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해외여행

by 작은영웅

작년에 남편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여러 번 다녀왔지만 남편과는 처음이었다. 남편은 유럽이 처음이라 결혼 30주년을 기념으로 남편에게 여행 선물을 주기 위해 여러모로 마음을 썼다.

나도 일 년 간 일을 쉬게 된 참이라 남편만 휴가를 내면 되는 일이었다. 다행히 남편 회사에도 장기휴가라는 것이 생겨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10일 남짓한 기간을 종일 함께 하면서 나에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남편과 함께 하는 유럽 여행을 최고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여행에서 바라는 모든 것들이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생활인이 아닌 여행인으로서의 남편은 연인처럼 느껴졌다.


출발하는 날 공항에서는 본래 만감이 교차한다. 집에 남겨두고 온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크다. 결국 여행이라는 것이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기 때문에 버리고 온 일상들이 나에게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니냐고 말을 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그런 것이 없어서 좋았다. 나에게 늘 미안함을 자아내던 인물이 옆에 있기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마음이 평화로웠다.

같이 밥을 먹고, 나란히 앉아서 비행기를 타고, 까무룩 잠이 들고 그런 과정들이 집에 있는 듯 안정적이었다. 여행 중에 가게 된 숙소에서도 집을 옮겨온 듯 편안한 일상을 반복하면 되었다. 그러다 문밖만 나서면 이국적인 풍경에 낯선 공기, 하루에도 수십 번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나게 되는 행복감이 있었다. 늘 꿈꾸던 사랑하는 이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앉아 있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데 남편과 나는 여행 취향이 비슷했다.

어떤 장소에 가면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서 걸어 다니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많이 기웃거리고, 쇼핑하는 것보다 체험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카페에 앉아 있기보다 거리를 걷은 것을 더 좋아하는 등, 나하고 여행 스타일이 유사했다. 여행 가서 사진 찍히는 것을 즐기는 것까지 비슷해서 시종일관 알차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다.

자유 시간만 주어지면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 한 잔 하는 것을 시종일관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그걸 약간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하루 한 잔이면 되는 것이고, 술이야 저녁에 숙소에 가서 즐겨도 그만 아닌가. 매 끼니마다 술을 찾는 것은 남만을 넘어서 중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남편과 함께 해서 또 좋은 점은 눈치를 보거나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이미 충분히 기분이 좋은 나와 남편은 서로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있는 사소한 말다툼은 생기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좋았기 때문에 집에서는 거스를 사소함일랑은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것이 여행이 주는 마력이 아닐까 싶다. 낯선 이들만 가득한 거리에 이 세상에서 가장 친숙한 사람이 보인다는 것 자체로 그곳은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로 거듭나는 것이었으니까.

남편의 팔에 매달려 세상 천사 같은 얼굴로 다니는 나의 모습이 연애시절로 돌아간 느낌이기까지 했다. 돌아갈 날이 가까워 올 때는 하루하루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매 순간 돌봐주고 지켜봐 주는 이와 함께 하는 기쁨, 집에서와는 다르게 시종일관 내 곁을 지키며 무거운 짐은 다 들어주고, 힘든 길은 손을 잡아 주고, 넘어지면 업어주기까지 할 사람이 곁에 있으니 유럽의 이국적인 장소들이 모두 설렘을 주었고, 내 집처럼 편안했다. 아침에 조깅을 하면서 답사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과 차가운 아침 공기를 호흡하며 동네 산책을 할 때는 그곳의 주민이 된 듯한 느낌을 갖기도 했다.

남편은 원해 그런 사람이었다. 한없이 퍼주고 다정하고 화를 내지도 않고, 참아내고 버티는 사람. 그런 남편이 세상사에 지쳐서 나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지쳐서 화를 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원래 성정이 배려심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런 남편의 본연의 모습을 유럽 여행 중에서 만났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그 모습을 되찾은 남편을 지켜주고 싶었다.

나의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으로 인해 훼손된 남편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남편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뀌었다. 언제든 다정하게 대하려고 애를 쓴다. 가급적 지적하는 잔소리는 줄이고 다정한 말부터 꺼내 놓는다.

가령 늦게 귀가하는 남편에게 “왜 이제와” 대신 “보고 싶었는데 왜 이제 왔어”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면 서로 좋은 대화가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늘 잔소리해도 바뀌지 않던 운전습관 같은 것도 이게 내가 지적하면 “알았어. 고쳐볼게”라고 대답하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말투가 유순해지고 다정해진 것이 휴직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 그런 거라고 남편은 생각하지만 아니다. 이런 나의 변화는 유럽 여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떠난 여행에서 난 30년 전의 남편을 만난 것이다. 지금은 세파에 시달려서 변화되었지만, 내가 평생을 함께 해도 좋을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던 그 좋은 성정을 지닌 남자를. 그리고 그 남자를 다시 되찾고 싶은 마음에 나를 바꾸어 가게 된 것이었다.


나는 나의 모질어지고 분노가 자주 일어나는 성격이 뜻대로 되지 않은 환경 때문이라고 여겼다.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은 경제적 상황이 나를 강퍅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을 분노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니 남편도 조금씩 분노를 품게 되고 나를 향해 그 분노를 쏟아내게 된 것이었다. 그럼 그 모습 때문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이번 유럽 여행은 우리의 그런 순환적인 고리를 끊어 놓게 되었다. 나의 변화가 시작되면서 남편의 변화도 감지된다. 남편의 변화는 나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껏 30년 동안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닥쳐오는 환경 속에서 버텨내느라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앞으로 함께 하는 30년은 각자의 삶과 오롯이 서로를 향한 삶에 충실하고 싶다.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해 주면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진정한 동반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같이 있든, 떨어져 있든,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솔메이트로서의 삶이 아닌가 싶다.

이런 깨달음을 준 것이 우리의 30주년 기념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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