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왜 자꾸 그 말을 부정하고 싶은 걸까.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이 문장은 오래됐고, 매력적이다. 나는 이 문장을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민망하고 부끄러울 정도다.
왜냐하면 이 말은 틀린 말이기 때문이다. 왜 나는 이 말이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믿고 싶은 걸까.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현대 인지과학은 이 주장을 부정한다.
사피어-워프 가설은 애초부터 약한 결정론이었고, 지금은 언어 이전의 사고—감각, 직관, 개념화—가 가능하다는 것에 학문적 합의가 있다. 사고는 언어 없이도 시작되고, 구성된다. 인간의 뇌는 언어 이전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이론상, 언어는 사고의 그릇이지, 근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사실에, 시큰둥하다.
왜냐면 나는 문장을 짓는데 익숙한 사람이고, 단어의 조합을 통해 사고를 조직하는 과정 자체에서 일종의 주체감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체감은 가짜다. 나는 언어를 통해 사고를 구축한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언어라는 그릇을 빌려 사고의 구조를 담아낼 뿐이다.
나는 알고 있다.
이건 착각이고, 감성적인 자기 암시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착각에 자주 기대고, 그 구조를 즐기고, 그 틀 안에서 나를 설명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뀐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느냐'가 아니라,
'나는 왜 언어에게 사고를 지배당하고 싶어 하느냐'이다.
아마도 나는, 나의 사고가 언어라는 매체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뽐내고 싶었을 것이다. 나의 사고가 덕지덕지 붙여서 쌓아올린 찰흙덩어리가 아닌, 언어라는 정돈된 재료를 바탕으로 지어진 벽돌집일 것이라는, 무의식적 지적 고양감을 맛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정돈된 벽돌집이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착각에 매달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건 심지어 정치적, 사회적으로 꽤나 있어보이기까지 한다. 각종 사회 담론을 다룰때 '언어가 사고를 규정해요! 그래서 우리는 언어를 잘 사용해야한답니다!'라는 식의 과장된 선전들이 횡행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그게 더 서사적으로 멋있고,
비직관적이면서도 그럴듯하니까.
서사적으로 멋있는 말들은 건조한 진실보다 매력적이다.
비직관적이면서도 그럴듯한 말은 지식수련생들을 그릇된 지적허영으로 자주 유혹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언어에게 사고를 지배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다만,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틀린 말에서 시작한 사유를 통해,
나는 나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지식은 논리 위에 서지만, 의미는 선택 위에 선다.
진실만이 명징하게 현실을 설명해주는 것 아니다.
때로는 나를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짓에 기대기도 한다.
결국, 존재는 사실일 뿐이고
의미는 내가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