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작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20세기를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 여자에게는 관용적인 편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키는 생존의 문제로 직결되는 분위기이다. 특히 남자에게는.
주변에 얘기를 들어보면 요즘 청년들(20대~30대)은 키가 작으면 아예 소개팅 기회마저 없다고 한다. 내가 살아온 시절만 해도 키가 작은 남자들은 능력을 길러서 콤플렉스를 극복하면 되었다. 그래서인지 대학교수나 의사 등 선망받는 직업군에 특히나 키가 작은 남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능력을 갖춰도 키가 작으면 여자들이 싫어한다고 한다. 여자들도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춰가는 세상이니 굳이 마음에 차지 않는 외모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출산율 저조로 기피과인 소아과 의사들도 요즘은 성장촉진제로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의 키를 키워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아이의 키는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부모의 책임도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나중에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분발할 수밖에 없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이다. 가끔 걷다 보면 땅이 참 가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작았는데 유전적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이 부모님은 나보다 크고 내 동생들도 평균은 하는 것 보면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엄마의 분석에 따르면 중학교 시절 한참 성장기 때 도시에서 자취생활을 했는데, 이때 간장에 밥만 먹어서 영양 부족으로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유복한 집이었기 때문에 이 말은 설득력이 있다. 거기에다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눈칫밥 얻어먹은 것도 원인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떤 이유로든 나는 평균 이하의 키를 가지고 있다.
작다는 것은 귀여움과 통하기 때문에 나는 그쪽에 승부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손도 발도 눈도 코도 모두 작은 여자가 들을 수 있는 최대의 찬사는 ‘귀엽다’이다.
그래서 나는 옷도 귀엽게(옷을 사면 무조건 수선을 해야 함) 표정도 귀엽게, 목소리도 귀엽게 하다 보니 이 나이가 들어도 사람들에게 귀엽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둥글어진 몸매는 호호할머니 느낌이고, 유치원 선생님 같은 다소 톤이 높은 앵앵대는 목소리는 귀여운 느낌이 강하다. 옷도 둥근 카라(일명 꽃받침)나 레이스가 달린 아동복 느낌이 나는 옷을 즐겨 있는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키가 작아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키가 작아서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었고 결혼을 할 때도 남편은 나의 작은 키를 사랑했다. 잘 생각해 보니 자녀들이 나를 닮아 키가 작을까 걱정한 것은 있다.
그래도 남편이 작은 키가 아니라서 큰 걱정은 안 했는데 두 딸아이는 아무리 우유를 먹여도 160 언저리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유전의 힘인 것 같다. 두 딸도 큰 불만은 없었기 때문에 아들을 안 낳은 걸 다행으로 여기는 걸로.
키가 작아서 기른 능력이 바느질이다. 옷을 사면(특히 인터넷 주문) 나 같은 사람 두 명은 들어갈 정도로 큰 옷이 올 때가 있다. 교환과 반품을 극도로 귀찮아해서 어지간하면 그냥 입는데 도저히 입을 수 없을 경우 버리는 셈 치고 옷을 분해해서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추측과 반복으로 하는 일이라 시간이 무진장 소요되는 일이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미싱을 배우면 좋겠지만 심심풀이로 하는 일이라 손바느질을 한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는 시간은 나에게 명상의 시간과 같다. 손가락이 아프고 시간도 많이 들고 허리도 아프지만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완성했을 때의 기쁨이 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을 만드는 것이다. 나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남편은 이런 나에게 신사임당 같다고 했다. 아마도 누군가 아파트 유리창으로 나를 매일 훔쳐본다면 삵바느질로 먹고사는 여자라고 생각할 것 같다. 힘들어도 즐거운 게 있다면 나에게는 바느질이 아닌가 싶다.
젊을 때에는 어떻게든 키가 커 보이게 하려고 높은 굽의 신발을 신었다. 그래서 바닥이 고르지 않은 곳을 지날 때면 발목을 잘 접질린다. 운동화도 굽이 높아서 해외여행 중에 발을 접질린 바람에 다리를 절며 다닌 적도 많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했던 그 굽을 이제는 많이 포기했다. 안정감이 중요하고 다쳐서 걷지 못하는 것이 가장 두렵기 때문이다.
땅이 좀 가까워도 빽빽한 지하철에서 답답해도 이제는 작은 키를 사랑하며 허리를 곱게 펴고 당당하게 다닐 생각이다. 귀엽고 씩씩하고 밝은 미소의 할머니가 내가 그리는 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