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읽는 시간’이라는 책을 읽었다. 미국에서 말기암 환자나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다.
이 책에는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이제 곧 죽게 될 거예요.’라는 말을 듣게 된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무대에서 내려오라는 명령을 받게 된 심정은 헤아리기 힘들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주위에 별일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박탈감이 더 클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이라고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주변에 비슷한 일을 당한 친구들을 간혹 보았을 테니 조금은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나도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점심때 밥 먹고 일어날 때 어지럼증을 느꼈고 바로 응급실에 가서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40대에 건강한 편이었던 나는 병으로 인한 모든 불편함과 고통보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있어났나’ 고민하느라 마음의 고통이 더 심했다.
내가 잘못 살아서 천벌을 받은 건가, 엉망진창으로 살아온 대가인가, 그동안 쉽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왜 나에게는 이렇게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 건가. 이런 생각들 때문에 괴로웠던 것이다.
주변에 지인들이 찾아와 원인을 찾으려고 했을 때도 상처받았다. 그들이 나름 원인을 찾고 이제 바르게 사라고 충고했을 때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래도 내겐 회복탄력성이 있었다. 아마도 메르스 열풍에도 불과하고 나를 찾아 준 많은 친구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병실의 다른 이들이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와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의사가 앞으로 지팡이에 의지해서 걸어 다닐 수도 있다고 겁을 주었을 때에도, 병원 벽의 손잡이를 잡고 걸음마 연습을 할 때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던 과거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고 이 경험은 나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한 달 넘은 병원 생활을 평화롭게 잘 버티어 낼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 왔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든 나에게 병마가 닥쳐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직장에서는 내일 출근을 못하게 되더라도 별일이 없게, 집에서도 갑자기 집에 못 오게 되어도 별일이 없게 늘 정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며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이 순간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 떠서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친구나 지인들이 권하는 여행이 있으면 늘 함께 하려고 노력했고, 가족들과도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게 되었다.
후회 없는 삶이란 없을 테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그만두려고 늘 생각한다. 지금 여기, 내가 건강하게 존재하는 그 삶에 충실하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꿈꾸는 일만 하려고 한다.
아주 먼 후일 내가 파파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아 있고, 아무것도 하기 힘들 정도로 노쇠하면 그때쯤 추억을 떠올리면서 살아야지. 지금은 현재를 알차고 즐겁게 살아가면서 추억을 만들어 갈 때인 것이다.
과거를 바라보며 후회하고 곱씹으며 반성하며 살기에는 나의 현재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하버드대 행복에 관한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인간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고 가장 연연해하는 것 또한 사람과의 관계라고 한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주위의 친구들과 가족과 더불어 살며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주면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을 가졌더라고 주위에 사람이 없다면 그의 삶은 쓸쓸할 뿐인 것이다.
외롭지 않게 살아가려면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일단 가족이 있다.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멀리 있어도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이다. 그런 가족들에게 더 연락하고 더 만나고 더 나누는 일은 중요하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친구들이 있다. 약간은 손익 계산을 따지게 되는 사람들이지만 나를 잘 알아주고, 어느 정도는 내편이 되어줄 사람들이다. 가족보다 조금은 더 신경을 써야 할 사람들이다. 노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이런 인간관계가 지속되어야 외로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삶에 감사하게 된다.
언제가는 맞이할 죽음이지만 현재를 충실하고 즐겁게 살다 보면 죽음도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시기는 다를망정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맞이할 죽음이기에 조금 더디게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