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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음식

by 작은영웅 Mar 12. 2025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잘 모르는데 가족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머리를 쥐어짜서라도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 내서 가족에게 보내야겠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해줄 것이 닌가.


먼저 음식부터 생각해 보면 난 빵을 좋아한다. 아침 식사로는 주로 빵을 먹는데 좋아하는 종류가 식사빵이다. 밀가루는 조금만 들어가고 다른 내용물이 많이 들어 있는 빵을 좋아한다. 샤워도우는 신맛이 나서 별로이고 치아바타를 좋아한다. 그 외에도 달지 않은 팥이 들어 있는 빵, 밤이 들어 있는 빵, 치즈가 들어 있는 빵을 좋아한다. 달달한 구움 과자 스타일이나 케이크 종류는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쓴맛을 커버하기 위해 아주 조금(?) 먹는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은 치킨이다. 치킨을 더 좋아하는지 맥주를 더 좋아하는지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안주가 없으면 맥주를 마시지 않고, 최고로 생각하는 안주가 치킨이기 때문에 치킨을 더 좋아하는 게 맞을 거다. 나름 건강을 생각한다고 오븐에 구운 치킨을 즐겨 먹는다. 기름진 것보다 담백해서 더 맛있는 것 같다. 혼자서는 치킨 한 마리를 다 먹기 힘드니까 누군가 곁에 있고 출출하면 계속 치킨 먹자고 꼬신다. 조금만 참으면 돈도 굳고 살도 안 찌고 건강도 좋아질 텐데. 그래서 치킨을 먹고 싶은 밤이면 빨리 잠을 청한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잘 극복하고 잠들어서 오늘 아침은 기분이 좋다.


세 번째는 맥주이다. 술이 세지는 않지만 맥주는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 속에는 늘 맥주가 있다. 유럽 여행 중에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마시는 맥주의 맛이 너무 기가 막혀서(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고파서 더 맛있는 듯) 멋진 풍경만 보면 맥주가 마시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맛보다는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날씨가 좋으면, 배가 고프면, 목이 마르면, 튀김류의 음식을 먹으면 맥주가 먹고 싶다. 일과 중에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 있으면 퇴근 후에 기름진 음식과 맥주를 사서 먹으면 기분이 나아진다. 이것을 반복하면 뱃살이 가득 쌓인다. 그럼 기분이 안 좋지만 그래서 또 마시고 악순환이 계속된다. 최근 집에 있으면서 점심때 낮술을 먹어 봤다. 맛이 없다. 술은 약간의 스트레스와 친구가 있을 때 제일 맛있게 먹게 되는 것 같다.


네 번째는 커피다. 전에는 인스턴트커피를 즐겨 마셨다. 출근을 하면 아침에 한 잔, 배고파지면 오전 중에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퇴근 전에 한 잔, 이렇게 네 잔을 마셨다. 크림을 잔뜩 넣은 달달한 커피를 보약처럼 마셔댄 것이다. 커피 속에 프림이 건강에 해롭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면서 줄여보려고 애를 썼으나 쉽지 않았다. 첫째 아이 임신 중에는 어찌어찌 안 마셨는데 스트레스가 심했다. 둘째 아이 떼는 그냥 하루 한 잔 정도 마셨다. 태어나서 아이가 아토피가 심했는데 커피 때문이 아닌가 후회하기도 했다. 커피를 끊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아메리카노로 바꿔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쓴 아메리카노를 달달한 디저트와 함께 먹는 것이다. 아주 작은 양의 달달한 빵을 곁들이는 편법으로 아메리카노로 전향할 수 있었다. 지금도 아이스아메리카노는 그냥 마시기도 하지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먹을 때는 꼭 디저트를 함께 먹는다. 집에 냉동실에도 식사빵과 달달한 빵 두 가지로 구분해 놓았다. 많이 먹지도 않는데 살이 빠지지 않는 게 아마도 이 빵들 때문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고기이다. 야채나 과일이 몸에 좋다는데 그다지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사과도 건강을 위해서 먹는 것이지 좋아서 먹지는 않는다. 과일 가게를 지나치다가도 너무 비싸서, 너무 달아서 등등의 이유로 선뜻 사지 않는 이유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가다가 트럭에서 바비큐를 팔고 있으면 엄청 고민을 한다.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을 하는 것으로 봐서 난 고기를 좋아함에 틀림없다. 고기가 없는 국물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최소한 달걀이라도 먹어야 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달구어진 숯불에 굽는 고기가 먹고 싶다. 많은 양을 먹지는 않지만 먹고 싶은 것이다. 집에서 구워 먹는 건 엄두가 안 난다. 일단 번거롭고, 맛이 없을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다. 내 친구들은 만나면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 먹는 걸 좋아한다. 거기에서 스테이크를 먹어 보지만 난 속으로 숯불에 구운 삼겹살을 떠올린다.


지금 내가 마음 편한 친구를 만나서 하고 싶은 최고의 식사는 먼저 숯불에 고기를 구워 맥주를 곁들여 마시고, 맥주집에 가서 치킨에 맥주 한잔을 더 한 다음, 카페에 가서 밤케이크에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헤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맥주는 목을 축일 정도로 가볍게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놀아줄 사람이 없다.

남편은 분명히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숯불에 구운 고기는 건강에 해롭다, 고기를 먹고 치킨을 어떻게 먹냐, 밤에 커피는 별로다, 케이크는 혈당을 높인다. 등등.

아 슬프다. 따뜻한 봄이 오면 이렇게 해보고 싶은데 누구 도와줄 사람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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