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제주

남편과 함께 동백길을 걷다.

by 작은영웅

장작 5일이라는 기간 동안 제주를 여행한다. 그것도 남편과 함께. 제주는 눈소식이 있지만 이 또한 설렌다. 4일간 숙소를 옮기지 않고, 일정 중간에는 공항에 둘째 아이를 마중 나가야 한다. 그동안 했던 여행 스타일과 다른 것이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제주 5일 살기를 통해 제주 한 달 살기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누려 보려고 한다.

제주에 도착해 보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지만 구름 사이로 햇빛이 언뜻언뜻 비친다. 렌트를 하자마자 바로 한담 해변으로 향한다. 어두워져 가는 바다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옥색 바다를 바라보니 드디어 내가 집을 떠나왔음을 실감한다.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이 설렘을 불러일으키고 곁에 있는 낯익은 사람이 편안함을 준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역시나 예보대로 눈이 내렸다. 느지막하게 호텔조식을 먹고 남편은 헬스장에 가고 나는 책을 읽는다. 내 집 같은 편안함으로 맞이하는 아침이다. 긴 일정이 주는 여유로움이 아닐까 싶다. 빨리 일어나 어딘가를 가야 하고, 서둘러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분주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눈 쌓인 길에 나서니 조심스럽다. 우박이 내리다 눈발이 흩날리다 하면서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여주는 제주. 멀리 운전하기는 부담스러워 가까운 카페 제주당으로. 다들 마음은 비슷한지 사람들이 인산인해다. 앉을자리가 없다. 조용히 창밖에 내리는 눈을 감상하고자 근처 새빌로 갔더니 문을 닫았다. 결국 서귀포 바닷가로. 여긴 남쪽 바다라 따뜻한 기운으로 눈이 많이 녹았다. 비밀역이라는 카페에서 일본감성을 느껴보고 박수기정이 보이는 카페루시아에 안착한다. 역시 제주 카페는 바다뷰가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제주 남쪽 바다는 평범한 색깔이지만 바다 위에 반짝이는 윤슬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다음날은 동백꽃 맞이다. 시실 이번 여행 목표가 동백꽃 구경이 아니던가. 작년에 비해 이상기온으로 꽃이 늦게 피었다더니 역시나 만개는 아니었다. 제주동백수목원, 동백포레스트, 동박낭, 훈이네동백밭, 휴애리로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애기동백꽃의 현란함에 마음을 빼앗겼으나 점점 비슷한 풍경에 식상해졌다. 토종동백이 눈에 띄진 않아도 고고한 매력이 있다면 애기동백은 화려하지만 가벼운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겨울 한철 애기동백의 현란함은 삭막한 제주의 겨울을 빛내주는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여행 3일째가 되니 피곤함이 조금씩 쌓이는 듯.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 7시에 제주 공항에 도착하는 둘째 아이를 마중 나갔다. 아이를 태우고 해장국으로 배를 채우고 숙소에 돌아오는 길 제주도민이 된듯하다.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면 이런 기분이겠지. 근데 겨우 3일 살았는데 뭔가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힌 느낌.


여행 4일째, 다시 동백 투어. 딸아이가 전문 카메라로 남편과 나를 찍어 준다. 스냅사진 찍으러 나온 것 같다. 환갑이 다된 나이에 리마인딩 웨딩을 찍는 듯하다. 딸이 가지고 있는 사진 취미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다니.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동백꽃밭 투어를 했다. 시진작가인 딸의 평에 따르면 동백수목원이 최고라고 한다. 일단 규모가 크고 야자수와 어우러진 다채로운 풍경이 다른 곳과는 차별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야자수와 동백꽃의 생장 한계선이 제주라고 하니, 실컷 보고 가야겠다. 지구 온난화로 차차 남해안 쪽에서 애기동백을 볼 날들도 멀지 않겠지만.


여행 마지막 날, 오설록으로 녹차밭 구경을 한다. 녹차뷰를 보며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녹차밭에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근처에 백설공주 콘셉트의 숲이 있다고 해서 구경에 나섰다. 대여한 램프를 들고 숲 속을 산책하니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족이 된듯하다. 작은 집과 기찻길, 크리스마스 소품들이 아기자기하다. 바람이 많은 날인데도 숲 속은 아늑하기까지 하다.

숲을 벗어나 모슬포 미영이네에서 고등어회를 먹었다.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너무 좋았다. 식사 후 마지막 코스는 애월 카페 해지개. 핫한 곳이라 외국인들이 많다. 맛있는 빵과 커피, 그리고 바로 앞에 펼쳐지는 멋진 바다. 해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은 풍경이다. 하지만 이제는 떠나가야 할 시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일어선다.


공항에서 보이는 하늘의 해넘이가 아름답다. 그동안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멋진 하늘을 선사한다. 아마도 자신을 기억하고 다시 또 오라는 당부를 보내는 듯하다. 매번 2박 3일로 방문했던 제주를 4박 5일로 만나고 떠나니 아쉬움보다, 흡족함이 더 느껴진다. 제주가 지금보다 더 화사해지면 다시 만나러 오리라 다짐하며 비행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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