 사과를 '있게끔 하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 무언가는 존재의 '원리'일 수도 있고, '전제조건'일 수도 있다. 솔직히,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일단 인간은, 실재하는 것들의 매커니즘을 계속해서 냅다 파헤치고 있는 중이다.


핸드폰(존재자)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물리 법칙(또 다른 존재자)을 탐구하고, 그 물리 법칙의 작동원리를 기술하기 위해 미적분(또 다른 존재자)을 발명해냈듯, 실재하는 것들의 존재에 대해서 계속 파고들다 보면, 결국 이 모든 존재자들이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가장 근원적인 바탕, 즉 모든 것의 '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제1법칙이나 혹은 게임의 엔진과 같은 전제조건(마치 진리와도 같은)의 문 앞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최초의 '있음의 매커니즘' 그 자체는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형이상학에서 묻는 '존재'에 대한 탐구이다. 그리고, 이런 난해한 질문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어서 어떻게 완성된 것일까? 이것이 바로 존재론의 질문이자, 역사 그 자체이다.



1.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존재에 대해서 묻고 답하다.

서양 철학사에서 존재에 대해서 처음으로 질문한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그 가운데 파르메니데스로 여겨진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있는 것이 사라지거나, 없는 것이 생겨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변화'라는 것은 없어짐과 동시에 생겨나거나, 생겨남과 동시에 없어지는 과정과도 똑같다. 따라서, '존재'라는 것은 움직이지 않고 영원불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현대 과학의 '관성'과 '에너지 보존 법칙'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과도 같은, 그러나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들리기로는 현실 세계와는 전혀 다른 궤변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당시 철학자들은 이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다. 그리고,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에 대한 첫번째 질문을 한 위업으로 '형이상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플라톤이 대답을 내놓았다. '맞다. '진정한 존재'라는 것은 움직이지도, 변화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세계의 변화무쌍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이 현실세계가 '진정한 존재'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존재'는 움직이지도, 변화하지도 않지만, 그 그림자인 현실세계는 변화하고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는 진리(선)에 도달하기 위해서 바로 존재, 즉, 이데아를 탐구하고 추구해야한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유명한 플라톤이지만, 사실 그의 철학의 핵심인 이데아론은 소크라테스 못지 않게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궤변이 아닌 명확한 개념을 규정하고자 했다는 방법론과 실천윤리적 관점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절대적 영원불변하는 존재를 인정했다는 관점에서는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플라톤은 존재를 지상의 영역에서, 형이상학(인식 너머의 세계)의 영역으로 옮겨두었다.


그러나,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에 대해 반박했다. '아니, 진정한 존재라는 것이있다면 현실 세계에 존재하여야지, 우리가 알지도 겪지도 못하는 현실의 너머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는 스승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존재'는 질료와 형상(eidos)의 결합이다. 질료란, 형상이 될 가능성을 품고있는 형태(가능태)이며, 형상이란 실제로 현실에 등장하는 모습(현실태)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데아는 인식의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존재들은 가능태와 현실태를 오가며 변화와 운동이 생기는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이상적인 '존재'는, 현실세계의 이전인 이상세계에 이미 존재했던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탐구한 본질을 바탕으로 보편화된 개념으로서 이상적인 '존재'를 탐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존재가 인식의 너머 세계에 있는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 있는지에 대해서 대결하였다. 인식 너머에 있다고 생각한 플라톤은 선한 이데아, 태어나면서 알게되는 생득적 지식, 국가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 등의 추상적인 사유를 중시하였다. 반면, 현실 세계의 실체를 탐구함으로써 진정한 존재를 탐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다루는 학문인 논리학, 생물학, 정치학, 윤리학 등을 다루고, 학문을 세밀하게 분류하는 것에 몰입하였다. 플라톤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학당을 지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탐구하기 위해 동물원을 만들었다. 라파엘로가 위대한 철학자들을 그린 프레스코화 '아테네 학당'을 보면, 모든 철학자들의 중심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격렬히 논쟁하고 있다. 여기서도 플라톤은 하늘(인식 너머의 세계)을 가르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은 땅(현실 세계)을 향하고 있다. 진정한 세상의 모습, 즉, 진리를 어떻게 탐구해야하는가에 대한 두 관점은 이후 2500년 철학사의 구도 그 자체로 이어진다. 다만 주의할 것은, 플라톤이 관념적인 분야만 다루고 현실을 소홀히 했다거나,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을 다루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그들이 더 중요하게 여긴 무게중심이 다소 달랐다는 의미이다.



