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이 한마디가 법정에선 죄가 된다. 정확히는, 책임을 인정한 증거가 된다.
유감의 표현은 과실을 자백한 것으로 해석되고, 동정의 말은 법적 불이익의 증거로 쓰인다.
사과는 책임의 시인이 되었고, 우리는 사과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이 역설은 단순한 말실수의 문제가 아니다. 법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법의 질서 안에서 도덕을 포기하고 있다.
왜 법은 사과를 증거로 삼는가
법이 사과를 자백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기에게 불리한 말을 스스로 내뱉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그런 진술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를 '판단구속의 효과'라고 한다. 그래서 자백은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는 '불요증사실'이라 부른다.
복잡한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증명하기 어려운 사건일수록 이 효과는 더 강하게 작동한다. 의료사고, 과실 책임, 인과관계가 불명확한 분쟁에서 상대의 발언 하나는 사건 전체를 규정하는 핵심 단서가 된다. 동시에 재판 절차의 안정성을 위해 자백의 철회는 제한되어 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어디까지나 실용성에 의해 선택된 시스템이라는 데 있다.
사실을 정밀하게 밝히는 과정 대신, 말 한마디로 사건을 정리하려는 법의 태도. 이것이 바로 사법 편의주의(judicial convenience)다.
사법 편의주의, 그 무거운 비용
표현을 기준으로 판결하는 일은 법에게는 간편하지만, 사람에게는 위험하다.
도덕적 유감이 법적 책임이 되고, 진심 어린 걱정이 과실의 자백이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입을 닫는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삼킨다. 기업은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라는 문구조차 법적 리스크로 분류한다. 공공기관조차 사과에 앞서 책임회피의 절차를 고민한다.
그렇게 사과 없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피해자는 진심을 받지 못하고, 가해자는 진심을 드러낼 수 없다.
법적 질서가 인간적 질서를 해치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럼에도 이 구조가 유지되는 이유
그렇다고 해서 이 구조를 쉽게 바꿀 수 있는가 하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첫째, 입증의 어려움이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민사 분쟁에서는 책임의 존재와 인과관계 자체를 소송 당사자가 증명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복잡하고 고비용의 과정이다.
둘째, 판결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위해서이다. 법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예외가 많아지면 판결의 공정성이 흔들리기 때문에, 기계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따라서 표현 하나로 결론을 내리는 구조는 불완전하지만 기계적이고 실용적이다.
이것이 사법 편의주의의 본질이자 한계다.
우리는 '사과 불능' 상태에 빠졌다
우리는 이미 알고있다. 이 사회는 사과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것을.
'사과 한마디'면 풀릴 오해와 서운함이,
'사과 한마디' 때문에 지게 되는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 짓밟히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사과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더욱 더 강화하고 방어한다. 학부모도 마찬가지이다.
그뿐인가? 기업의 '유감'의 표명 역시 리스크를 모두 계산한 다음에 이뤄지는 절차이며, 결국 알맹이는 빠진 공허한 말들로 점철되어있다.
때때로 '사과문의 정석'이라고 올라오는 글들은 거의 유니콘급이다. 그리고 그 사과문을 쓰기 위해, 사과문을 쓴 작성자는 어쩌면 도박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들은, 사과를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사과를 하면 피해를 입으니까 사과를 하지 않게 되어버린 처절한 생존자들이다.
그러나 사과를 되살릴 방법은 있다
이미 일부 국가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일부 주, 캐나다, 호주에서는 '사과 보호법(Apology Law)'을 통해 사과나 유감 표현이 법적 책임 인정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인간적 표현과 법적 책임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다.
또한 병원, 기업, 기관 등에서는 책임이 아님을 명시한 표준 사과문구를 도입하여,
법적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공감과 도덕적 회복을 가능케 하려는 실천이 늘고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표준사과문구는 장기적으로는 템플릿화 되어서 유명무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법 해석의 방식 자체다.
의도를 고려하지 않고 단어에만 집중하는 판례 관행은 더 정교한 해석 기준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말은 문장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초등학교 바른생활 시간에 배운 그 기본적인 개념들 — 용서, 관용, 사과한 사람에 대한 배려다.
법은 인간의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사과가 죄가 되는 사회는, 결국 사법의 간편함이 인간의 복잡성을 억눌러버린 사회다.
우리는 여전히 도덕과 법 사이에서 말을 고르고, 침묵을 선택하고, 진심을 숨긴다.
그러나 법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한번쯤은 되묻고 싶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법적 책임으로 몰아붙이는 구조가 정말 정의로운가?
우리가 묻는 이 질문 앞에서, 법도 잠시 멈추어야 한다.
사람이 말을 한다는 것, 그 말에 마음이 담긴다는 것을 법은 명심하여야 한다.
제도는 인간적 복잡성을 견디기보다 압축하고 재단하려 한다.
그러나 깊은 성찰 없이 단지 제도에 의해 인간이 투박하게 재단되서는 안될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복잡성을 '덜' 깎아내는 정교한 제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