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그러나 당신의 자유는 형벌이다.

by 피디아

칸트가 "물자체"를 설정하고,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이후, 철학의 거대한 흐름은 영원한 이데아―그러니까, 형이상학을 의미한다―에서 땅 위의 구체적인 현실과 관계, 인간의 인식과 현상(인식론, 현상학)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것'에 대한 회의는, 역설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이어졌고, 그 흐름의 중심에 앞서 등장한 하이데거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하이데거의 철학을 가장 인간적인 실존의 영역에서 극한까지 밀어붙인 철학자가 있었다. 스스로를 실존주의자가 아닌 위대한 존재론자로 규정하고 싶었던 하이데거는 "내 철학을 오용한 것이다"라며 거리를 두었지만, 20세기는 기꺼이 그의 손을 들어주었고,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는 노벨문학상을 거절했다. 일화만 들어도 비범해보이는 그의 이름은 바로 장폴 사르트르이다.


【제1부 - 제4장. 아주 쉬운 철학 산책: 사르트르】

스물 여섯 번째 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그러나 당신의 자유는 형벌이다


사람들에게 철학 관련 명언을 꼽으라고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나올까? 아마 가장 먼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뒤를 잇지 않을까? 3위는 무얼까? 아마도 내 생각에는, 장폴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이 말은 사르트르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그의 철학을 이보다 더 잘 요약하는 문장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사르트르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가, 우리가 오늘 아침('B'reakfast)이나 저녁('D'inner) 메뉴로 치킨('C'hicken)을 고를때 느끼는 그런 행복하고 군침도는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는, 오히려 인간에게 내려진 가장 무겁고도 고독한 '형벌'에 가깝다. '에이, 설마?' 그 설마가 사실이다. 사르트르는 정말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L'homme est condamné a être libre.)"라고.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선택하기를 원하는가? 수십 가지 메뉴가 적힌 메뉴판 앞에서 "아무거나"를 외치며 선택을 미뤄본 경험,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는가? 아이스크림 가게의 31가지 메뉴는 우리에게 축복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뭘 고를지 모르는 괴로움을 주기도 한다. 음식 메뉴가 너무 가벼운 예시라면, 진지하게 이야기해보자. 직장에서, 혹은 군대에서, 그 외에도 많은 집단과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하고 책임지기보다는 차라리 선임이, 상급자가, 책임자가 명확하게 지시를 내려주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는 판단이나 책임 없이, 그대로 시행하기를 바라는게 '차라리 마음이 편할' 때가 많다. 그 원인이 '책임'이든, '부담'이든, 어쨌든 우리에게 이런 심리가 상존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심리학적으로, 이를 '선택의 역설'이라고 일컫는다. 사람들, 소비자에게 너무 많은 옵션이 주어질 경우, 오히려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어지게 만들고, 적은 옵션을 가졌을 때보다 더 좋지 않은 선택을 내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선택의 역설'이 증명하듯, 인간은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불안과 고통을 느낀다. 많은 인간은, 때로는 누군가 "이게 정답이야"라고 명쾌하게 정해주기를(인지적 종결 욕구), 그저 '뇌 빼고' 시키는 대로만 하기를 바랄 때가 많다.


여기서 잠시 사르트르의 뇌를 들여다보자. 사르트르의 철학은 현상학(무언가가 나타나고 드러나는 것을 탐구하는 철학 분야)에 깊이 기반하고 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나아가서 의식을 가진 모든 주체의 의식은, 타자의 시선, 기대,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드러날 수 없다. 이를 사르트르는 '대자존재'라고 칭했다. 무언가에 '대하여'서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았고, 항상 타인을 의식하고, 그 시선으로 자신을 대하며 존재하는 인간. 그리고,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선택하게 될 자유이자 책임이 주어진다. 그 실존적 선택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바로 나의 본질이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일지, 그 모든 것을 의식하고 결정할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는 바로 이 지점에 서 있다. 신도, 정해진 본질도 없는―정확히 표현하면 던져지는 순간 본질이 무엇이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실존적 선택에 의해 진정한 본질이 정해지는―텅 빈 우주에 내던져진 인간은, 실존하기 위해서 좋든 싫든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 이것은 '해피해피'한 자유가 아닌, 그 어떤 핑계도 허용되지 않는 준엄한 책임이며, 타인의 시선 속에서 고통받는 관계로서의 실존이다. 동시에 모든 인간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되고, 스스로도 그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나의 모든 선택은 타자에 대한 관계로서의 실존이 된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타인은 지옥이다(L'enfer, c'est les autres.)'. 사르트르는 실존적 자유와 타인의 시선이 필연적으로 빚어내는 갈등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여기까지 오면, 개인적으로 사르트르가 언급한 자유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상상하는 무한한 자유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현실적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대부분 타인의 기대로부터 유도된 선택이며, 실존하는 인간인 이상 그 기대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관계속에서 인간의 실존이 어떻게 무한히 자유로울수 있는가? 실제로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사르트르의 자유를 진정한 자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개념, 이후의 담론 철학으로 이어지며, 사르트르가 말하는 자유를 진정한 자유가 아닌, 타인의 기대(혹은 구조)로부터 연역된, 자신의 역할에 기반한 선택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끝까지 인간의 진정한 자유,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상황에 의해 제약될지언정, 그 선택의 자유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은 자기기만, 타인의 시선 등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본인의 의지를 통해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지도록 의지적으로 '노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시험 문제로 예를 들어보자. 마치 객관식 오지선다 문제가 주어진 상황과도 같다. 당신은 정확한 답을 주관식이나 서술형으로는 어떻게든―설령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 교수나 조교에게 쓰는 절절한 편지더라도―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주어진 보기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정답이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 사르트르는 그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는 정답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그것이 너의 피할 수 없는 의무이다. 너는 그 선택의 결과가 정답이든 오답이든, 너는 책임져야 한다. 시험지를 탓하는 대신, 너의 선택에 책임져라.' 라고 주문한 것이다. 반면 구조주의자들은, '어떻게 그것이 진정한 자유인가? 이미 시험범위, 객관식이라는 시스템, 그리고 주어진 보기라는 규칙이 너를 얽메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문제를 틀렸을 경우, 진정으로 내가 그 과목에 대해서 몰랐다고 수긍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길들여짐이다.'라고 비판한 것이다.


혹시, 지금까지 이름에 속아서 실존주의자는 따뜻한 낭만주의자고, 구조주의자들은 차가운 냉혈한이라고 막연히 느껴왔다면,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실존주의자들은 따뜻한 어머니보단 엄격한 아버지에 가깝고, 구조주의자들은 차가운 실리콘밸리 기술자보다는 친절한 서비스 엔지니어에 가깝다. 나 역시 앞에서 구조주의를 비판하지 않았냐고? 잊지말자. 아버지는 나를 가족으로 대하지만, 엔지니어는 나를 고객으로 대한다. 실존주의는 인간을 세상의 주체로 세우지만, 구조주의는 인간을 시스템의 객체로 만든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본질적으로 휴머니즘이다.


사르트르의 철학은 유명하다. 그리고, 자유, 실존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낭만적이다. 하지만 그의 철학이 담고 있는 것은 자유, 방종, 축복이 아니다. 사르트르 철학의 진정한 본질은, 책임, 응답, 관계, 고통이다. 이것은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너무나도 고독하고 비극적인, 답이 보이지 않는 시험지에서 연필을 굴릴때 느껴지는 자괴감과 고뇌까지 포함하는 철학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표현했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채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아가야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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