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3장에서 '과학'이라는 이성의 최전선과 '믿음'이라는 가장 오래된 영역 사이를 오갔고, 마지막에는 그 '앎'이 의외로 헐거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제 1부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 모든 '앎'과 '믿음'의 문제를 끌어안고 씨름했던 철학자들의 뒷모습을 따라가 보려 한다. 그 첫번째 타자는, 당신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철학의 거대한 벽, 칸트다.
【제1부 - 제4장. 가벼운 철학 산책: 칸트】
첫 번째 글: 나는 칸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칸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언명령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릿속에 말 많은 노교수, 딱딱한 독일어, 그리고 도덕적 압박감이 떠오른다. 한 가지 추가한다면 인간 시계. 그의 산책 시간인 3시 30분마다 마을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전설적인 일화까지. 나에게 3시 30분은 주중에는 가장 퇴근이 고픈 시간, 쉬는 날에는 이제 막 일어나서 무슨 배달음식을 시킬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다시 도덕으로 돌아와서, 칸트가 선언한 도덕 법칙은 이러하다. "너의 행위가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원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이 문장은 무겁고, 경직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현실을 살지 않는 사람의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도덕을 그렇게 살 수 없었다. 갈등했고, 변덕스러웠고, 때로는 어제의 옳음을 오늘 부끄러워하는 식으로 살았다. 나에게 도덕은 법전이 아니라, 매일 쓰고 지우고, 다시 덧고쳐 쓰는 어제의 일기장 같은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 칸트는 너무 숨막히는 인간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감탄은 했으나, 공감하기는 어려웠고, 감정적으로도 상당한 거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도덕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책임지려고 애쓰는 순간마다, 나는 결국 그의 문 앞에 다시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도덕 판단은 결국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공리주의, 상대주의, 덕 윤리 등 수많은 윤리 체계를 배우지만, 그 어떤 체계도 개인의 마지막 판단 순간을 대신해주지 못한다. 도덕 판단의 핵심은 결국 이것이다: "나는 이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건 감정일 수도 있고, 직관일 수도 있고, 계산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그 판단의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칸트가 말한 정언명령의 구조에 발을 들인다. 내 판단이 모두가 해도 되는 판단인지, 스스로 다시 겪어도 좋은 판단인지, 보편화해도 괜찮은 판단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나는 느낀다. 그 판단은 언제나 같지 않다. 내가 오늘 옳다고 믿은 것은, 경험과 실수, 배움 속에서 내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대신 나는 묻는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이 판단이, 지금의 나에게 진실하고, 내일의 나에게는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것은 더 이상 정언명령의 보편성과 불변성을 묻는 질문이 아니다. 이것은 정언명령의 형식을 띤, 자각에 대한 질문이다. 나는 오늘의 판단을 정직하게 감당하고, 내일의 자각으로 다시 점검할 준비를 한다.
이제 나는 칸트를 존중한다. 나는 여전히 그의 문장들이 어렵다고 느끼고, 그가 말하는 윤리 형식의 단단함이 때로는 너무 완고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이해한다. 그가 말한 정언명령은, 모든 외부 기준이 무너질 때, 자신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최소한의 구조였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제 그 구조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고, 그 구조의 유연함도 상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칸트를 지나왔다. 그를 무시하지 않았고, 그를 절대화하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그에게 다가갔고, 그의 말을 이해했으며, 그의 말이 끝나는 자리에서 다시 나의 말을 시작했다. 나는 칸트를 넘어서려는 것이 아니라, 칸트가 열어준 질문 위에 살아있는 나의 자각을 얹고 싶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그러나 내 판단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은, 내일의 나에게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해한 윤리이고, 그것이 내가 세운 나 자신의 정언명령이다.
칸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앞을 조용히 지나, 다음 질문을 향해 걸어간다. 어차피, 칸트는 다시 질문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