2. 그런데 웬걸,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칭하게 되어버렸다.

중세시기에 들어서며, 철학은 신학과 동일시되었다. 정확히는 신학의 가장 훌륭한 제1 수석 전략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명한 말이 여기서 나온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이다.' 물론, 이 말이 철학을 철저히 무시한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여전히 철학은 모든 학문의 원천이었다. '신학'만 빼고. 신학은 철학을 포함하여 모든 학문을 포괄하며, 도구로 사용하며, 그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인 학문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존재라는 단어의 일상적 의미와 철학적 의미에 중대한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존재'는 현실에서는 여전히 '있다'를 의미했지만, 플라톤의 존재는 현실 세계에 없는 초월적인 존재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이 개념은 신학에서의 초월적인 존재 즉, 신(God)을 의미하는 단어로 변용되었다. 그리고, 존재론의 탐구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신)와 피조물로서 존재하는 존재(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점차, '존재'라는 단어 자체가 신학적-형이상학적인 거대 담론 속에서 포괄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러니까, 존재라는 단어 자체가 형이상학적 용어(마치 '진리' 같은)와 사실상의 동의어가 되어버린 셈이다.


3. 데카르트, '나'라는 확실한 점을 찍다

그리고 신학의 권위가 점차 약화되고, 인간의 이성이 그 자리를 메우고자 하는 시대, 근대가 도래했다. 여기서 철학의 가장 유명하고도 위대한 명언이 등장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르네 데카르트의 이 선언은 단지 '똑똑함'을 찬양하는 말이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의심하고 있는 내가' 있음은 절대적으로 부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탐구의 출발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변덕스럽고, 절대적 신의 권위가 약화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확실한 출발점을 찾아낸 위대한 발견이었다. 파르메니데스가 던진 존재에 대한 질문에, 인식 너머의 절대적 이데아, 질료, 신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주체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본 최초의 철학자인 것이다. 그의 관심은 '어떻게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방법론에 있었고, '생각하는 나'는 그 모든 탐구를 출발하기 위한 가장 단단한 토대이자 시작점이었다. 어떻게 보면 존재론이라기보다는 인식론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주장한 것은, 결국 인식의 출발점으로서 '생각하는 나'라는 하나의 '존재'하는 자가 확실히 '있다'는 사실, 즉 '나 자신의 존재는 진리'라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 이후 흐려지던 존재라는 단어의 사용을 다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4. 칸트, '인식'의 바깥에 벽을 세우다

데카르트가 이성이 뻗어나가기 위한 '나'라는 확실한 땅을 발견했다면, 임마누엘 칸트는 그를 계승하여, 그 땅을 기반으로 나아가, '인간 이성의 한계'라는 거대한 벽을 세웠다. 그는 인간의 인식이 감각과 이성이라는 정해진 틀 안에서만 가능하며, 그 틀 너머에 있는 형이상학적 세계의 진짜 모습, 즉 "'물'자체(Ding an sich)"는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칸트 해설서에 흔히 등장하는 '세계의 진짜 모습은 알 수 없다'라는 표현이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것은 통 속의 뇌, 호접지몽 등의 '착각'이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오감과 인식의 한계'를 의미한 것이 아니다. 칸트가 말한 '인식'의 한계는 우리가 시각으로 온전한 사과 자체를 보지 못하고 미각으로 사과의 완벽한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으로는 진정한 사과의 '형이상학적 본질'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칸트의 발상을 따라가보자. 플라톤은 '이데아', 즉, 진정한 존재를, '현실세계 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로 규정했다. 그리고 진리(선)에 닿기 위해 '초월적인 존재'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학문. 이것이 형이상학(플라톤 이후의 이데아론)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초월적인 존재를 경험적으로 알 수 없다. 왜냐면 그것은 단어 그대로 '현실세계 너머'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얻은 어떤 지식도, 현실세계 너머에 있는 것이 참이라고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해, 필연적으로 오로지 직관에 의존하여서 규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다음 파트에서 설명하겠지만, 정당화하기에 많은 난제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초월적인 존재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정답은, '인식의 틀'에 있다. 근대 과학의 상식을 기준으로, 초월적인 존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을 거쳐서 우리에게 인식된다. 쉽게 표현하자면, 초월적인 존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필터'를 거쳐서 이 세상에 투영된다. 그리고 이 세상은 인간에게 '오성(이성)'과 '오감(감각)'으로 인식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초월적인 존재 그 자체를 탐구할 수는 없지만,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식의 틀과 세상의 질서를 파악하는 능력인 '오성', 그리고 투영된 세상의 형태를 받아들이는 능력인 '오감'을 통해 통해서, 그 초월적인 존재가 어떻게 현실로 현상화되는지, 그 필연성을 탐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기능해서)' 초월적인 존재를 투영해서 '어떻게(왜곡하여)' 결과물을 그려내는지를 탐구한다면, 우리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초월적 진리)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현실 세계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진정한 세계의 모습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초월적인 존재(태양; 형이상학적 존재)' 그 자체가 아닌 '인간 주체의 인식의 틀(지구; 시간, 공간, 이성, 감각)'을 탐구하여야한다는 발상의 전환. 이것이 바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이다.


