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신본주의적인 종교의 기묘한 구조
통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 위에서 아래로 (Top-Down)
역사적으로 종교는 지배층의 가장 훌륭한 통치 도구였다. 이집트의 파라오나 바벨론의 군주들은 스스로를 신격화하거나 신의 유일한 대리자로 자처하며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제정일치’를 완성했다. 이들 고대 제국 종교의 본질은 철저히 ‘강자가 약자에게 강요한 순응의 도덕’이었다. 피지배층의 고통과 복종은 우주적 질서나 섭리로 포장되었고, 지배층은 체제를 영속화하기 위해 종교라는 이름으로 피지배층의 영혼에 족쇄를 채웠다. 카를 마르크스가 종교를 가리켜 "인민의 아편"이라 비판했을 때,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지배층의 권력을 수호하는 하향식(Top-down) 이데올로기로서의 속성이었다.
가장 신본주의적인 종교의 돌연변이적 속성: 아래에서 위로 (Bottom-Up)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에서 태동한 야훼(Yahweh) 신앙을 발생론적으로 분석해보면, 오히려 이 거대한 역사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종의 돌연변이에 가깝다. 이 신앙의 주체는 제국의 지배자가 아니라, 이집트를 탈출한 노예들과 가나안의 무거운 세금을 피해 도망친 하비루(Habiru) 같은 철저한 주변부 계급이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군사력이나 정치력이 없었던 이들은 현실의 억압을 물리력으로 전복하는 대신, 신앙을 매개로 한 정신적 전복을 시도한다.
이로 인해 더 재미있는 현상이 드러난다. 야훼 신앙은 "인간 왕은 한계가 있는 유한한 존재이며, 보이지 않는 신만이 우리의 진정한 유일한 왕이자 무오류의 존재"라는 급진적인 평등주의를 선언한다. 이 강력하고 근본주의적인 신본주의는 역설적으로 세속 인간 통치자의 신격화를 원천 봉쇄한다. 그 결과, 훗날 다윗과 같은 강력한 이스라엘의 군주조차 제사장의 종교적 권위와 선지자의 매서운 비판 아래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고대 근동 사회 초유의 '제정분리(권력 분립)' 시스템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종교의 권위가 강력할수록 제정일치의 구조를 지향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반대로, 가장 신본주의적인 종교인 야훼신앙이 신과 인간을 철저히 분리한다. 이는 전통적인 시아파 교리(현재의 이란이 아닌)에서도 드러난다. 가장 신본적인 종교일수록 역으로 제정일치 그 자체가 될 수 없는 구조적인 아이러니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정치가 신의 의지와 합일할 수 없다는 철저한 인식론적 한계를 긋는 종교적 겸허함을 담고 있는 태도이다.
도덕의 전복: 약자가 창조한 '노예 도덕'
한편, 니체(F. Nietzsche)는 이 궤적을 포착하고 유대-기독교 전통을 ‘노예 도덕(Slave Morality)’이라 명명했다. 니체의 해석에 따르면 기독교에서 요구하는 순종의 미덕은 타 종교처럼 강자가 약자에게 강요한 굴종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억압받던 약자들이 현실의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발명해 낸 강력한 '자기 정당화'의 무기였다.
이들은 강자의 덕목(힘, 정복, 부유함)을 '악(Evil)'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나약한 현실(가난, 희생, 핍박받음)을 오히려 '선(Good)'으로 뒤집어버리는 '가치의 전도(Transvaluation of Values)'를 이룩했다. 권력을 쥔 강자들에게 ‘죄책감’이라는 프레임을 씌움으로써, 약자가 강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전대미문의 도덕 구조를 구축한 것이다.
가장 연약한 자들의 가장 위대한 복수
물론 니체는 이런 현상을 '좋지 않다'고 여겼다. 약자의 가치를 표방하는 도덕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 자체가 니체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관점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약자와 강자의 구분, 그리고 가치와 도덕 자체가 일종의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면, 시대를 지배하는 바로 그 '약자의 도덕' 역시 니체가 경멸한 것 처럼 단지 배격의 대상이 아닐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하고 강력한 종교가 됨으로써, 이 밑으로부터 솟아오른 순종의 도덕이 세상을 지배했다. 칼과 전차로 무장했던 로마 제국은 무력으로 유대를 짓밟았지만, 그들은 십자가의 정신을 퍼뜨리는 가장 강력한 성기사가 되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촉발된 이 종교적 현상은 지배층이 만들어낸 인민의 아편이나 마취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 권력을 해체하고 강자의 가치관을 전복시켜 '약자성'을 도덕의 중심에 세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약자들의 반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