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를 무척 사랑하신 건 같은데 그 방법이 어린 나에게는 부담스럽고 힘겨웠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는 날은 동구밖에 나가 외할머니가 타고 오실 버스를 기다리곤 했다. 할머니가 머리에 이고 오시는 보따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보따리에서 나온 것들 중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바나나와 복숭아였다. 과일이 무척 귀하던 시절이라 명절 때나 맛볼 수 있었는데 읍내에 살고 계셨던 외할머니는 그 귀한 과일을 가져오셔서 동생들 몰래 나만 먹으라고 몰래 쥐어주곤 하셨다.
외할머니는 공부 잘하는 나를 귀하게 여기셨고 방학을 해서 외할머니집에 놀러 가면 동네방네 나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자랑을 하셨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해서 전교 1등이라고, 나중에 서울대 갈 거라고. 방학만 하면 외할머니집에 꼭 가야 했는데(엄마가 나만 보내셨다) 난 이렇게 동네를 도는 것이 너무 싫었었다.
외할머니집에 가면 닭도 잡고 온갖 진귀한 음식으로 나를 먹였고 낮에는 읍내 장에 나가 옷도 사주고 구경도 시켜줘서 낮에는 잘 놀다가 밤만 되면 엄마가 보고 싶어서 몰래 울었다.(지금은 엄마랑 안 친한데 그때는 엄마를 엄청 좋아했나 보다) 소리 내서 울면 할머니가 혼을 냈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에도 엄청난 밥을 그릇에 담아 주시고 남기면 서운해하셨다. 그래서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할머니가 나를 예뻐하시는 방식에 대해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다. 포근하고 다정한 스타일이 아닌 걸로는 엄마나 나나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것도 유전인가 보다.
외할머니가 다소 엄하고 무서운 편이었던 것은 할머니의 인생사와도 관련이 있다. 외할머니가 시집왔을 때 시댁은 아주 가난한 농가였다. 이국적으로 잘생긴 할아버지는 밖으로 도셨고 할머니는 집안을 일으켰다.
외할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가셨을 때에도 자식 셋을 키우며 논을 늘려가며 열심히 사셨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두 아들은 전쟁 중에 잃고 우리 엄마만 남았다.
그리고 돌아온 아버지는 첩을 들이기 시작했다(이 당시에는 가능했다고 한다) 나이 어린 그녀들은 같이 살다가 싫증 나면 자녀들을 두고 집을 나갔고, 할머니는 그 아이들을 거두어서 길렀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또 다른 여자를 데려왔다. 철없던 엄마는 어릴 때 그 둘째 엄마들이 젊고 예뻐서 좋아했다고 한다.
어릴 때, 할머니집에 가면 나보다 나이가 어린 배다른 이모가 있었는데 내가 이모라고 안 하면 할머니가 혼을 냈다. 공부는 안 하고 말썽을 부리던 외삼촌도 있었다.
이런 삶을 살다가 나이 들어 병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살다 돌아셨다. 할머니집에 가면 몸져누워서 밤새 기침을 하시던 할아버지가 기억난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보낸 할머니는 병들고 늙은 남편을 인생 막판에 차지하고 구박을 하시면서 돌보셨다. 할머니의 구박에 대꾸 없으셨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
외할머니는 내가 중2 때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할아버지가 남긴 배다른 자식들을 키우시며 사셨던 할머니는 어느 날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할머니 빈소에 가서 며칠을 지냈는데 울고 있던 엄마 옆에서 눈물이 안나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찾아오신 할머니들이 나를 외할머니가 가장 사랑했던 손녀딸로 기억하면서 ‘네가 많이 슬프겠구나.’ 했을 때 슬프지 않고, 눈물도 안 나서 나쁜 아이라고 할까 봐 우는 척했다. 죄책감마저 느꼈었다.
가깝게 자주 만나던 할머니였는데 내 감정이 이랬던걸 보면 난 엄한 할머니를 좋아하기보다 무서워했던 것 같다.
이런 할머니의 영향으로 엄마도 다정한 편은 아니어서 난 늘 다정함을 그리워하면서 자란 것 같다.
다정함을 그리워하면서도 어떻게 하는지 배우지 못해서 난 두 딸에게도 다정한 엄마가 되지 못했다. 주변에 매일 전화하는 살가운 모녀들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나중에 손녀나 손자가 생기면 정말로 다정한 외할머니가 되어 줄 생각이다. 본디 성정이 그렇지 못하다면 배우고 익혀서라도 그 아이들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그런 외할머니가 되어야겠다. 난 딸만 둘이라 외할머니만 될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외할머니가 안쓰럽다.
지금 내가 외할머니를 만난다면 할머니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 줄 수 있을 텐데.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아프다.
많이 늦었지만 할머니의 사랑에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