어떤 이들은 '물자체는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에 기인해서, 칸트를 불가지론자로 오해하지만, 그의 진짜 의도는 불가지론이나 형이상학의 폐기가 아니었다. 칸트가 말한 것을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하자면 '물자체는 알 수 없다' 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물자체가 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이 두 문장은 비슷해보이지만 사실 전혀 다르다. 무언가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마치 전부 다 알고있는 듯이 말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는 형이상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이 과연 형이상학(신, 존재, 영혼 등)이라는 거대한 질문을 다룰 자격이 있는가?"를 먼저 엄격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봤다. 이를 다룬 칸트의 저작인《순수이성비판》은 이성의 오만한 월권을 막고, 그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탐구한,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정직한 자기 성찰 중 하나이다. 그리고, '물자체'를 알 수 없는 그 지점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이성을 믿고, 이성을 기반으로 탐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였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비난이 아닌 한계의 규정이었으며, 이성을 진정한 탐구의 토대로 삼기 위한 기초공사였다. 이성의 힘을 믿되, 그 한계를 아는 겸손함. 이것이 칸트의 위대함이다.


다만, 그의 의도가 궁극적으로 불가지론이 아니었다 해도, 칸트가 진정으로 형이상학의 세계를 다룰 자격이 있는지를 점검하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 그 이후의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에 대해 다루고자 할때, 스스로에게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잠깐, 이거 이성으로 다룰 수 있는 것 맞아?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다룰 수 없는 것을 다루지 말라고 했는데? 이거,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철학이 아니라 뜬구름잡는 사이비 취급 받게 되는거 아냐?' 결국, 칸트 이후로 현실 너머의 세계를 다루는 형이상학은 점차 힘을 잃게 되고, 현실 자체를 다루고 우리가 그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다루는 인식론으로 철학의 무게축이 옮겨오게 된다.


5. 하이데거, 판을 뒤엎다: "그런데, 존재가 뭔데?"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마르틴 하이데거가 이 모든 판을 뒤엎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데카르트와 칸트 모두가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즉 '존재에 대한 물음'을 철저히 망각했다고 단언한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와 '존재자'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독자: 이제서야..!!), 서두에 말한 '존재'와 '존재자'가 다시 소환된다.(하이데거 이전에는 존재와 존재자에 대한 구분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 구분에 대해서 그다지 깊이 신경쓰지 않았다.)


- 존재자(a being / Seiendes): 우리 눈앞에 있는 핸드폰, 나무, 고양이 같은 구체적인 사물들. 하이데거의 기준에서는 데카르트가 발견한 '생각하는 나' 역시 여기에 속한다.

- 존재(Being / Sein): '있음'이라는 개념 그 자체. 모든 존재자들이 '있는 것이' 가능한 조건이며, 그 '있음'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구성하는 구조.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있게끔 하는' 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쉽다. ― 너무 난해해서 나는 차라리 존재원리라고 부르고 싶다.(주의: 학술적 용어가 아님)


예를 들어, 하늘에 치는 '번개'가 존재자라면, 그 번개를 존재하게끔 만든 '전기의 법칙'이 바로 진정한 존재이다. 번개는 단지 '존재하는 것'이지, '존재'가 아니다.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데카르트가 한 일은, '나'라는 번개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지, 그 번개를 가능하게 한 '전기의 법칙' 그 자체는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바로 그 '존재하게끔 하는 원리'야말로 철학이 물어야 할 진정한 존재라고 선언했다.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전기의 법칙' 역시 엄밀히 말하자면 '존재자'이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전기의 법칙' 또한 어떤 법칙으로 인해 유도된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 존재자의 존재 원리를 계속해서 파고들다보면, 언젠가는 모든 존재자들을 존재하게끔 하는 첫 번째 '존재'가 등장할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가 존재한다고 너무나 쉽게 결론지었다. 칸트 역시, 물자체라는 형이상학적 불가지의 영역 너머로 존재를 밀어넣었다. 존재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존재가 도대체 무엇인지, 존재의 원리에 대한 질문할 생각은 플라톤 이후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부터 존재의 원리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고 탐구하는 플라톤 이후의 첫 번째 사람이 되겠다.'


