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사실이지만, 그게 곧 중요한 건 아니다

by 피디아

우리는 앞선 글에서 과학과 종교, 그리고 언어, 철학이라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들이 가진 아이러니와 생각거리들을 살펴보았다. 이 모든 '앎'과 '믿음'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붙잡고 고민을 시작해야 할까? 이제 1부의 마지막 글을 통해, 이 모든 논의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존재'에 대한 한 사람의 솔직한 반찬 투정을 들어보고자 한다.


【제1부 - 제4장. 아주 쉬운 철학 산책: 넋두리】

스물 일곱 번째 글: 존재는 사실이지만, 그게 곧 중요한 건 아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존재론을 싫어했다. 아니, 지금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존재(Being)'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일단 마음속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그 단어는 너무 크고, 너무 무겁고, 너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의 본질을 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솥단지 같아서 뚜껑을 열기조차 두렵다. 그런데 또 언제는 세상 모든 것을 담고있는 하나의 미세한 점 크기의 나노 핵폭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앞에서 존재론의 역사를 다루지 않았냐고? 그건 별개의 문제다. 존재를 논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존재 자체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알 수 없는 것에서 사유를 출발하겠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나는 그 솥단지에서, 그 점 앞에서, 솔직히 점인지 솥단지인지 뭔지도 모르겠지만, 겁을 먹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존재가 중요한건 알겠다. 그런데 반드시 존재를 통해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게다가 칸트가 세워놓은 물자체라는 거대한 장벽을 보면....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잊어버린다.(속된 표현으로는,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칸트는 형이상학을 경험적, 과학적인 접근, 직관적 통찰로는 그 변두리조차 건드릴 수 없고, 오로지 선험적 지식(태어날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인식의 방식 그 자체)... 아니지, 그 선험적 지식의 조건 자체를 설명하는 초험적인 지식의 관점에서나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나같은 일반인에게는 '당신의 뇌가 한단계 진화한다면, 그때부터는 신나게 탐구해도 됩니다! 참 쉽죠? ^^' 라는 밥 아저씨의 친절한 해설이나 다름없다. 칸트에게는 구구단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선형대수학이다. 앞에서는 비록 '형이상학을 폐기하라고 한건 아니다'라고 변호하긴 했지만, 솔직히 이 말은 "주의: 이성적인 인간으로 보이고 싶다면, 어지간하면 이 선은 넘지 마시오. 자칫하면, 당신의 논리력조차 담보할 수 없어집니다."하는 경고문으로 느껴진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일단 나는 존재자로서 존재하고 있는데, 그걸로 부족한가?' 내가 관심을 두는 건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 일단 존재는 하고 있고, 이제부터 존재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그것이 내 삶과 어떤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지—나는 그런 것들이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다. 정확히 데카르트가 시작한 그 지점, 나는 거기서 생각을 시작한다.


존재론이 '이게 있음이다'고 말할 때, 나는 '그래서, 그게 뭐?'라고 되묻는 쪽이다. 이것은 철학에 대한 일종의 반찬 투정이다. 나는 인식을 통해 출발해서, 존재는 역사만 훑어본 뒤 지나치고, 다시 인식으로 되돌아오는 식으로 생각을 굴린다. 마치 뷔페에 가서 메인 요리인 캐비어나 푸아그라는 본체만체하고, 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와 치킨만 오가는 것과 같다. 먹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니까... 밥에다 비벼먹는건가?


이런 사유는 플라톤이나 하이데거 같은 대철학자들처럼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쪽은 아마추어의 자유로움, 실험성, 유동성이 가득한 사고의 현장이다. 나는 절대주의자도 아니고, 완전한 상대주의자도 아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해체하면서도, '나'라는 존재의 출발점은 부정하지 않는 모순적 중립자다. 그래서 내 생각의 모래성은 자주 해체되고 다시 세워진다. 존재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결코 종착점으로 삼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 출발점조차도 모호하다. 존재는 출발, 의미는 여정, 해석은 지도다. 그리고 나는 그 지도를 들고 끊임없이 다른 길을 탐험한다. 어떤 날은 존재가 모든 것의 중심 같고, 어떤 날은 그것이 단지 배경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결론은 이렇다. 존재는 사유의 시작이지, 목적지는 아니다. 존재는 사실일 뿐이고 의미는 이유다. 중요한 건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존재에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이다.




...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내게도 있었다.


이 삐딱한 반찬 투정이, 내가 하이데거라는 거대한 산맥을 넘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게 된,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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