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선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받을 때는 예쁘지만 계속 물을 갈아주며 관리해야하고 종국에는 시든 꽃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싫다. 아무리 노력해도 꽃을 시들고 또 버려야 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살아오는 동안 꽃선물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이 몇 번 꽃을 사온 적은 있었는데 나의 시큰둥한 반응에 그만 두었으리라.
그렇다고 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화원의 싱싱한 꽃이나 들판에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꽃밭은 무척 좋아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무더기로 피는 곳이면 무조건 찾아가는 열정도 있다. 요즘들어 지자체에서 꽃밭들을 조성해서 먼거리도 마다 않고 찾아 간다. 비슷하고 여리여리한 꽃들이 다 같이 모여서 그림을 만드는 풍경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몇 송이의 꽃보다는 들판을 이루는 꽃밭을 좋아하는 것 같다. 꽃을 소유하기 보다는 잠깐 감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니 꽃 욕심이 없다고 볼 수도 있고, 엄청난 양의 꽃이 피어 있어야 만족하니 욕심이 많을 수도 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우리집 안에는 꽃이 없다. 식물을 키워낼 정성이 없으니 화분도 키우지 않는다. 꽃을 좋아하지만 정성을 주기는 싫어하는 나의 이기심 때문에 선택한 것이 조화다. 요즘에는 기술이 좋아져서 조화도 생화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예쁘다. 그런 조화를 집안에 장식해 두면 처음에는 그 화려함에 기분도 좋아지고 집안 분위기도 환해진다. 아이들 방문 앞에 리스도 걸어두고 진짜 꽃인양 예쁜 유리병에 꽂아서 책상 위나 식탁에 두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름다움은 잊혀지고 그 꽃들 위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다. 그 먼지가 시력이 안좋은 나에게도 감지될 때면 흐르는 물에 흔들어 씻어서 말린다. 그리고 다시 꽂아둔다. 그렇게 그 꽃들은 늘 내 눈앞에 존재한다.
버릴 이유가 없어서 좋다. 언젠가 이사를 가게 되거나 집안 분위기를 교체하려면 버리는 날도 오겠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내곁에 있을 것이다.
진짜 꽃은 아니지만 나의 공간을 환하게 밝혀 주고, 내곁을 절대 떠나지 않으니 이 또한 괜찮지 않은가. 이것이 내가 조화를 사랑하는 이유다. 진짜 꽃은 들판이나 밖에 나가서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하면 되고, 굳이 내 소유물로 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남들이 정성스럽게 가꾼 예쁜 꽃들은 종일 원없이 감상할 수 있고, 그 꽃밭 가운데도 잠을 잘수도 있는 좋은 세상이다.
지금 내 눈앞에서 밋밋한 거실벽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조화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조화라고 무시 당하지만 조용히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하고 있는 살구빛 장미꽃을 바라보며 꽃을 좋아하는 나는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는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가짜이지만 자신의 일을 하면서 이 세상을 밝히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경제적인 이유든 게으름이든 진짜를 소유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과 위안을 주는 이 세상 모든 가짜들에게 애정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