하이데거의 선언은 서양 철학의 기반을 통째로 뒤흔듦과 동시에, 형이상학의 부활을 쏘아올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렇게 존재론은, 하이데거 이전까지 '존재자'를 탐구하는 학문에서 '존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재구성되었다.(독자: 그러니까, 이제서야..!!)


그렇다면 하이데거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하이데거는 이 '법칙'을, '시간성 속에서 드러나는 구조'로 파악하려 했다. 그는 존재를 어떤 신적인 본질이나 형이상학적 원리가 아닌, 우리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시간 속에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구조로 보았다. 즉, 하이데거에게 '존재'는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형이상학적인 존재 그 자체를 직접 탐구할 수 없기 때문에(칸트가 규정하였듯), 우리는 존재에 대해 질문하고,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존재를 인식하는지를 탐구해야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존재'에 대해 질문하고, 이해하며, 존재를 인식하고, 그 의미 속에 사는 바로 그 특별한 존재자를 ‘현존재(Dasein)’, 즉 인간이라 보았다. 그리고, '존재'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현존재'가 없다면, '존재'의 드러남은 의미가 없으며, 나아가서 존재에 대한 탐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즉, '현존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며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존재는 그 질문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드러남은 다시 인간을 존재자(Dasein)로서 자리 잡게 만든다. 초기 하이데거에게 존재와 인간(현존재)은, 시간성이라는 레일에 올라타서 끊임없이 서로를 드러내는 순환적 구조이다.


다만 하이데거는, 말년에 자신의 철학적 방향을 전환하였다. 후기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 개념은 'Ereignis', 직역하면 '사건'이라는 의미이다. 후기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존재를 실체로서 규정하거나 드러내려는 시도 자체가 존재를 오히려 은폐한다고 보았다. 오히려 '사건으로서', '관계로서'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태도, 즉 경청하고 응답하는 방식으로 존재에 대한 입장을 전환하였다. 존재에 대한 실체적 규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은, 어찌보면 칸트의 '물자체' 개념과도 유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칸트는 '논할수 없다'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했고, 하이데거는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응답하여야한다'고, 시적으로 이야기했다. 후기 하이데거에게 존재와 인간(현존재)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는 스스로 드러나고, 인간은 그 드러남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관계이다.


위의 설명이 무척 난해하게 느껴질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난해하고, 그의 글 역시 가독성이 지옥같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하이데거의 고향인 독일인들 사이에서도 '하이데거의 책 독일어판은 언제 나오는거야?'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니까. 칸트가 하지 말라고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앞에서 하이데거가 형이상학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고 표현했지만, 하이데거 스스로도 명확한 논증보다는 난해하고 시적인 언어와 직관, 영감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니, 단어에 얽메이지 말고 그 흐름만 한번 이해해보자. 그러면 무언가 적어도 한가지 의아한 점이 느껴질 것이다. 아무리 봐도 후기 하이데거가 정의한 인간은, 전기 하이데거의 현존재에 비해 뭔가 좀... 수동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자세한 이유는 많겠지만, 확실히 말년의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실존적 선택, 주체성, 능동성을 대폭 축소시켰다. 왜일까? 감히 추측하건대, 그의 선택 가운데 '나치 부역'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하이데거는 '현존재', 그러니까 '인간'의 선택의 의미를 축소시킴으로써, 자신의 과거에 대한 스스로의 선택의 결점을, 그리고 그 위법성을 축소시키고 도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단, 이는 나의 추측일 뿐이며, 하이데거의 사상 자체가 오염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이데거의 후기 철학 자체의 의의 역시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나는 내가 잘 하는 '삐딱한'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위대한 철학자들이 '존재'에 대해서 고민한 내용과, 그에 대한 대답이다. 그들에게 존재는, 영원히 닿을 수 없지만, 그 언저리까지는 닿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그 반어적인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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