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 위치한 따사로운 마을에서 나름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쁨보다는 슬픔과 더 친한 아이였다. 소설도 비극으로 끝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좋아했고 행복하게 되는 주인공보다 그 옆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인물에 더 마음이 가곤 했다. 동화책도 인어공주 같은 가슴 아픈 결말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마음이 아파서 며칠씩 끙끙대곤 했다.
어느 날씨 좋은 날 툇마루에 앉아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있다. 노래도 밝고 신나는 노래보다 슬픈 곡조의 노래를 좋아했던 나는 당시에 애들 사이에 유행했던 청승맞은 곡조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가사도 아주 슬픈 내용이었다. ‘엄마 엄마, 나 죽거든 뒷동산에 묻지 마. 뒷동산에 묻지 말고 양지쪽에 묻어줘. 비가 오면 덮어 주고 눈이 오면 쓸어줘. 내 친구가 찾아오면 죽었단 말 하지 마.’ 애들이 왜 이런 내용의 노래를 많이 불렀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노래가 무척 맘에 들었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비극의 주인공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노라니 부엌에서 점심을 준비하다가 부지깽이를 들고 뛰어오는 엄마가 보였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노래를 부르냐’하면서 쫓아오는 엄마, 도망가면서 생각했다. 난 왜 이런 노래가 좋을까.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가족을 떠나 도시로 유학을 왔을 중학교 시절부터 난 정말이지 슬픔을 안고 사는 아이가 되었다.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온갖 시련을 겪는 소공녀나 제인에어의 주인공과 나 자신을 동일시했고 그런 류의 소설들을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차별받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플 때나 가족이 보고 싶을 때에는 옥상에 올라가서 ‘섬집 아이’, ‘별 삼 형제’ 같은 노래를 불렀다. 이런 노래를 부르다 보면 더욱더 슬퍼져서 몰래 울곤 했다. 내면 속에서 뿌리 깊게 슬픔에 젖은 아이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런 내가 싫어서 어느 순간부터 슬픈 내용의 영화나 책을 보지 않게 되었다. 혹시 보게 되더라도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음으로써 슬픔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람이 우는 영화도 울지 않고 보는 모진 사람이 되었다. 슬픈 환경에 나를 넣으려던 노력은 슬픔을 느끼지 않는 사람으로 변모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울컥할 때가 있으니 억울함을 느낄 때이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나를 잘못한 사람으로 몰아갈 때 눈물이 난다. 슬퍼서 우는 것보다 더 못나 보여서 절대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부터 쏟아지니 부끄러움까지 느끼게 된다. 정말 속상하다.
가끔은 나의 공감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친구가 슬퍼할 때 같이 눈물지어주고 가슴 아픈 남의 얘기에 눈물을 펑펑 쏟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감정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다. 난 그들의 슬픔에 잘 공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그 풍부했던 슬픈 감성을 생각해 보면 슬픔에 공감을 못한다기보다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엉엉 울고 나면 감정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데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안 나니 조금은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친구 중에 코미디영화를 봐도 우는 친구가 있다. 그 아이는 모든 것에서 슬픔의 에너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 같은 아이다. 가끔은 그 애가 부럽다. 나이가 들수록 잘 웃고 잘 우는 것이 순수함과 밝음으로 느껴져서이다. 감정 표현에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보다 이것저것 계산하다가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슬픔의 문을 닫고 밝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난 늘 웃고 있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는 얘길 많이 들었다. ‘웃으면 행복해진다고 해서 늘 웃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늘 웃었다. 그러면서 슬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가식적인 미소를 짓다 보니 감정이 메말라진 것이다. 이제는 좀 덜 웃고 더 울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억울해서 우는 분노의 눈물이 아닌 세상과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날마다 주어지는 삶을 더 풍요롭게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만을 바라면 자기애적 생각에 빠져 헤어나기 어렵다. 더 넓은 세상에서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진정한 위로를 건네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는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